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공영방송 KBS가 최근 한 달간 방송사고, 논란이 된 방송으로 총 네 차례 입장문을 냈다. 연이은 논란에 뉴스 신뢰도와 시청률 모두 추락하고 있는 가운데 KBS가 심각성을 모르고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독도 인근 해상에서 추락한 소방 헬기의 이륙 당시 영상을 찍고도 경찰에 제공하지 않아 불거진 논란을 제외하고도 KBS는 최근 한 달 동안 수차례 입장문을 냈다. 이미지를 잘못 사용한 방송 실수부터 시청자의 감수성을 따라가지 못해 사과문을 내기도 했다.

지난달 29일 KBS <뉴스7>은 황사 원인을 분석하는 리포트를 내보내면서 동해에 ‘Sea of Japan’(일본해)‘라고 쓰인 지도를 사용해 비판받았다. KBS는 논란 직후 “미국 해양대기청 지도에 표기된 일본해 표기를 부주의로 노출했다.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며 사과방송을 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는 사고 발생 당일에만 관련 민원이 70여건 들어왔다.

앞서 11일에는 KBS <930뉴스>, <뉴스12>에서 백두산을 중국 명칭인 ’창바이 산‘으로 보도했다. 누리꾼들 사이에 논란이 일었지만 사과 공지 없이 제목과 내용을 수정해 또 한 번 비판을 받았다.

(사진=KBS)

방송사고가 아닌 논란도 연달아 터졌다. 유튜브 방송 ‘유시민의 알릴레오’에서 지난달 8일 제기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인의 자산관리인 김경록PB와의 인터뷰 논란은 KBS의 취재·보도에 대한 문제로 불거졌다. 인터뷰이의 취지와 다르게 보도했다는 지적과 검찰에 인터뷰 내용이 유출됐다는 의혹 등이 일었다. KBS는 “인터뷰 내용을 검찰에 전달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내고 특별취재팀과 조사위원회를 꾸리겠다고 밝혔다.

해당 논란은 KBS 보도의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졌다. 지난 10월 27일부터 30일까지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미디어오늘·리서치뷰 공동 여론조사 결과,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둘러싼 이슈를 가장 공정하게 보도한 매체가 어디냐는 질문에 KBS는 SBS·MBN·연합뉴스TV와 함께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MBC는 19%로 1위인 반면 KBS는 5%로 나타났다.

뉴스 시청률도 하락세다.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코리아의 KBS <뉴스9> 전국 가구시청률을 보면 지난 6월 이후 12%에서 11%대를 유지하다 10월 마지막 주 주간 시청률이 10.4%로 나타났다.

지난달 25일 방송된 KBS 시사프로그램 <시사직격> ‘한일 특파원의 대화’ 편에서는 일본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대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관련 민원만 300여 건이 넘을 정도로 시민들은 분노했다.

이에 방송 다음날 제작진은 “현재 한일관계로 인해 악화된 국민 정서와 감정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였음을 통감한다”며 “프로그램이 결과적으로 애초의 기획의도와 다르게 논란을 일으키고 시청자 여러분께 불쾌감을 드린 부분에 대해 뼈아프게 받아 들인다”는 입장문을 냈다.

정연우 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는 <시사직격> 관련 논란을 두고 “산케이 신문이나 조선일보의 시각 등은 TV조선 등 다양한 경로가 확보되어 있는데, 공영방송마저 균형을 맞춘다고 이들의 목소리를 내보내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KBS는 공영방송으로서 기본적으로 진보적인 가치를 고민해야 한다”며 “사회 전체의 공론장에서 보면 미디어가 쏟아내는 정보는 광고주의 영향을 받아 보수적인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전체 공론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선 공영방송에서 진보적인 콘텐츠가 나와야 공론장이 풍부해질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이어 발생한 방송사고 관련해서는 시민들의 의식이 변한 만큼 제작진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보다 시민들이 다양한 시각에서 콘텐츠를 보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빈도수가 늘어났지만, 제작진의 콘텐츠 포맷이나 제작방식에 혁신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고 짚었다.

KBS시청자위원인 정민영 변호사는 5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KBS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언론불신이 팽배해 작은 실수도 논란으로 커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국민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언론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방송사고가 발생하거나 언론사 구성원이 잘못된 행동을 하면 바로 노출되고 언론사 신뢰로 직결되는 문제라 더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은 언론사나 언론사 구성원들이 비판이나 감시의 대상에서 빠져있던 측면이 있었는데 기자도 페북을 하고 노출 되다보니 문제가 부각된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언론이 예전에는 새로운 사실을 확인하면 쓰기 바빴는데 지금은 시민들이 기사를 어떤 맥락에서 읽히는지까지 묻고 있어 언론이 이에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고 말헀다.

연이은 논란으로 시민들이 KBS를 민감하게 바라보고 있는 시기에 특히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슈를 다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준희 한양대 언론정보대학 겸임교수는 지난 3일 KBS <저널리즘 토크쇼J>에서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채무 의식을 느끼는 건 좋지만 엘리트 의식은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KBS가 불행히도 게임 체인저가 아니다. 옛날처럼 뭔가 정보를 독점하고 있지 않고 엘리트로서 리드하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솔직하게 인정하고 외려 뒤따라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판들이 조금씩 정리되고 새로운 길을 찾아갔을 때 뒤에서 이야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KBS 내부 구성원들 간에 공유하는 가치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2016년 KBS 경영평가단 외부전문가로 활동한 원용진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는 KBS 내부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 교수는 “KBS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서로 의견은 많은데 대화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정도 합의하는 가치가 있으면 자사 프로그램이나 보도와 관련해 지금처럼 불만이 나오지 않을 텐데, 각자 움직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원 교수는 “직종 간에 아니면 기수 간, 부서 간에 한 번은 KBS란 조직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논의가 됐으면 좋겠다”며 “다양한 생각이 있는 건 좋지만 조율할 필요가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내부가 큰 변화를 겪다 보니 서로에 대한 불신이 크고 정비가 안 되고 있다. 현재 KBS는 진영논리가 아닌 생존 논리가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KBS 해체'와 같은 강력한 주장을 하는 이도 있다. 지금과 같은 경영구조에서는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2018년 KBS경영평가보고서를 작성한 최동석 한양대 교수는 “KBS는 3년마다 사장이 바뀌는 조직이다 보니 피라미드 구조가 유독 강한 조직이다. 조직 내에서 오래 머물던 이들이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문화를 형성하는 것이다. 방송사고가 나도 성과보다는 내부 질서, 관습을 중시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자, PD 등 경영을 모르는 이들이 경영을 맡고 있으니 위기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른다”며 “제대로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게 수평적인 구조로 경영플랫폼을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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