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예명 설리로 활동한 고 최진리 씨의 죽음 이후 악플에 대한 사회적 성토가 고조되고 있다. 국회에선 인터넷 준실명제를 입법하자는 주장이 제기됐고 그 외에도 악플에 대한 강력한 처벌 필요성이 논의된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이 얼마나 유효할지는 의문이다. 고인의 죽음이 가벼워서가 아니라 한국은 악플을 처벌하는 수단이 부족한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타 국가들에 비해 충분하다고 봐야 한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폐지되거나 사문화되는 추세인 명예훼손죄와 모욕죄가 활성화돼있는 나라다. 한국의 명예훼손죄는 사실 적시까지 처벌하고 있어 표현의 자유를 훼손한다는 비판이 제기된 지 오래이며 UN 측은 한국 정부에 명예훼손죄를 비범죄화할 것을 수차례 권유했다. 유명인들이 악플에 대응하려면 형사 고소를 하면 된다. 사이버 명예훼손죄는 사실 적시의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 허위 사실의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하고 있어 처벌 수위가 결코 낮지 않다.

오히려 요 몇년 간 명예훼손 고소가 남발되고 일상화되며 사회 문제가 된 실정이다. 무더기 기획 고소로 합의금을 뜯는 사례, 다수의 구독자를 보유한 SNS 계정 운영자가 실컷 소수자 혐오 표현을 뱉다가 비난을 받으니 고소하겠다고 엄포하는 사례도 있다. 요즘 인터넷에선 "치킨값"(악플을 고소해서 치킨 사 먹을 돈을 뜯자)이란 관용어는 물론 처벌에 걸리지 않도록 표현 수위를 조절해 댓글을 쓰는 '각도기' 문화가 생겼는데 이 모두가 악플 처벌의 과소함이 아니라 과다함의 방증이다.

설리 사망 이후 인터넷 실명제 도입 여론 확산 (CG) [연합뉴스TV 제공]

표현의 자유는 사회적 행위나 대상에 대한 비판의 자유다. 누군가 사회적 비행을 저지르거나 경멸당해 마땅한 반사회적 발언을 뿌렸다면 그것을 새되게 비난하는 것이 여론의 정당한 역할이다. 물론 최진리 씨 같은 유명인의 인격에 대한 모욕은 이런 범주와는 다르지만, 명예훼손죄는 사람들의 발언에 대한 규제를 포괄적으로 강화하는 효과를 낸다. 악플 처벌을 강화한다면 마땅한 비판은 물론 공익적 폭로가 한층 제약될 수 있다. 또한 인터넷 실명제, 준실명제는 인터넷 이용자들의 신원을 노출함으로써 그를 통한 신상털이 등의 또 다른 인터넷 폭력을 부를 개연성도 다분하다.

왜 악플이 사라지지 않는가? 그건 막말과 살인이 박멸되지 않는 이치와 같다. 그것이 잘못이라는 가치판단과 처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회가 존속하는 한 부산될 수밖에 없는 인간성의 찌꺼기다. 미국은 엄벌주의를 채택한 대표적 나라지만 한국과 스케일이 다른 강력범죄가 끊이지 않는다. 한국은 이미 UN으로부터 폐지 권고를 받는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까지 운영하고 있으면서 특단의 처벌을 추가하면 악플이 제어될 거라 믿는 건 막연한 셈법 아닐까? 악플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라는 비현실적 이상을 가정할수록 처벌의 강도를 자꾸만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기 쉽다. 그 효과는 불분명하고 그럴수록 부작용은 커진다. 요는 단순한 처벌이 아니라 어떤 방향의 대응이고, 악플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문화와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한국은 인터넷 문화가 그 어느 나라보다 고도화됐고 악플을 처벌하는 법안도 여느 나라에 비춰 부족하지 않다. 그런데도 어떤 나라들과 달리 소수자 혐오 게시물은 별도의 명목으로 처벌하지 않는다. 현행 법체계 상 공백이 있다면 인터넷 준실명제나 악플 형사처벌 강화가 아니라 혐오표현 처벌법이다. 최진리 씨의 죽음 이후, 방송인 홍석천 씨는 한 언론 매체를 통해 악플의 심각성을 증언하는 인터뷰를 했는데, 그가 겪은 고통 또한 성소수자라는 그의 정체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이렇듯 특별히 편견에 노출돼있어 악플의 타깃이 되기 쉽고 그에 대항하는 발화를 해도 사회적으로 공감과 동조를 얻기 힘든 사람들에게 보호막을 펼쳐주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일각에서는 네티즌뿐 아니라 선정적 언론 보도와 그를 증폭하는 포털 사이트가 악플 문화를 낳는 진범이라 주장한다. 옳은 말이지만 그것도 문제의 핵심은 아닌 것 같다. 현재 매체 지형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이 포털 사이트가 패권을 쥐고 있지 않다. 포털 사이트 바깥에서 각종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가 성장했고, 네티즌은 저마다 1인 매체와 공용 게시판의 글쓰기 지면을 확보했다. 사람들은 포털 사이트를 거치지 않고 SNS와 커뮤니티를 통해 기사를 구독·공유하고, 유명인의 SNS에 댓글을 남기며 그에게 직접 말을 건다. 최진리 씨를 향한 악플 또한 포털 사이트 댓글 난에만 달린 것이 아니다. 그의 동향 하나하나가 각종 커뮤니티에 공유되며 악플을 산개시켰고 그가 운영하던 인스타그램 계정에 악플은 다이렉트로 도배됐다.

