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오늘 자 11일 아침, 아이돌 그룹 엑스원과 아이즈원이 멤버들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 등을 이유로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는 기사가 발행됐다(스포츠동아, 이정연 기자, ‘투표 조작’ 엑스원·아이즈원 해체 수순). 그러나 뒤이어 발행된 스포츠조선 기사에서는 일부 소속사 간 개인적 논의에 불과할 뿐 합의가 있었던 건 아니라는 반론이 보도되었다. 그러나 스포츠동아 기사는 이미 무수한 언론에 인용되고 재탕되며 퍼져 나간 후였다. 그룹의 위태로운 상황이 한층 더 흔들렸음은 뻔하다. 급기야 위키트리라는 이름의 언론사라고 하는 곳에서는 조이뉴스24 보도를 인용하여, 아이즈원 멤버들이 직접 해체를 요구했다는 워딩을 담아 보도했다(일부 멤버들 “더 이상 팀 활동 불가능…우리는 해산 원한다“).

엑스원과 아이즈원의 차후 활동에는 현실적 문제가 놓여있고, 그룹의 장래에 관해선 멤버들 의사가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이상의 정황은 멤버들의 직접적 의견 표명이라 판단하기 불충분하고, CJ E&M 입장보다 멤버들의 심경이 먼저 언론에 발설되는 상황은 아무리 봐도 순서가 뒤바뀐 것 같다.

투표 조작 사태의 무게감을 실감하고 피해자들의 아픔에 존중의 뜻을 보낸다. 투표 조작으로 뽑힌 그룹이라면 활동도 무효다, 라는 논리는 사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 반대 방향의 주장과 논거를 한 번 생각해보는 것도 사태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내리는 데 보탬이 될 것 같다. 다섯 가지 논거를 들 것인데, 지난주 같은 주제로 기고한 투표 조작, 아이즈원이 아닌 엠넷이 저질렀다에서 첫째와 둘째 이유는 충분히 설명해 놓았으니 읽어보시길 권한다.

프듀 전 시즌으로 뻗친 조작 의혹…수사 확대 (CG) [연합뉴스TV 제공]

첫째, 투표 조작을 저지른 건 아이즈원이 아니라 엠넷이다. 책임은 그것을 행한 주체가 물어야 한다. 가령 공직 선거 등에서 투표 부정이 있을 때 당선이 무효가 되는 건 후보자가 저지른 부정이기 때문인데, 지금 상황은 후보자가 아니라 선관위가 부정을 저지르고 당선을 취소하라는 것에 가깝다.

둘째, 투표 조작의 최우선 피해자는 탈락한 연습생이란 점에 재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아이즈원 멤버들이 가해자는 아니다. 그들 중엔 도리어 피해자도 있다. 마지막 방송에서 스무 명 중 열두 명을 뽑았으니 아이즈원 멤버 중엔 조작에 의하지 않고도 데뷔할 수 있는 연습생도 다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 역시 저 만들어진 경쟁의 체스판에서 농락당한 피해자인데, ‘조작 그룹’으로 싸잡혀 피해자의 도덕적 지위조차 얻을 수 없다.

혹자는 “조작이 없더라도 데뷔 순위에 들었을 멤버들이 있어 그들이 피해자라 동의하더라도, 조작으로 뽑힌 멤버는 다른 것 아니냐. 그들이 사실을 몰랐다고 할 수 있느냐” 말할 수 있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설령 알고 있었다 해도 10대 중반, 후반의 미성년 여성들이 방송국과 기획사 수뇌부의 지시를 물리치고 자기 의견을 고집할 여지가 얼마나 있겠는가? 책임이란 윤리적 기제는 선택의 여지가 주어져 있을 때 온전히 성립한다.

물론 그들이 조작으로 수혜를 본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인터넷에는 “최순실이 정유라를 부정입학시켰는데, 정유라도 봐주자고 할 것이냐?” 되묻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의 직관적 도덕 감정에 호소하는 주장이지만, 아이즈원의 상황은 일반적 채용 비리나 입학 비리와는 성격이 다른 면이 있다. 최순실과 정유라는 부모 자식 관계다. 하지만 아이즈원 멤버들과 엠넷 및 개별 소속사는 계약으로 구성된 권력관계가 존재하는 갑을 관계다. 부모는 자식에게 이권을 주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채용, 입학 비리를 청탁한다. 하지만 안준영 PD와 소속사는 방송 흥행과 데뷔조 구성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꾀하는 것을 목표로 부정을 저질렀다. 프로듀스 그룹 정산 구조에서, 개별 멤버들이 얻는 수익 또한 이런 권력관계가 반영돼 CJ에 대해 압도적 열세다.

