짧은 시간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사람, 또는 1인자 못지않은 존재감을 남긴 인물을 두고 언젠가부터 많은 사람들은 '미친 존재감'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주인공까지는 아니어도 조직이 더욱 두드러지고 빛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 주로 '미친 존재감' 호칭을 붙이곤 하지요. 축구에서는 이러한 '미친 존재감' 역할을 하는 선수를 '조커'로 부르기도 하는데요. '미친 존재감', '조커'가 짧은 시간에 존재감 있는 활약을 펼치고 승부에 영향을 미치는 무언가를 보여줄 때 많은 사람들은 그 선수를 스타급으로 기억하곤 합니다.

아시안컵을 끝낸 뒤, 당분간 새로운 자원을 찾는 데 힘을 쏟게 될 조광래호가 어제(15일), 이달 말 평가전에 뛸 27명 명단을 발표해 다시 발진합니다. 이들은 오는 25일과 29일, 서울과 수원에서 열리는 온두라스, 몬테네그로와의 평가전에 잇달아 출전하게 됩니다. 이청용, 박주영 등 해외파들도 눈에 띄지만 이번 명단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국내파 K리거들이 대거 포함돼 관심이 모아졌는데요. 한 달 만에 K리그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광주 FC의 박기동이 새롭게 발탁됐고, 상주 상무 주장이자 공격수 변신으로 주목받은 김정우의 재발탁이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주목을 받았지만 K리그에서 알짜배기 활약을 펼친 여러 선수들이 대거 이름을 올린 것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성남 미드필더 김성환을 비롯해 포항 측면 자원 조찬호, FC 서울의 멀티 플레이어 김태환, 성남 골키퍼 하강진, 울산 미드필더 고창현, 대구 중앙 수비수 이상덕 등이 그 주인공입니다.

▲ 프로축구 쏘나타 K-리그 2010 제주 유나이티드와 성남 일화의 경기에서 제주 배기종(오른쪽)과 성남 김성환이 볼 다툼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축구 전체적으로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선수들이라도 K리그 각 팀에서 저마다 제 몫을 다 하며 좋은 활약을 펼친 '알짜배기 K리거' 6인방은 이달 말에 있을 평가전 2연전을 통해 존재감을 알리고 새로운 꿈을 키워나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출전 시간이 얼마나 주어질지는 알 수 없고, 첫 A매치에서 얼마만큼 활약을 할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선수들 모두 훌륭한 기량을 갖고 있다는 것이며 그만큼 기대해볼 만한 선수들도 많다는 것입니다. 당장 두드러지지는 않아도 첫 선을 보이는 마당에서 '미친 존재감'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이 6인방의 활약상은 조광래호를 바라보는 데 신선함을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미 조광래 감독은 아시안컵 이후 대표팀 운영에 대해 K리그 선수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겠다고 밝히면서 월드컵 예선 전까지 '옥석'을 가리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습니다. 해외파와 국내파, 그리고 주전과 백업의 기량 차이가 어느 정도 존재했던 가운데서 주어진 시간동안 많은 경험을 통해 신예 선수들을 키우고 덩달아 모든 선수들의 전력 차를 줄이려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달 터키와의 평가전을 통해 몇몇 선수들을 실험한 데 이어 이달 말 열리는 2차례 평가전에서 본격적으로 K리거 실험에 나섰습니다.

▲ K-리그 포항 스틸러스와 전남 드래곤즈의 경기에서 포항의 조찬호와 전남의 백승민이 공을 다투다 넘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에 새로 발탁된 선수들, 혹은 아직 A매치 경험이 없는 K리거들의 면면을 보면 각각의 장점이 꽤 뚜렷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성남 일화의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견인차 역할을 한 김성환은 경기를 읽는 센스가 뛰어나고 기동력과 대인마크가 좋아 '예비 국가대표'로서 잠재적으로 주목받았던 선수였습니다. 2009년 K리그에 데뷔해서 꾸준한 기량 향상으로 팀의 기둥 같은 선수로 발돋움한 김성환은 올 시즌 개막 후에도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인 끝에 조광래 감독의 눈에 들며 마침내 첫 태극마크를 다는 꿈을 이뤘는데요. 이번에 새롭게 발탁된 선수 가운데 박기동과 더불어 상당히 기대해 볼 만한 자원으로도 꼽히고 있습니다.