JTBC2 <악플의 밤>에 MC로 활동하던 모습. (출처=JTBC)

미디어가 난립하고 유명인과 다중의 거리가 가까워진 상황에서, 네티즌 개개인은 저마다 ‘찌라시’ 매체의 기자가 돼 악플을 소환하고 언어폭력 또한 거의 면 대 면으로 행사된다. 한편으론 1인 미디어가 유명세를 민주화하며 유튜버와 유명 SNS 유저 등 ‘작은 셀렙’들이 양산되었고, 커뮤니티 문화가 발달해 네티즌 개개인이 서로 다툼을 빚는 상황도 초 단위로 발생한다. 악플의 대상은 더는 연예인과 운동선수 같은 전통적 유명인에 한정되지 않는다. 현재 인터넷은 어떤 의미에선 ‘내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고소를 들먹이는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상태에 돌입하고 있다.

미디어의 분화와 함께 악플이 발생하는 환경과 양상이 변화했다. 이를 통제하기 위해 필요한 건 포털은 물론 커뮤니티, SNS 등에서의 자치적 규제와 대응이다. 명예훼손 고소가 남발되는 지난 시간 동안 도리어 시민사회의 자치적 해결책에 관한 논의는 뒤로 밀려난 건 아닐까. 바른 미래당 박선숙 의원은 차별적·혐오적 표현의 게시물에 대한 관리 책임을 인터넷 플랫폼 사업자에게 지우는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혐오와 차별이 무엇을 뜻하는지, 권력관계에 입각한 본연의 정의대로 사회적 소수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정확한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법안은 사회적 다수자의 혐오 표현을 향한 소수자의 반발이 똑같은 혐오 표현으로 취급당해 그들의 저항을 위한 발언마저 억압되는 부작용을 낼 수 있다. 또한 사전에 게시물을 삭제하는 방식이 유저들의 발언을 자의적으로, 규제 목적을 넘어서며 제약하지 않도록 안배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지금껏 길게 말을 풀었지만, 이 모든 논의가 다소 앞서가는 것이란 생각도 든다. 고인이 사망한 것에는 어떤 사유가 있겠고 생전 고인이 악플에 숱하게 노출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둘 사이 얼마나 상관관계가 있는지, 죽음을 선택하게 된 정확한 사유는 확인되지 않았다. 추측할 수 있는 문제를 즉각 확정을 짓고 제가끔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사실은 추측조차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사안임에도. 가령 과거 ‘최진실 법’이란 이름으로 인터넷 규제 법안이 추진되다 유가족이 그 명명을 거두어줄 것을 요청한 일이 있는데 또다시 ‘설리 법’이란 작명이 등장한 건 사려 깊은 일이 아닐 것 같다.

죽음은 한 존재가 마감되는 절대적 사건이다. 타인의 죽음을 내 감정과 입장, 이념에 따라 섣불리 의미화하거나 수단화하지 말고 죽음을 그 자체로 곱씹으며 온전히 애도하는 것. 이 사회는 타인의 죽음 앞에서 아주 짧은 묵념이라도 수행하는 것을 연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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