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성실히 노력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경쟁을 하더라도 반칙은 처벌을 받을 거란 믿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노력하면 결과가 달라질 줄 알았습니다. 저의 결과도 공정할 줄 알았습니다. 기회의 공정성을 믿었던 제가 한심합니다'

서울대 집회에 나선 한 학생의 발언이다. 이른바 '조국 사태', 청년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다. 모이기 쉽지 않은 대학가, 단 2명이 준비를 했는데 500여 명의 학생이 몰렸다. 조국 전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에 임명된 지 이틀만의 일이다. 8월 23일부터 10월 3일까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부산대 등에서 13차례 집회가 열렸다. 거기서 나온 96건의 발언, <시사기획 창>은 이 발언을 데이터 분석 기법을 통해 살펴봤다. 단어, 빈도, 연결 중심성을 통해 심층 의미를 분석했다.

KBS 1TV <시사기획 창> ‘오지 않는 청년의 시간’ 편

학생들의 발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당연히 조국, 그리고 정의이다. 그리고 의미망의 중심에는 공정이 있다. 학생들은 ‘공정에 대한 위반’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정의에 위배된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대학생들이 생각하는 ‘공정’이란 무엇일까? 바로 기회의 평등이다. 교육을 통해 자신들의 노력이 보상받고 인정받는 세상, 앞으로의 삶이 보장받는 세상이다. 조국 사태를 통해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과정으로서의 공정성'이 훼손되었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런 그들의 생각은 '후안무치'란 단어로 연결된다.

'부모 잘 만난 고등학생이 연구에만 매진한 어떤 사람의 논문 1저자에 자기 이름을 올리고 논문을 도둑질한 세태가 너무나 부끄럽다.' -연대 대학원생

'한번 두번 받아볼까 말까 한 장학금을 가정형편이 더 어렵거나 성적이 더 좋은 학생이 아니라 유급을 두 번이나 당한 최하위권 학생이 여섯 학기 내내 받았다는 사실, 이러고도 기회가 평등하다 할 수 있나?' - 고대 학생

정의와 공정에 대한 문제제기

KBS 1TV <시사기획 창> ‘오지 않는 청년의 시간’ 편

대학생들의 상식에 대한 질문, 공정에 대한 의문, 그 기저에는 바로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서려 있다. 박근혜 탄핵 이후 그 상처를 보듬어 줄 것이라는 기대로 이 정부를 뽑았는데,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로움'을 내세운 정부가 국민의 상처를 다시 후벼팠다고 느끼는 것이다. 바로 '촛불 정부’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함께 광장에 서서 나누었던 공유된 기억은 곧 새 정부가 이루어줄 도덕적 사회에 대한 기대로 승화되었기에 '도덕적 결함’에 분노했다. 하지만 이건 표면적인 것이다. 자신들의 기대를 모아 정권을 '맡겼는데', 어쩌면 이 정부도 애초에 정의롭거나 공정하지 않고, 관심조차 없을지도 모른다는 소외감이 분노로 표출되었다.

학생들은 이 사태를 기성세대가 보내는 사회적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런 '기성세대의 상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물론 이들 학생들이 들고 일어선 것에 대해 비판적 의견이 있었다. 이미 기득권인 서울대 학생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자유한국당의 손길이 어른거린다 등등.

하지만 학생들은 반박한다. 자신들은 박근혜 탄핵 세대라고. 그때도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었다고. 자신들이 나선 건 어떤 정치적 사상이 따른 것이 아니라고.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목소리를 내는데 또 지금 자신들의 목소리가 특정한 진영의 목소리로 치부되는지 모르겠다고.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진보 세력이나 보수 세력 모두 정치적으로 반응했다. 정부는 대입제도 개선으로 화답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입시제도가 이상해서가 아니라고 한다.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그 단점을 악용하는 것이 문제라고.

자신들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 하지만 그런 보상이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일상에서 느낀 불공정에 대한 상처와 원망이 '조국 사태'를 빌미로 터진 것이라고 전문가는 분석한다. 학생들은 민주, 반민주의 구도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거시적인 정치적 민주화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이 마주한 공정과 불공정의 문제라고.

고용 없는 저성장 시대를 맞닥뜨린 세대

KBS 1TV <시사기획 창> ‘오지 않는 청년의 시간’ 편

1960년대생 대졸자는 100%는 물론 고졸자 35%까지 취업이 되었다. 이들이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을 차지했다. 하지만 1990년대 대학을 나온 이들은 53.4%만이 취업을 했다. 취업만이 문제가 아니다. 한국, 중국, 일본, 미국 등의 청년 1000명에게 청년 성공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이 무엇인가라는 설문 조사를 했다.

결과는 충격적이다. 미국, 중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이 재능과 노력을 우선순위에 놓은 반면, 우리의 젊은이들은 부모의 재력을 첫 번째 조건으로 답했다. 두 번째 조건도 인맥이었다. 세 번째에 가서야 재능이라 답했다.

