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영혼을 가진 두 젊은이가 최근 결혼했다. 모차르트가 태어난 날인 1월27일, 두 사람은 언론계의 유명한 페미니스트인 CBS 변상욱 국장의 주례로 아주 유쾌한 결혼식을 올렸고, 신혼여행 다녀와서 내게 '잘 다녀왔다'는 예쁜 문자도 보내왔다. 두 사람을 위해 오페라를 하나 소개하고 싶다.

모차르트가 '사랑과 결혼'이라는 주제에 대해 일정한 성찰을 보여준 작품은 <피가로의 결혼>이 아니라 <코시 판 투테>, 번역하면 <여자는 다 그래> K.588이다. 이 오페라는 생각할 게 참 많은 작품이다. 먼저 줄거리.

▲ 모짜르트의 오페라 <코시판투테> 포스터.
1막 : 사랑에 빠진 두 청년 굴리엘모와 페르란도는 자기 약혼녀 - 피오르딜리지와 도라벨라 자매 - 의 정절은 확고하다고 자랑한다. 그러자 인생 경험이 많은 돈 알폰소는 "정절 같은 건 원래 없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누가 옳은지 내기가 벌어진다.

돈 알폰소의 각본에 따라 두 사람은 전쟁터로 떠난다고 약혼녀들을 속인 뒤 아라비아의 부자로 변장하고 다시 나타난다. 도라벨라와 피오르딜리지는 낯선 두 사람의 구애를 단호히 거부한다. 그러나 두 사람이 "사랑을 받아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며 독약을 마시고 기절한 체 하자 동정심을 느낀다. 의사로 변장한 하녀 데스피나가 두 사람을 살려 놓는다.

2막 : 하녀 데스피나가 바람을 잡자 두 여자는 마음이 흔들린다. 산들바람 부는 야외 파티에서 두 여자는 낯선 남자들의 마음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짝이 바뀌었다. 피오르딜리지는 끝까지 원래 약혼자 굴리엘모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못 버리고 그를 찾아 남장을 하고 전쟁터로 떠날 각오까지 한다.

그러나 결국 새 애인과 결혼하기로 한다. 두 쌍의 결혼식이 진행되는 도중에, 전쟁터에서 두 약혼자가 돌아왔다는 소식이 날아든다. 공포에 질린 두 여자는 약혼자에게 용서를 빈다. 두 쌍의 남녀는 '정절'의 환상이 깨졌지만 실질적인 사랑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며 원래 짝과 결혼식을 올린다.

이 오페라는 아무리 되풀이 봐도 주인공 도라벨라와 피오르딜리지, 굴리엘모와 페르란도가 늘 헷갈린다. 다시 보며 확인 결과 페르란도 애인이 도라벨라, 굴리엘모 애인이 피오르딜리지이다.

피오르딜리지는 1막에서 '바위처럼 흔들림 없는 마음으로', 2막에서 '내 사랑, 부디 용서해 주세요' 등 이 오페라에서 가장 숭고한 두 아리아를 부른다는 점에서 도라벨라와 구별된다. 도라벨라가 좀 더 의지가 약한 게 차이라면 차이다. 그녀는 2막이 시작하자마자 "애인 몰래 하면 되지, 의심받으면 데스피나가 알리바이를 만들어 줄거야"라며 먼저 흔들린다. 하지만 이건 결정적인 차이가 아니다. 두 여자의 성격은 거의 같다.

이에 반해 하녀 데스피나는 귀엽고, 재치있고, 속물스런 지혜가 넘친다.

▲ <코시판투테>.
아하, 데스피나! 그녀는 두 여자를 위로하며 "이 세상에 사랑 때문에 죽은 여자는 없어요", "남자들을 믿느니 일기예보를 믿는 게 낫지요"라지 않나, "말 한마디로 수백명 꼬시고, 눈빛 하나로 수천명 꼬실 수 있어요"라지 않나, "애인이 전쟁터에서 죽으면 더 잘 된 거지요, 다른 사람 만나면 되잖아요"라고 한다. 게다가, 하녀 신분으로 두 귀족 여성에게 "노예의 사슬을 벗어던지라"고 한다. 어휴, 귀여워……

굴리엘모와 페르란도는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다. 돈 알폰소는 인생 경험이 많다는 점에서 구별이 되긴 한다. 모차르트와 대본 작가 다 폰테는 등장인물들을 '개인'이 아니라 그냥 '종'(species)으로 간주한 것 같다. 두 남자가 두 여자를 속인 결과 파트너가 바뀌었지만, 그래도 얼마든지 연애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암튼, 굴리엘모 애인이 피오르딜리지인지, 페르란도 애인이 도라벨라인지, 끝까지 헷갈릴 것 같다. 사실, 헷갈려도 아무 상관없다. 거의 똑같은 인물들이니까……

이 오페라는, 흔히 얘기하듯 '여자는 정조 관념이 없다'는 게 주제가 아니라, "여자도 남자랑 똑같이 피와 살로 된 인간"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말하고 있다. '연인들의 학교'라는 부제가 말해 주듯, 상대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난 뒤에야 참사랑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대상화, 베토벤이 불우한 연애를 거듭한 이유

