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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여해, 바다와 같아라] 라싸, 하늘아래 첫 동네 3
백종훈 원불교 교무 | 승인 2019.11.11 09:17

[미디어스] 라싸역 대합실 긴 나무의자에 앉아 무릎 앞에 세운 키 큰 가방에 팔을 포개 얹는다. 1박 2일 기차여행을 앞둔 일행들은 캐리어를 정리하면서 한국에서 싸온 밑반찬을 서로 나눴다. 주는 족족 사양 없이 받다보니 배낭은 어느새 배불뚝이가 되었다.

순례객들은 번갈아 서로의 짐을 봐주며 홀가분한 차림으로 허름한 선물센터를 둘러보기도 하고 바로 옆 매점에서 해바라기 씨를 비롯한 주전부리를 샀다. 밑 터진 바지 카이탕쿠를 입은 어린 사내아이가 대기실에 나타났다. 과자를 건네니 넙죽 받아 한입 베어 문다. 볼이 발간 젊은 엄마가 수줍게 웃으며 아이를 안고 사라졌다. 

천장이 높은 역사(驛舍)에 떠나는 사람과 이제 막 도착한 사람이 방향을 달리하여 엇갈린다. 마중 나온 이들과 배웅 나온 이들의 얼굴에 기쁨과 아쉬움이 상반된다. 충칭(重慶)을 거쳐 티벳에 발 디뎌 머문 지 닷새 째 되는 날이다. 이제 나도 가야할 차례다.  

청장고원에서 찍은 사진

오전 11시 30분, 상하이(上海)행 열차에 올랐다. 좁은 통로를 따라 각자의 여객실로 찾아들어간다. 4인 1실이다. 나는 짐칸에 넣지 못한 동료들의 큰 트렁크를 따로 모아 객차 끝 빈 공간에 차곡차곡 재어 놓았다.  

그런데 수더분한 중국인 승객 한 분이 복도 중간에 놓인 간이의자에 앉아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며 인상을 한껏 찌푸리고 있다.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한국 여성 셋이 탄 객실에 그는 들어가지 못했다. 의아해서 동행에게 물어보니, 아저씨 셋 있는 방에 아가씨 한 명이 앉아 갈 수는 있어도 아줌마 셋 있는 칸에 남자 혼자는 못 끼는 게 세상이치란다.  

시장하다 싶을 쯤 아제여행 김은희 가이드가 김밥을 내왔다. 전날 라싸 한식당에서 김밥재료를 준비하더니 이때를 위해서였다. 컵라면을 곁들인 성찬에 배가 따뜻하고 든든하다. 차량 실내 기압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산소가 충분하게 공급되다보니 고산병에서 벗어나 한결 편안하게 여정을 즐길 수 있었다. 

나취(那曲)를 지나 1시간 여 더 가자 드넓은 초나호(錯那湖)가 드러났다. 해발 4,594m,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민물호수다. 초원에서 사막으로 다시 들판으로... 풀 뜯는 야크무리와 양떼, 간간히 보이는 낡은 집, 어딘가 있을 목동이 한가롭다. 고원지대에 곳곳에 만년설 얹힌 봉우리가 우뚝 서 준엄하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색감을 머금은 풍광이다.

모두 잠든 새 하늘열차는 해발 5,020m 탕구라 고개(唐古拉山口)를 넘었다. 해돋이를 맞이하는 탄성과 셔터소리에 잠을 깼다. 오전 9시 경, 고비사막이 있는 칭하이성(青海省) 시닝(西宁)역에서 시안(西安)으로 가는 기차로 갈아탔다. 환승은 아주 쉬워서 마주 서 있는 열차의 같은 호, 같은 침실을 찾아가면 그만이었다. 

청장고원에서 찍은 사진

이내 차창 밖 풍경이 달라졌다. 낯익은 인간의 손 냄새가 짙어간다. 이슬람 모스크와 처마가 높이 솟은 중화풍 기와집, 낡은 시멘트 건물과 세련된 현대식 건축이 뒤섞여 공존한다. 간쑤성(甘肅省)의 성도 란저우시(兰州市)를 거쳐 저녁 여덟시 반에 목적지 시안에 도착했다. 라싸에서 시안까지 서른 세 시간 2,684km를 달렸다. 

도란도란 지난 노정을 얘기했던 벗들, 노래로 흥을 북돋았던 길동무들, 철로 위에서도 명상하기를 잊지 않았던 도반들, 그리고 티 없이 잔잔한 미소... 함께한 모든 순간은 정겨웠다. 

티벳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한 연화생 존자(Padmasambhava)께서 8세기에 남긴 마지막 말씀은 다음과 같다. 

쇠로 된 새가 하늘을 날고,
바퀴 달린 말이 땅 위를 달릴 때,
너희 티벳족은 세상에 개미떼처럼 흩어지리라.
하여 법은 붉은 족에게 퍼지리라.

수많은 이들이 쇠로 된 새를 타고 하늘을 날아 라싸를 만나고, 헤아릴 수 없는 인파가 철마에 몸을 실어 칭짱고원(青藏高原)을 건넌다. 세월이 갈수록 자연스레 티벳인들은 옛 모습을 잃어갈 것이다. 하지만 모든 씨보다 작은 겨자씨가 자기 몸을 깨고 크게 자라서야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 듯, 티벳의 좁은 문이 열리면 열릴수록 라싸의 푸른 하늘을 닮은 미소가 온 누리에 넘실거릴 것이다.  

그날, 고도(高道)를 기다리는 내 마음의 허물도 한 꺼풀 벗겨지리라.

백종훈 원불교 교무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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