심지어 인맥의 정의도 다르다. 홍콩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사회관계망을 인맥이라 여기는 반면, 우리 사회에서 인맥은 당연히 부모의 인맥이다. 결국 우리 사회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성공에서 가장 결정적인 변수를 '부모'라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의 능력과 인맥이 자신들의 능력보다 성공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여기니 '조국 사태'에 분노가 폭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이런 생각은 바로 우리 사회 이동성의 정체와 하락을 방증한다. 정체된 사회, 숙명론과 패배론이 팽배한 사회, 당연히 행복지수가 떨어진다. 그리하여 희망도 노력도 할 필요가 없는 사회, 출발선이 같지 않은 것 같다는 박탈감, 바뀔 수 없다는 좌절감이 만연한 사회. 촛불 이후에도 청년의 삶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촛불을 든 청년들은 그런 미래에 반대한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20~30대 직원이 2004년 60%였던 것이 2015년 45%, 외려 14%가 감소했다. 20~29년 차 직장인의 연봉을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가 초봉에 비해 4배나 늘어난 반면, 유럽은 겨우 1.5배다. 직무가 아니라 근속 연수에 따라 연봉이 결정되는 연공급제, 대기업 중심의 노조, 우리 사회 노동 구조가 가지고 있는 모순이 청년을 통해 첨예하게 드러나고 있다. 청년노조 유니온은 사다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다리 없이도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에 대해 논의가 되어야 할 시기라 주장한다.

사회 진입만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청년 정책은 일부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문제에만 집중돼 왔던 점도 재고되어야 한다. 일상에 불공정이 만연해 있다고 체감되는 상황에서 사회 구조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게 청년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이다. 하지만 국회나 정당의 관심은 실업에만 주목한다. 정작 ‘왜 실업에 놓이는가’라는 포괄적인 문제는 주목하지 못한 채, 그러다 보니 고용정책 외에 청년들에게 별도 지원 정책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누가 청년을 대변하는가

KBS 1TV <시사기획 창> ‘오지 않는 청년의 시간’ 편

서복경 서강대 청년정책 센터장은 약간의 정보, 혹은 약간의 인센티브로 자동적으로 산업 구조에 편입될 것이라는 인식이나 방식은, 청년층이 사회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오늘날 세계에서 낡은 방식이라 일침을 가한다. 보다 구조적이고 글로벌한 이 문제에 대해 거시경제적이며 새로운 패러다임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어렵사리 이런 청년들의 고민에 대해 '청년기본법안'이란 결과가 도출되었다. 2017년 청년미래특별위원회에서 발의한 청년기본법안은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 보장을 내세우며 이를 국가와 지자체의 의무 조항으로 넣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 기본법안조차 1257일째 상정되지 않았다.

말로는 청년 정책이 중요하다지만, 언제나 정치적 사안에 밀려 뒷전이 되어버린 '청년 법안', 결국 당사자인 청년들이 정치적인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의 한계가 지적된다.

87년 민주화 세대는 2004년 총선을 통해 이인영, 오세훈, 원희룡 등이 30대의 나이에 국회에 진출했다. 40대 미만의 국회의원이 16대에는 5.7%, 17대에는 7.7%, 18대에는 2.3%, 19대에는 3%, 20대에는 1%로 외려 거꾸로 줄어들고 있다. 세계 평균 15.5%에 한참 못 미치는, 전 세계에서 끝에서 두 번째의 수치이다.

19대 청년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역임한 장하나 씨는 오늘날 청년 문제는 청년이면서 동시에 가난하기에 생존을 위한 문제가 많다고 역설한다. 그런데 평균 수십 억 자산가인 국회의원이, 그런 국회의원의 자녀들이 이런 절박한 청년들의 문제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청년 없는 국회에서 청년을 위한 정치는 상정조차 되지 못하는 ‘청년기본법안’으로 상징된다. 전문가는 말한다. 기성 정치인 본인이 무얼 하겠다 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내려와 새로운 사람에게 자리를 주는 것이야말로 진정 청년을 위하는 것이라고.

KBS 1TV <시사기획 창> ‘오지 않는 청년의 시간’ 편

이에 가장 바람직한 사례가 등장했다.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도시 부산. 20.8% 전국에서 가장 낮은 청년층, 하지만 그 두 배에 달하는 청년들이 이 늙은 도시를 빠져나간다. 이런 현실에 부산시와 부산 지하철 노조는 이 시대에 귀감이 될 만한 결정을 내렸다. 부산 최대의 공기업 부산 지하철은 통상임금 소송에서 승소하여 얻은 돈을 신규채용을 위한 비용으로 기꺼이 양보했다. 기존 직원들의 더 높은 임금 대신, 노조의 사회적 역할에 주목하여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적정인력 확보라는 결정을 내린 노조. 덕분에 사상 최대 670명의 신규채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다음 세대 고용확보를 위해 직원 1인당으로 치면 1000만 원을 양보하여 세대 간 연대 임금의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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