김성환과 함께 미드필더 자원으로 발탁된 조찬호는 2009 AFC 챔피언스리그부터 주목받은 포항의 조커 자원입니다. 또 서울의 김태환 역시 백업 자원으로서 간간이 좋은 활약을 펼쳤던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두 선수 모두 확실한 주전 자원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들의 발탁에 대해 깜짝 놀랐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소속팀에서도 조커로 활약했던 선수들이 발탁된 것에 대해 조광래 감독은 스피드와 돌파력 등 측면 자원으로 갖춰야 할 능력이 좋고 지능적인 선수라는 판단 아래 선택하게 됐다면서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소속팀에서도 조커로 뛰지만 장점을 충분히 활용해 대표팀에서도 조커로서 제 역량을 발휘한다면 충분히 좋은 무기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의 발탁은 의외성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뭔가 모를 기대감도 갖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골키퍼 하강진의 발탁도 흥미로웠습니다. 세컨 골키퍼 김영광이 장기 부상을 당했고, 김용대 등 다른 선수들 역시 부진한 경기력을 보인 가운데서 김현태 대표팀 골키퍼 코치는 기존 멤버들에 대한 경쟁심을 부추기고 새로운 선수에 기회를 주는 차원에서 그나마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인 하강진에게 기회를 줬습니다. 이운재의 대표팀 은퇴 이후 골키퍼 포지션에 대한 주목도가 한층 높아진 가운데 하강진이 정성룡 1인 체제로 갈 수도 있는 대표팀 골키퍼 판도를 얼마나 뒤흔들지 주목되고 있습니다.

▲ 20011년 K-리그 경남FC와 울산 현대의 경기에서 현대 고창현이 경남 문전 앞에서 몸을 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고창현과 이상덕은 이전에 몇 차례 발탁된 적은 있지만 A매치 경험은 아직 없는 선수들입니다. 하지만 K리그에서만큼은 '실력파'로 통하는 선수들입니다. 대전 시티즌시절부터 강한 공격력을 과시하며 '계룡산 루니'라는 별칭을 얻은 뒤 울산 이적 후에도 빼어난 프리킥 능력과 감각적인 경기 운영으로 꾸준하게 두각을 보인 고창현, 대구 FC 수비진의 희망으로서 공격력에서도 일가견이 있는 수비 자원 이상덕 모두 장점만큼은 뚜렷하게 갖고 있습니다. 기존 자원들과 호흡만 잘 맞추면 언제든 뚜렷한 활약을 보여줄 수 있는 자원들이라 역시 기대가 큽니다.

뭔가를 확실히 보여주고픈 이들의 의지에 걸맞게 조광래 감독이 기회를 줄 것인지, 그리고 이들이 주어진 기회를 잘 살려 정말로 존재감을 보여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K리거들에게 어느 정도 기회를 준다고 한 만큼 적어도 이들 가운데서 2-3명 정도는 2경기 가운데 짧은 시간이라도 그라운드를 밟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분명한 것은 6명 선수 모두 신선함이 묻어있다는 것, 그리고 K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들이자 젊은 선수들로서 충분히 가능성과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넣으며 조광래호의 황태자로 떠올랐던 윤빛가람처럼 데뷔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기면서 꾸준하게 롱런할 수 있는 선수는 이 가운데서 누가 될지, 벌써부터 주목됩니다. 조광래호의 새로운 '미친 존재감'이 될 만한 K리거 6인방의 도전은 팀 전체적으로도 큰 활력을 불어넣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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