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은 지난 9일 조선일보 보도에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했다. 조선일보 인터뷰 기사가 자신이 발언한 내용보다 과장해서 나간 탓에 ‘쓴소리’가 아닌 ‘폭언’처럼 보도됐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9일 지면 1, 2면에 “친기업·반기업 아닌 문정부는 無기업”이란 제목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인터뷰에서 장 위원장은 2년 임기 동안 아쉬웠던 부분을 짚었다. 하지만 인용된 장 위원장의 발언에 기자의 설명이 덧붙여지며 비판 수위가 강해졌다. 조선일보는 “정부 부처는 돕기는커녕, 남 일처럼 보거나 심지어 방해했다는 것이다”, “기업의 어려움에는 관심도 없었다는 뜻이다” 등으로 장 위원장의 발언을 해석, 보도했다.

조선일보 9일 1면 보도

장 위원장은 9일 페이스북에 “4차 산업혁명 대정부 권고안을 널리 알리는 것이 저의 책무이고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권고안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것이야 조선일보의 판단이라 생각하지만 제가 ‘쓴소리’가 아닌 ‘폭언’을 한 것처럼 기사를 쓴 것에는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어 “말과 글은 ‘문맥’과 ‘뉘앙스’가 있다. 몇 부분은 심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 위원장은 자신이 기자와 인터뷰하며 발언한 내용을 첨부했다. 기사 제목으로 쓰인 “친기업·반기업 아닌 문정부는 무기업”은 “친기업보다는 친 노동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친노동이 반기업은 아니지 않냐. 친기업, 반기업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발언에서 나왔다고 설명했다. 기사에는 “정부 부처는 돕기는커녕, 남 일처럼 보거나 심지어 방해했다는 것이다”라고 쓰였지만 해당 발언은 기자의 질문이고 자신은 “제가 ‘부처와 협조가 더 잘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또한 기사에 쓰인 “두세 달 전에 정부에 연임 안 할 테니 후임을 찾으라고 일찌감치 얘기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지쳐서 두 번 연임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고 후임을 찾는 것에도 시간이 걸리니, 두세 달 전에 이야기 드렸다”고 발언했다고 밝혔다. “경제는 버려진 자식처럼 밀려나 있다”는 발언은 실제 “박용만 회장님이 ‘정치에서 경제는 버려진 자식 같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공감한다”고 말했다며 “잘 읽어보면 주어가 ‘정부’냐 ‘정치’냐의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장 위원장은 “조선일보가 국론분열이 아니라 국론통합에 앞장서주시면 좋겠다는 마음에 공개적으로 저의 인터뷰 기사에 관한 의견을 기록해둔다”고 덧붙였다.

조선일보의 인터뷰 왜곡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5월에는 반도체 제조업 근로자 역학조사의 연구결과를 흠집내기 위해 전문가 인터뷰를 왜곡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명준표 서울성모병원 교수가 역학조사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발언을 했는데 조선일보가 이를 악의적으로 왜곡했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관련기사 : 조선일보, 또 전문가 인터뷰 왜곡 논란)

이밖에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의 인터뷰 내용 조작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배종찬 대표는 조선일보 기자와 통화한 적이 없다고 했고 이준웅 교수는 <경향신문>칼럼을 통해 인터뷰 왜곡 행태를 비판했다.

심미선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의도적인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며 “기자가 선입견을 가지고 취재하다 보면 인터뷰이가 어떤 식으로 얘기했는지 의중을 파악하기보다는 자신이 설정한 방향에 맞게 맞추다 보니 발생하는 문제”라고 했다.

심 교수는 “인터뷰 당사자의 의도와 달리 인용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기자들이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며 “의견을 정확히 실어주지 않으면 해당 기자에게 정보원들이 좋은 정보를 주지 않는다. 기자는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사실을 확인하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종합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신뢰가 끊어지면 좋은 기사를 쓸 수 없다”고 밝혔다.

심 교수는 “과거에 안티조선운동이 벌어졌을 때 교수들이 전화 인터뷰는 안 하고 메일로 서면 인터뷰만 했던 적이 있다"며 "서면 인터뷰 내용을 전부 실어주지 않으면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기자가 맥락을 정해두고 인터뷰 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사를 쓰기 전에 어떤 방향을 정해둔 경우, 발언 전체 맥락을 살피기보다는 인터뷰이의 발언이 들어가면 주장이 강화될 수 있겠다 싶은 발언만 뽑아 기사화한다”며 “인터뷰를 했던 사람의 의도와는 관계없는 맥락 속에 발언이 들어가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 교수는 “인터뷰 당사자들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 말고는 현실적으로 대책이 없어 기자의 저널리즘 윤리에 맡겨야 할 부분”이라면서도 “반복적으로 이같은 문제가 발생해 신문협회 등이 자율적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재영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전형적인 윤리의 문제”라며 “기자가 허위로 지어내는 게 아닌 맥락을 무시한 채 특정 발언만 따서 쓰는, 그 자체로도 악의성이 있다고 본다. 기자도 전문직으로 직업윤리에 투철 하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과거에 비해 인터뷰 기사에 대해 직접 불만을 제기한 경우가 늘어난 것에 대해 김 교수는 “SNS 등으로 방어권 행사가 가능해졌고 사회 전반적으로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 활성화’ 등 개인의 목소리를 내고 공감을 얻으며 소통하는 창구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번 사례는 아니지만, 공인의 경우 보도가 나갔을 때 후폭풍을 모면하기 위해 기사를 탓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며 “과거에는 자신의 발언을 인용해주면 고마워하는 경향이 컸는데 지금은 언론의 권위가 상실된 시대로 자신의 입장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항의하고 SNS에 올려 후폭풍을 모면하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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