걸그룹 아이즈원 [오프더레코드 제공]

또한 아이즈원 멤버 중엔 조작 혐의를 받는 멤버, 그렇지 않은 멤버가 섞여 있다. 같은 시험을 쳐서 같은 대학 같은 과에 입학한 학생 중 몇몇이 입시 부정을 저질러 동문으로 공동체가 되었다고 해서 나머지 동기들도 다 같이 퇴학하라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조작했으니 해체하라”는 논리는 명쾌한 해결책 같지만 상황의 결을 더듬어 보면 상황에 맞물리는 것은 아니다. 10대 미성년자들이 자신이 직접 저지르지 않은 잘못으로 이만한 사회적 비난에 노출되고 장래의 나날에 꼬리표가 붙게 생겼는데, 이건 그 수혜에 대한 대가 이상으로 가혹하다는 점은 누구나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셋째, 아이즈원은 <프로듀스> 출신 그룹이라는 성격과 데뷔 이후 프로듀스를 보지 않은 시청자들을 상대로 활동해 온 그룹이라는 각각의 성격이 공존하는 그룹이다. 아이즈원은 <프로듀스> 방송 이후에도 국내외에 걸쳐 많은 팬을 유입시켰다. 따라서 아이즈원의 활동에는 이들과의 약속, 신뢰 역시 걸려 있는 상황이다. 물론 새롭게 유입한 팬들이 아이즈원에 관심을 가진 것엔 <프로듀스>라는 간판이 계기가 되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들은 투표 조작이 밝혀진 이후에도 “우리는 순위 때문에 아이즈원의 팬이 된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며 그룹 활동을 지지하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해외 팬들이 중심이 된 저들은 왜 엠넷이 저지른 잘못에 아이즈원이 해체해야 하는지 인과관계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 인과관계가 문제다. 해체는 CJ에게 제대로 책임을 지우는 길이 아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아이즈원이 해체를 하게 된다면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일까? 방송을 본 시청자들에게 무슨 이득이 돌아가는가? 아이즈원이 해체하면 탈락한 연습생에게 어떤 이득이 있는가? 이 부분은 CJ가 책임지고 별도의 보상책을 제시하여야 해결되는 문제다. 현재 언론과 여론이 편향된 점은 피해자에 관한 논의는 찾아보기 힘들고 아이즈원이 해체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을 덮어 앞뒤가 뒤바뀌어 있다는 점이다.

경찰, '방송 조작 의혹' 프듀X 제작진 사무실 압수수색 [연합뉴스 자료사진]

아이러니하게도 그룹 해체로 명확한 이득을 보는 ‘유일한’ 주체는 CJ다. 그들은 투표 조작 사태로 브랜드가치에 치명적 타격을 입었고 주가가 하락하고 있다는 뉴스가 잇따른다. CJ가 타격을 최대한 빨리 회복하는 길은 아이즈원을 최대한 빨리 잘라내 책임 소지를 없애는 것이다. 이건 CJ에게 가장 손쉬운 해결책을 허락하며 퇴로를 열어주는 것과 비슷하다. 아이즈원의 모든 활동과 계획은 그야말로 삽시간에 취소되었는데, 만약 그것이 버리기 쉬운 그룹은 버리고 수익을 더 기대할 수 있는 그룹은 지키는 방식의 선택적 잘라내기라면 현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비윤리적 선택을 하는 것이다. 오히려 CJ가 현 사태에 제대로 책임을 지는 길은 누군가를 포기하는 방식으로 비난과 불명예를 전가하지 않고, 그들이 초대한 게임에서 장기 말이 돼 움직인 모든 이들에게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그 최우선 순위는 탈락한 연습생 피해자가 되어야 한다.

투표 조작을 바로 잡으며 세우려는 가치는 약속, 신뢰, 공정함, 거대 권력에 의한 피해자를 낳지 않기 정도일 것 같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심경에는 십분 공감한다. 하지만 그 가치들은 엠넷을 더 철저히 문책하며 재발을 방지하고, 피해자 구제를 행하는 것으로도 이뤄질 수 있다. 실제로 이만한 메가톤급 논란으로 재난을 당한 엠넷이 아이즈원과 엑스원을 해체하면 다시 조작을 저지르지 않고 해체하지 않으면 저지를 것이라 추론할 수는 없다. 해체는 거대 권력에 의한 또 다른 피해자를 낳는 그 취지에 상충되는 지점이 있는 해결책이며, CJ에게 비정한 해결책을 허락하는 것일 수도 있다. 현재 아이즈원은 방송 출연이 전면 취소된 상태고 앞으로 각자 개인 활동을 한다고 해도 이 상태로는 방송에 출연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저들이 음주운전이나 뺑소니, 하다 못해 신호위반 같은 범법 행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이 없는 상황에서 이런 결론이 고착되는 게 과연 정의로울까?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면 결과 역시 전면 부정해야 하며, 또 다른 피해자를 낳더라도 문제가 개입된 그룹은 완전 퇴출이 정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가령 그룹 존속을 용납해준다면 무언가 미진하고 불완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비록 CJ가 그룹 운영에 돌이키기 힘든 타격을 입었지만 저들을 운영하며 수익을 얻게 된다는 사실도 용납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관념적 명분과 정서적 보상감으로 얻는 무형의 가치가 십여 명의 어린 사람을 확실하게 몰락시킴으로써 생기는 유형의 가치 훼손 이상으로 의미나 실리가 있을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오히려 그건 존속을 용납함으로써 생기는 전례 이상으로 나쁜 전례를 남기는 결론일지 모른다. 만에 하나 그 몰락을 바라고 비난에 앞장서는 사람이 소수 있다면 그건 투표 조작 이상의 배덕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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