베토벤과 살리에리는 이 작품을 싫어했다. 살리에리는 이 대본 - 당시 빈 궁정에서 일어났던 실화를 소재로 한 것이라고 한다 - 으로 오페라를 의뢰받았지만 음악으로 만들 가치가 없는 작품이라며 거절한 바 있다. 베토벤은 모차르트의 이 작품이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싫어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베토벤은 늘 연애에 실패했는데, 그건 물론 계급사회의 벽을 뛰어넘기 어려웠던 탓이 크지만, 베토벤이 여자를 '피와 살로 된 인간'으로 볼 준비가 덜 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베토벤은 독일 교양문학의 전통에서 자주 나타나는 바, 여성을 '구원의 이상', 뮤즈이자 정신적으로 승화된 초월적 존재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즉, 여자를 '대상화'시켜 놓고 보는 오류를 늘 저질렀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여자는 '대상화'되기를 싫어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베토벤은 잘 몰랐고, 그 대가로 늘 불우한 연애를 거듭해야 했다. 반면에 모차르트는 이 점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이 작품을 오페라로 만드는데 거부감이 없었을 뿐 아니라, 본인 스스로 여자와 친절하고 상냥하게, '인간'으로서 나누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코시판투테' 옥의 티, 사랑을 시험대에 올리다니……

이 오페라에도 찜찜한 점이 있다. 내가 볼 때, 새 남자의 유혹에 넘어간 두 여자보다 더 나쁜 것은, 두 여자의 정절을 시험한 남자들이다. 사랑을 시험대에 올리는 것은 신성모독이란 말이다. 남자들은 여자가 외도한 증거를 낱낱이 들이대며 추궁하는데, 이건 대단히 뻔뻔하고 폭력적인 짓이다. 그러나 다 폰테와 모차르트의 머리에는 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시대의 한계일까?

하긴, 믿었던 약혼녀가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주자 두 남자가 죽을 듯 괴로워하는 걸 보면 불쌍하긴 하다. "여자들이여, 그대들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름답다. 하지만 너무나 흔히 남자들을 배신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노래할 때 공감이 안 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두 여자를 나무라는 두 남자의 태도는 요즘 상식으로 보면 'X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 아닐 수 없다.

또 하나, 여자 입장에서 볼 때 원래의 애인도 애인이지만 변장한 낯선 사람 또한 새 애인이다. 도대체 누구와 결혼하는 게 맞나? 결혼을 하는 게 바람직하긴 한 건가? 원래 애인과 결혼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 설정된 다 폰테의 대본에 의문을 품어봄직 하다. 하긴, 누구와 결혼하느냐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호르몬 작용으로 기껏 2년밖에 지속되지 않는 '들뜬 사랑'보다는 끊임없이 나누고, 존중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결혼 생활에 더 중요한 것일 테니 말이다.

끊임없이 나누고 소통하는 게 남녀관계

여자 입장에서는 "남자도 피와 살로 된 인간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여자는 다 그래>라고 하니까 "<남자는 더 그래> 같은 오페라는 없수?"라고 질문하는 여성이 있을 수도 있다. 남자와 여자는 정말 서로 너무 모른다. 죽은 다음에 상대의 심장을 발견하는 한이 있더라도 끝없이 소통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게 남자와 여자의 관계일지도 모른다.

음악은 <돈지오반니>나 <요술피리>에 비해 가볍다. 그러나 원숙한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한껏 맛볼 수 있다. 사랑에 들뜬 1막의 남성 듀엣, 떠나가는 애인들의 평화로운 항해를 바라는 부드러운 3중창, 낯선 두 남자가 구애할 때의 에로틱한 선율, 피오르딜리지의 숭고한 아리아들은 이 오페라에서 제일 좋은 대목들이다. 오랜만에 듣는 모차르트 오페라... 아아, 모차르트는 진정 인류를 위한 축복이다!

현대적으로 연출한 것은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 슈타츠오퍼 베를린 것이 좋다. 도리스 되리라는 사람이 연출했는데 무대도 야할 정도로 색채감 있게 잘 꾸몄다. 전쟁터에 갈 때 배 대신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걸로 설정했고, 두 남자를 아라비아 부자 대신 야성적인 청년으로 - 체 게바라 티셔츠를 입고!! - 변장시켰다. 여자들의 엄살을 애교 있게 잘 묘사했다. 연출자는 "여자도 남자랑 똑같이 피와 살로 된 인간"이라는 오페라의 메시지를 잘 이해하고 있었던 듯, 두 여자의 진솔하고 인간적인 행동을 많이 보여준다. 겨드랑이에 향수를 뿌린다든지, 과자를 먹다가 질질 흘린다든지, 자기 애인이 더 멋있다고 시샘하며 자랑한다든지…… 고전적인 연출은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한 라 스칼라 오페라의 연주가 훌륭하다.

1984년 MBC 입사.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시리즈에서 제주 4 .3, 여순사건, 보도연맹, 국가보안법, NLL 등을 다루었고, 모차르트, 정경화, 정명훈, 장영주, 장한나 등에 대한 음악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저서 <내가 사랑하는 모차르트>, <우리들의 현대침묵사>(공저). 현 MBC 외주제작센터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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