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이제 집권 후반전이다. 반환점을 돈 문재인 정권의 운명은 어느 쪽을 향할까. 성공인가, 실패인가. 시간이 정권의 편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국정운영의 동력은 지속적으로 유실되게 돼 있다. 이 속도를 얼마나 늦추느냐가 관건이다. 그러기 위해선 후반전 스타트를 잘 끊어야 한다.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여야 5당 대표와 회동을 한 것은 좋은 그림이다. 술까지 곁들여서 나름대로 현안에 대한 허심탄회한 토론이 오갔다고 한다. 모친상 조문 답례가 명분이 된 것도 보기에 좋다. 앞으로는 좀 더 사소한 계기로도 대통령과 여야 대표들의 회동이 이어졌으면 한다.

이 자리에서 가장 첨예한 쟁점이 된 것은 선거제도 개혁이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운을 띄우고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반발하자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다시 반박에 나섰다고 한다. 특히 황교안 대표와 손학규 대표 사이에는 고성이 오갔다는데, 두 당이 요즘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문재인 대통령 입장에서 집권 후반기의 성패를 가를 첫 번째 관문은 누가 뭐래도 내년 총선이다. 선거의 결과는 구도, 인물, 정책이 결정한다고들 하는데 이 중 가장 중요한 게 구도이다. 보수정치의 재편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일 보수정치가 ‘문재인 정권 반대’를 내걸고 단일 전선을 형성하는 데 성공한다면 내년 총선은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는 승부’가 될 것이다.

자유한국당 입장에선 우리공화당으로 대표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극단주의자들과 바른미래당 내 바른정당계를 모두 데려오는 게 중요하다. 정치인들은 명분만으로 움직이지 않으니 일종의 강제력을 동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자면 양당구도에 기반한 공천권 행사라는 강력한 유인이 필요하다. 자유한국당으로 공천을 받지 못하면 어렵다는 논리가 서야 한다.

그런데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은 어찌됐든 양당구도에 원심력을 가하는 요소이다. 우리공화당과 유승민계가 각개약진하면 자유한국당은 보수세력의 ‘원 오브 뎀’으로 전락한다. 총선은 필패이고 최악의 경우 상당 기간은 집권을 입에 올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

바른미래당 내의 비당권파들 입장에서 보면 이대로 자유한국당과 통합하는 것은 위험한 모험이다. 마라톤 애호가로 변신한 안철수 전 의원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는 것 또한 걸림돌이다. 황교안 대표가 직접 유승민 의원을 언급하며 통합을 주장했는데도 신당 창당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건 이런 이유다. 이들에게 연동형비례대표제가 동아줄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자유한국당의 ‘흔들기’로 당이 풍비박산이 났다고 생각하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입장에서도 이 조건은 마찬가지다. 그러니 황교안 대표와 고성을 지르며 싸울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양손을 내저으며 두 사람의 충돌을 만류했다지만 결국 여당이 선거제도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서 드러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후 청와대 관저에서 여야 5당 대표와 만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늘 강조하듯 대중적 동력이 없으면 함정에 노출된 신세일 수밖에 없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국회의원 세비 삭감을 주장하는 것은 선거제도 개혁과 의원정수 확대에 대한 여론을 바꿔 보려는 시도 중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의 정치 불신이 상당한 탓에 충분한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선거제도 개혁의 최대 수혜자라고 볼 수 있는 정의당이 대안적 정치의 비전을 보여주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도 낙관을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정의당이 치고 나갈 수 없다면 ‘범여권’의 개혁성이 강조되는 맥락이 있어야 하는데 조국 전 장관 논란 이후에는 그런 기대를 갖기도 어렵다. 10일 오후 청와대의 이른바 ‘3실장’들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 반환점을 맞아 청와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는데, 이 자리에서의 메시지를 봐도 그렇다.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의 규정에 의하면 집권 전반기는 “대한민국의 틀을 바꾸는 전환의 시기”였고, 후반기는 “전환의 힘을 토대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해 도약해야 하는 시기”라고 한다. 집권 전반기에 대한민국의 틀이 얼마나 전환이 됐는지도 의문이지만 이 메시지의 핵심이 “전환은 이제 끝”이라는 것에 있다는 것은 걱정스럽다. 개혁은 집권 전반기에 끝내고 중반기부터는 성과를 내서 종반기에는 이를 바탕으로 재집권 기반을 마련한다는 전형적 구도를 다시 언급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면 총선 전략은 개혁의 당위보다는 성과를 과시하는 틀 안에서 짜여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방향을 떠나서 유감스럽게도 과시할 성과가 많지 않다는 것부터가 문제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됐다는 체감을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고 이 정부가 매달리다시피 했던 북핵 문제도 해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개혁은 소수의 ‘조국’들에게만 좋은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렇다 보니 졸속적인 정시확대나 생색내기식 4차산업혁명, 묻지마 SOC투자, 대기업 의존적 일자리 정책 같은 즉자적 효과를 단기적으로만 거둘 수 있는 카드만 남은 것이다.

보수야당의 누구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수명까지 언급하며 극언을 했다고 하지만, 집권 여당이 확실한 개혁의 의지를 갖고 있다면 장기집권을 용인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밥 한 술에 배부르지 않고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다. 문제는 숟가락에 얹힌 하얀 알갱이가 과연 밥인지, 이 천리길이 과연 목적지로 향하는 것은 맞는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일들만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MBC를 통해 100분간의 생중계로 ‘국민과의 대화’에 나선다고 한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노변정담을 참전과 뉴딜의 당위와 불가피성을 직접 국민에 설명하는 수단으로 썼다. 이번 기회도 마찬가지로 ‘좋은 그림’을 만드는 일에 집중할 게 아니라 집권 후반기의 청사진을 명확하게 내놓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약속한 개혁을 원칙대로 추진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어야 한다. 그러자면 개혁을 정파적 이해관계의 포장지로 소모하는 조국 전 장관 논란 같은 일들도 확실히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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