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2016년 미국 대선 격돌했던 도널드 트럼프-힐러리 클린턴 두 진영의 지지자들을 대화하게 만든 미디어가 있다.

이브 펄먼은 ‘스페이스십 미디어’라는 스타트업을 만들고 이들을 모아 대화하게 했다. 다양한 계층과 인종에 걸쳐 참가자들을 선별한 결과 민주당 지지자가 우세한 캘리포니아에서 25명을, 공화당 표밭이라 불리는 앨러배마에서 25명을 선정했다. 이 두 그룹을 대상으로 꾸준히 대화하게 한 결과, 서로를 맹목적으로 비난했던 시각을 거두고 각 이슈마다 다른 시각차이를 좁혀가게 됐다. 참가자들은 지금도 자발적으로 만나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다.

또한 ‘스페이스십 미디어’는 총기규제, 백인과 흑인 학생들 간의 차이, 이주민 등 이슈를 가지고 다른 시각차를 가진 일반인들을 모아 대화하게 하고 이를 뉴스로 담아내고 있다.

이브 펄먼은 “지금은 진정한 소통이 작동하지 않는 시기”라며 “공감과 존중에 기반한 관계 형성이 없는 상태에서는 사람들이 언론 보도도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저널리스트들이 팩트로만 승부하긴 어려운 상황”이라며 사회 변화에 따라 저널리즘의 방식도 바뀔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SBS가 주관하는 ‘SBS D 포럼 2019-변화의 시작, 이게 정말 내 생각일까?’ 주제 발표 이후 이브 펄먼을 만나 지금 시대에 필요한 미디어의 역할에 대해 물었다. 아래는 이브 펄먼 ‘스페이스십 미디어’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지난달 31일 열린 SDF 포럼에서 강연 중인 이브 펄먼 '스페이스십 미디어' 대표 (사진제공=SBS)

- 스페이스십 미디어는 어떻게 탄생했나

“트럼프-클린턴 대선 직후 미국은 정치적으로 양분됐다. 서로에 대한 불신이 가득해 팩트도 믿지 않았다. ‘스페이스십 미디어’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왔다. 이견을 좁히고 사회 정치 갈등을 봉합하고 생산적인 대화를 하기 위해서다”

- 스페이스십 미디어의 역할은?

“우리는 언론사와 함께 일한다. 보도국 책임자, 기자, 시청자, 독자 사이에 심각한 이슈를 파악한 뒤 그 이슈를 중심으로 대화를 유도할 부분을 찾는다. 그들 사이에 ‘대화 저널리즘’이 이뤄지며 언론인들이 현재 필요한 저널리즘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가장 어려웠던 보도는 총기규제와 관련된 프로젝트였다. 총기규제 문제는 의견대립이 첨예하게 나뉘고 논란이 이는 이슈였다. 20명의 기자가 참여했고 참가자는 총 150명이었다. 총기소유를 찬성하는 입장은 전문가가 많았지만 반대하는 입장에는 전문가가 많이 없어 기자들이 정보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하며 대화를 도왔다”

- 스페이스십 미디어의 프로젝트는 뉴스를 전하는 일반 미디어와 다르다

“우리는 클릭 수를 늘리거나 방문객을 늘리는 보도는 하지 않는다. 스토리텔링부터 시작한다. 대화에서 의미를 찾고 다양한 관점을 보여주며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3년 동안 운영하며 많은 걸 배웠다. 반대 시각을 가진 시민들이 합의점을 찾아가는 모습을 봤고 저널리스트들에게 깨우침을 줬다. 갈등이 심해지는 시기에 미디어도 이에 다라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중요한 이슈와 관련해 대화하고 갈등을 풀어가며 합의에 도달하는 과정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본다”

- 대화의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항상 성찰하고 서로를 궁금해한다. 하지만 지금은 각자의 버블에 갇혀 있다. 대화 하다 보면 정형화된 편견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우리는 서로를 분리하는 곳에서 벗어나고 개방성과 공감을 쌓아 대화할 수 있게 한다.

쟁점에서부터 시작한다. 총기규제, 이민, 사회 이슈를 여러 시각을 가진 이에게 물어본다. 대화에 참여하겠냐 묻고 4가지 질문을 한다. 다른 생각을 가진 상대방에게 무엇이 알고 싶은지, 상대는 너의 생각 중 무얼 궁금해하는지, 상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상대가 어떻게 생각해야 한다고 보는지 등이다.

욕이나 인신공격을 하면 안 된다는 지침을 가지고 대화를 시작한다. 대화가 시작되면 분열된 사회가 필요로 하는 부분이 나오게 되고 이것이 뉴스가 된다. 우리는 대화를 중재하거나 경청하고 이를 보도하는데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우리 보도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 대화 저널리즘의 방법을 자세히 알려달라

“가장 의견이 첨예하게 대비되는 주제를 골라야 한다. 이 부분이 가장 어렵다. 대화는 정치인이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대화를 시작할 때 스테이지를 마련해주고 어떤 의도로 이 자리를 만들었는지 설명한다. 예를 들어 총기규제 이슈에 관해 얘기한다면 관련 정보들을 기자들이 모아 대화 참여자들에게 제공한다. 이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기사화하고 보도한다. 개인에 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양극화된 문제를 규명하고 이들이 대화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중재하는 것이 대화 저널리즘의 한 과정이다”

- 한국에서는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 기사를 보면 아예 배제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럴 때일수록 기자의 자아 성찰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자신이 속해있는 매체와 다른 이데올로기를 가진 매체가 있다면 논조 차이를 살펴야 한다. 다른 매체는 내가 쓴 기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부터 성찰 해야한다.

어떤 정보에 관한 기사를 쓸 때 취재 대상을 얼마나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접촉했는지를 밝히는 것도 중요하다. 다양한 목소리가 담겨있다는 걸 독자들이 알게 되면 양극화되어 있는 차이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 갈등이 첨예한 주제를 다룰 때 기자들이 주의해야 하는 부분은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걸 직접 가서 보고 결정해야 한다. 왜 이 이슈를 선택하는지, 어떤 이에게 물을 것인지, 어디에서 정보를 습득할지 정해야 한다. 기자로서 자신이 정보를 습득하는 취재원이 편파적이진 않은지 살펴야 한다”

- 서로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가장 갈등이 고조되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을 추천한다. 의견대립이 첨예한 이슈에 대해 가장 격렬하게 반발하는 곳이 어딘지 찾아야 한다. 저희가 선택한 주제들을 보면 트럼프와 클린턴 지지자들이 가장 격렬하게 부딪혔던 대선 직후 서로에 대한 시각 차이였다, 트럼프가 이민 문제를 건드렸을 때 이민을 주제로 다뤘다. 총기 대학살 사건이 벌어진 뒤에는 총기 사건을 다뤘다. 뉴스 사이클을 최대한 따라가며 주제를 선정한다”

- 신뢰받는 보도를 위해선 보도의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말했다

”빠르게 제공돼야 하는 뉴스가 있는 반면, 사회에서 의견대립이 심하거나 다루기 어려운 문제일 경우에는 보도 속도를 늦추는 것이 도움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첨예한 이슈에 대해서는 천천히 반응을 살피고 가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 사회가 지금처럼 분열되어 있을 때는 기존의 속보 저널리즘이 아닌 다른 방식의 저널리즘이 필요하다고 본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