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의 미디어법 총파업, 헌재 앞 1만배, 3보 일배, 단식농성, 3번의 체포 연행

4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전국언론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만난 최상재 전 위원장(SBS PD)는 마침 이강택 신임 위원장에게 업무를 인수인계하고 있는 중이었다.

고난의 연속이었던 3년 반을 지나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이라는 짐을 내려놓은 최상재 SBS PD는 "시원하지도, 섭섭하지도 않다. 마음이 무겁다"고 말문을 열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으나, 생각보다 희생이 훨씬 컸습니다. 아직 복직못한 해직자들도 많은데, 혼자서만 편안한 삶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마음이 조금은 무거워요."

▲ 지난달 24일 언론노조 정기대의원대회에서 공로패를 받은 최상재 전 언론노조 위원장(오른쪽)의 모습. 왼쪽은 이강택 신임 언론노조 위원장. ⓒ언론노조
그래도 달라진 게 있다. 위원장직을 내려놓고 나니, '잠'이 잘 온다는 것이다. 최상재 PD가 '언론노조 위원장'이 된 시기는 2007년 9월. 재임기간 내내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에 맞선 투쟁을 주도했던 그에게 긴장과 불안, 분노는 뗄 수 없는 존재였을 것이다.

2009년 7월 체포돼 유치장에 감금됐던 당시 최상재 PD는 면회온 이들에게 오히려 '밖에서는 늘 마음이 불안하고 화가 나 있는 상태라서 잠을 잘 못자고 그랬는데, 여기서는 몇 시간씩 잘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한 적도 있다.

"위원장직을 내려놓으니 신체에 변화가 생기더군요. 이제는 잠이 잘 와요. 그런데 잠 안 오는 게 (이강택) 신임 위원장한테 넘어간 것 같더군요. 불면증까지 인수인계하고 있어요. 하하."

언론노조 위원장, 사실은 '피하고 싶었던 자리'였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보다 혼자 조용히 있는 걸 좋아해요. (혼자 있을 때) 몸도 더 건강해지고, 생각도 자유로워지는 체질인데 4년 가까이 몸에 잘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살아온 거지요.

(위원장직을 제안받았을 당시) 내가 언론노조 위원장을 맡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여러가지 말했으나, 후배들이 '비겁하지 않느냐'고 묻더군요. 더 이상 피할 수 없어서 이 자리에 서게 됐어요. 늘 '빨리 끝났으면'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있었지만 막상 그 순간이 되니까 오히려 발걸음이 좀 무거워지네요."

▲ 2009년 7월 29일, 최상재 당시 언론노조 위원장이 서울 영등포 경찰서 면회실에서 민주당 추천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위원이었던 강상현 연세대 교수,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 이창현 국민대 교수 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미디어스
미디어법 날치기, 조중동 방송 탄생, KBS·MBC 흔들기 등 전체 언론판이 송두리째 뒤흔들렸던 지난 3년. 최상재 PD는 정부의 강도높은 드라이브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군사정권 시절에 비해 강고한 탄압이라고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언론들이 너무 쉽게 스스로 무릎을 꿇었다"는 냉정한 평가를 내놓았다.

"지금 신문, 방송 할 것 없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승호 PD 자리 하나 지켜내지 못하고. 군사정권 시절에 비하면 사실 신체적인 위협이 가해지는 것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생계가 위협을 받는 상황도 아닌데…. 너무 쉽게 무릎을 꿇은 언론의 모습은 정말 심각한 거죠. 군사정권 시절에 탄압받아서 (언론이) 제 목소리 내지 못한 것보다 훨씬 심각한 3년이었습니다.

언론인들이 일종의 '착각' 속에서 살고 있었던 셈이죠. 절차적 민주주의가 상당히 진보했고, 언론자유가 거꾸로 후퇴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 지난 민주화 과정에서 언론인들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도록 자기 체질을 마련했어야 했는데 게을렀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 안에서 안주하던 하나의 개구리같은 존재가 아니었는가 반성합니다.

사실 언론노조 위원장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을 수 있었어요. 언론 민주화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지요. 몸도 힘들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힘들게 했지만 그런 면에서는 후회가 없습니다."

재임 기간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KBS 구 노조와 내홍을 겪던 2008년 여름.

"파업이야 각오를 했던 것이니까 힘들다는 생각은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큰 싸움을 앞두고 내부 정비를 해야할 시기에 KBS 구 노조와의 내홍으로 오랜 시간 발이 묶였었죠. 결과적으로 KBS 노조 집행부를 징계했고, KBS 노조는 언론노조를 탈퇴했고…. 그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지난 3년. 안해본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종편'으로 상징되는, 언론계를 시장으로 내몰려는 정부 정책에 대해 끝까지 막지 못한 부분이 제일 아쉽다"고 했다.

"우리 힘이 부족하기도 했고, 야당도 워낙 약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결국 조중동 종편이 탄생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하지만 (종편 탄생의 시기를) 정권 후반기로 늦추게 한 것과 30대 재벌기업이 (주주로) 결합하지 않게 된 것은 소기의 성과입니다.

그리고 투쟁 과정에서 많은 국민들이 '언론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게 된 것도 성과로 꼽을 수 있습니다. 과거 '언론개혁'이 언론계 내부의 이슈에 그쳤던 반면, 미디어법 투쟁 과정을 통해 전 국민이 언론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당장의 승리는 아니지만 나중의 승리를 위한 거름을 뿌린 게 아닌가 합니다."

"길고 힘들게 싸워왔지만,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라며 현업 언론인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지금 언론이 제대로 가고 있는가' 끊임없이 돌아봐야 한다. 이 작업을 게을리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운 시간들을 반복해서 경험하게 될 것"이라며 "힘을 모아서 반드시 언론의 공정성, 독립성을 회복해 주시기 바란다"는 것이다.

▲ 2009년 10월 29일, 헌법재판소의 미디어법 권한쟁의심판 선고를 앞두고 헌재 앞에서 만배를 진행하고 있는 최상재 당시 언론노조 위원장의 모습. ⓒ곽상아
큰짐을 내려놓은 최상재 PD는 앞으로 2~3달 정도 휴가를 떠날 생각이다. 심신을 추스리기 위해 개인적으로 휴식 시간을 갖겠다는 것이다. 미디어법 총파업과 관련한 2심 재판도 준비하고, 고3이 된 큰딸 뒷바라지도 하겠다고 한다.

휴가에서 돌아오면, '오래오래 기억될 수 있는 다큐 한편'을 만드는 게 개인적 바람이다.

"교양, 오락 프로그램은 많이 만들어 봤는데, 사람들에게 기억될 만한 다큐는 만들어보지 못어요.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다큐를 만들고 싶습니다. 지난 6년 반 정도의 노조 활동도 결국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잇는 일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런데 6년 반 정도를 현업에서 떠나 있었기 때문에 걱정도 되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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