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정치평론이라는 게 참 바보같은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과연 평론의 가치가 있는지 의문인 일들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왜 가치가 없는 일인지 해설하는 것도 평론이다. 독자들의 많은 양해를 부탁드린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리더십 논란은 한 편의 코미디 같다. ‘조국 사태’라는 호재를 만나고도 죽을 쑤고 있다며 보수언론마저도 연일 면박을 주고 있다. 면박의 이유는 대략 세 가지다. 첫째는 문재인 대통령을 ‘벌거벗은 임금님’에 비유한 일이고, 둘째는 뜬금없이 색소폰 연주 실력을 뽐낸 일이며, 셋째는 전직 육군 대장 박찬주 씨를 영입하려 한 일이다.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인데 ‘벌거벗은 임금님’과 같은 일은 있을 수도 있다고 본다. 동료 의원을 감금하고 국회를 점거하는 것보다는 좀 수준이 낮더라도 풍자와 해학을 시도하는 게 더 나아 보인다.

색소폰 연주도 ‘대권’을 꿈꾸는 입장에선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 황교안 대표는 사실 검사 시절부터 색소폰 실력을 연마해왔는데 자랑하고 싶어 근질근질한 그 마음,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전반적인 분위기만 좋았더라도 가르마마저 꽉 막혀 보이는 황교안 대표 같은 인물이 색소폰을 부는 모습이 나름의 ‘이미지 전략’으로 기능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박찬주 씨 문제는 어떻게 봐도 납득이 어렵다. 애초 박찬주 씨를 영입하려던 이유는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작용했을 것이다.

첫 번째는 적폐청산의 희생자라는 이미지를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박찬주 씨는 군 내에서는 나름대로 능력있는 인물로 평가돼 왔다고 한다. 하지만 시대착오적 인식을 갖고 병사들을 대한 탓에 이 지경에 이르렀다. 본인은 ‘음모’라고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최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스스로 증명했다.

박찬주 전 육군대장 (연합뉴스)

이런 인물에 ‘희생자’ 이미지를 덧씌운 것은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이다. 보수언론은 박찬주 씨에 대한 검찰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운동권 정권이 능력있는 ‘4성장군’에 포승줄을 채워 일부러 망신을 줬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미국에서 행방불명 되기로 한 조현천 씨에 앞서 기무사령관을 역임했던 이재수 전 사령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도 이런 서사에 동원됐다. 이런 맥락을 보면 황교안 대표의 박찬주 씨 영입 시도는 정권의 정파적 음모에 불과한 적폐청산의 희생자들을 내세워 ‘반문전선’을 형성하겠다는 단순한 계산의 산물이었을 가능성이 큰 것 같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닐 거다. 박찬주 씨는 육사 37기로 박지만 씨와 동기이고 독일 육사를 다녀왔기 때문에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과 함께 ‘독사파’로 지칭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박해를 당한 걸로 생각이 된다는 게 박찬주 씨의 주장이다.

여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육사 출신 중에서도 엘리트 그룹에 속한 이들의 울분이다. 이 정권은 육군, 특히 육사 출신을 멀리하며 요직을 공군이나 해군 출신들에게 맡기고 있다. 예를 들면 송영무 전 장관은 해사, 직전에 합참의장을 맡았던 정경두 장관은 공사, 정경두 장관의 후임인 박한기 합참의장은 학군 출신이다. 그러니까 군으로 범위를 좁힌다면 이 정권이 검찰만큼 문제시하는 게 바로 육사인 셈이다. 즉, 박찬주 씨 영입은 군 내의 옛 기득권인 보수파들에 어필할 수 있는 카드였던 셈이다. 이게 황교안 대표가 이런 일을 한 두 번째 이유가 아닐까 한다.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역시 전통의 안보 담론으로 역습을 가하겠다는 계산이었던 걸로 생각된다. 최근 ‘이동식 발사대’ 논란에서 보듯 보수야당들은 이 정권이 북한에 너무 저자세로 일관해 명백한 사실마저 부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동식 발사대가 어쨌다느니 하는 논란은 지엽적인 것에 불과하다. 창과 방패의 영원한 대결을 멈추는 유일한 방법은 평화를 기정사실화 하는 것 뿐이다. 그럼에도 보수야당들이 어떻게든 이 문제를 쟁점화 하려는 건 안보를 팔아먹는 정권과 안보를 지키려는 보수세력의 구도를 만들자는 거다. 박찬주 씨 영입은 아마 그런 구도를 보여줄 수 있는 카드로 여겨졌을 거다. 황교안 대표가 “귀하신 분”이라고 한 것에 다 이유가 있다.

그러나 장담하는데, 자유한국당은 이런 식으로 나라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이 정권이 그렇게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은 여전히 중재자니 촉진자니 하지만 어느 누구도 연내에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서 뭔가 성과를 내리라는 예상을 하지 않는다. 교착국면이거나, 아니면 싱가포르 때처럼 모양만 내는 합의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하노이 때처럼 ‘노딜’일 것이다.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이 남북미 구도를 빠져 나와 동아시아 그랜드 게임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 이후 상황을 뒤집기는 어려워졌다.

유일한 희망은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인데, 하원의 탄핵조사 일정이 진행 중이라 그것도 쉽게 낙관할 수는 없다. ‘변덕’이 작동을 한다 해도 결국 미국이 내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고, 심지어 그 중에는 주한미군 문제나 핵군축협상처럼 이 정권에는 오히려 불리한 것도 있기 때문에 한국이 중재자나 촉진자가 아니라 오히려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도 생각해봐야 한다.

안보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여전히 군비증강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게 그런 근거 중 하나다. 이 정권에서 차질없이 추진되는 군 관련 사업들은 공군과 해군을 계속해서 기쁘게 해줄 것이다. 북한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F-35A를 무사히 도입한 것에 이어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본격적으로 추진하자는 주장이 해군발로 다시 나오는 게 그렇다. SM-3 미사일 도입을 하네 마네 하는 얘기도 여전하다.

이런 본질을 가린다는 점에서 박찬주 씨의 허슬플레이(?)는 우리 공동체의 논의에 해를 끼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박찬주’라는 안개를 걷어 내야 지금 문제가 무엇인지를 직시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집권 여당과 보수야당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동전을 그저 손바닥 뒤집듯 해온 게 지금까지의 ‘개혁’이었다.

영화 ‘다크나이트’에는 양면이 같은 동전을 가진 하비 덴트라는 사람이 나온다. 그는 늘 동전을 던져 가부를 결정하겠다고 하는데, 결과는 앞면이 나오도록 정해져 있으므로 결국 자기가 원하는대로 하겠다는 얘기가 된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정치가 이와 같다.

이 영화에서 하비 덴트는 악당 조커의 음모에 휘말려 몸 반쪽에 화상을 입고 ‘투페이스’가 되는데, 이때 소지하고 있던 동전도 뒷면이 새카맣게 타버린다. ‘동전 던지기’는 이렇게 된 이후에야 제대로 된 의미를 갖게 되는데 정치로 비유하자면 도널드 트럼프나 브렉시트 같은 게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혹시 포스트 황교안 체제라는 게 있다면 이런 일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런 결과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동전을 그만 던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황교안 대표나 박찬주 씨나 그만 은퇴를 하는 게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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