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미디어정책은 온통 방송통신융합이 대세다. 지난해에는 방통융합 서비스인 IPTV 도입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더니 이명박 정부 출범을 앞두고 인수위가 국회에 상정한 방송통신을 관장할 기구 성격을 두고 여 야간 신경전이 제법 팽팽하다.

방송과 통신은 콘텐츠를 시청자(이용자)에게 전달하는 수단이 매우 유사해 점차 서비스가 서로 결합될 것이라는 전망에 사회적 이견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요 미디어정책을 입안하는 국회나 정부는 방통융합을 마치 향후 미디어분야에서 차기 정부가 꽃 피워야 할 국부의 원천처럼 여기는 듯하다. 16세기 신비스런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를 찾아 남미 전역을 헤매는 스페인 케사다 원정대 분위기이다.

김영삼 정부의 케이블 방송, 김대중 정부의 지상파DTV방송과 위성방송, 노무현정부의 DMB 역시 당시 정권들의 국책과제이자 미디어 분야의 엘도라도였다. 그러나 지금 엘도라도였던 케이블방송은 가입자 유지하기에 혈안이 되어 시청자의 발목을 잡거나 외국 자본의 주요 인수대상이 되어 있고, 지상파 DTV는 아날로그 방송종료가 불과 5년여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보급률 20%내외로 사회적 걱정거리가 될 전망이다. 또한 위성방송은 200만 가입자에서 더 늘지 않은 채 외자유치로 버티고 있으며 DMB는 고사 직전이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은 듯하다.

방통융합은 기본적으로 융합이라는 용어가 주는 허상이 있다. 융합으로 의역된 원래의 용어는 컨버전스(convergence, 수렴)로 일정기간에 걸쳐 유사해져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반면 융합(fusion, merger)은 다른 종류의 것이 녹아서 서로 구별이 없게 하나로 합해지는 일로 핵융합, 세포융합과 같이 일시에 합쳐지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

국내 방송 통신 분야간 결합되어가는 과정은 확실히 ‘컨버전스’가 아닌 ‘융합’이다. 미디어정책기관들은 기업의 시급한 사업기반 마련요구로 양 분야 간 조속히 합쳐져 산업발전과 관련 기기수출을 이루어야 된다는 조급증으로 인해 과정의 선후관계를 살펴보지 않기 때문이다.

▲ 지난 1일 국회방통특위는 의결정족수를 가까스로 채워 한나라당이 제출한 방통위법안을 상정했다 ⓒ안현우

정부, 기업, 언론이 이야기 하는 것처럼 국민생활의 편의와 다양한 콘텐츠의 이용이라는 슬로건이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 방송의 디지털 전환은 필요충분조건이며 방통융합의 전제이다. 국내에서 제작되는 콘텐츠의 대부분은 주로 영화와 지상파방송이다. 국내 영화의 연간 콘텐츠 생산량은 약 7,000분 내외로 약 100편 상영되며, 전체 지상파방송의 경우 약 150여 만분의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다. 새로운 서비스란 ‘디지털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 것 인가’의 문제인데 아날로그 방송과 디지털 통신은 결합할 수 없음에도 미디어정책은 방송의 디지털이후의 과제인 방통융합이라는 이름의 공염불을 외우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시민의 편에 서서 정부와 기업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언론은 분명히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언론은 지난 1년간 미디어 정책에 관해 생산한 기사의 질과 수를 스스로 평가해 봐야한다. 시민의 편의와 기술발전에 따른 새로운 서비스 제공을 위해 방송과 통신간의 결합은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미디어정책은 기업의 시급한 사업기반 마련과 산업발전이라는 가치에 우선해 사회적으로 논의되고 있고 대부분의 언론은 이에 편승하고 있다.

현재 국회 방송통신특별위원회에서는 국내 아날로그방송종료일 등을 담은 ‘디지털전환특별법’이 논의되고 있다. 아날로그방송을 종료하게 되면 기존 아날로그TV를 가진 시청자들은 종료일 이후에 가장 기본적인 미디어시청권조차 제한받게 된다.

지금 언론은 방통융합의 전제가 되는 ▲지상파방송의 디지털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대책 ▲70%정도의 국민들이 아날로그방송종료를 모르는 상황 ▲미디어선택을 강요하다고 있는 실태 등은 뒤로 한 채 기업과 정부가 이끄는 엘도라도를 향해 가자고 정권의 정책 홍보 역할을 반복하고 있다.

황금의 도시는 없다. 스페인 원정대를 이끌었던 케사다가 엘도라도를 쫓기 위해 인디오들을 동원하기보다 인디오들에게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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