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상승률이 가히 파상적이다. 오를 땐 급격하고 그 선을 잠시 유지하는 듯 하다가 또 급격히 오르는 양상이 몇 개월째 반복되고 있다.

오늘(4일)자 조선일보에 보도에 따르면, '이마트 생활가격지수'(신세계 이마트가 소비자들이 평상시 구입하는 주요 78개 상품의 가격을 매달 조사해 집계하는 지수)는 지난해 2월 대비 9.4%나 상승했다고 한다. 배추가 무려 94.5% 오른 것을 비롯해 콩 56.2%, 오징어 50.2%, 토마토 20.4%, 달걀 16.7% 등 생필품 가격 전반이 '파동'에 가까운 오름세이다.

문제는 이 오름세가 단기적 흐름이 아니라는 점에 더 큰 심각성이 있다. 조선일보는 "곧 계란 파동…배추․콩․고등어 줄줄이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가 상승의 이유는 다양하고 또 총체적이다. 조류인플루엔자로 산란종계들은 모두 살처분 됐고, 계란은 수입이 불가한 품목이며, 찹쌀과 콩은 집중 호우때문에, 배추는 한파로 인해 그리고 오징어 조기 고등어 등의 수산물은 바닷물의 기온 저하로 추가 작황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총체적 난국에 정부가 어떤 대응책을 갖고 있는지는 분명해 보이지 않는다. 워낙에 총체적인 문제라 어디서부터 손을 뻗쳐야 할지조차 헤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야박하게 말하자면 '시간 지나면, 잘 될 거다'는 낙관적 주술 외에는 뾰족한 수가 전무해 보이는 실정이다.

실제로 지난 2일 열린 물가 안정을 위한 긴급 관계부처 장관회의에 참석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2분기 이후에는 소비자물가가 점차 안정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뜬금없는 낙관론을 펼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상계획'은 수립하겠다는 모순적 태도를 보였다. '비상계획'의 구체성과 실효성 여부는 정확히 가늠되지 않고 있다.

지난 몇 개월 간 방송 뉴스의 연성화 경향이 급격하다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미디어스>도 이 문제를 여러 차례 다뤘지만, 그 때마다 방송사 보도국 데스크들은 "시청자들이 뉴스에 요구하는 것이 달라짐에 따라, '생활밀착형' 아이템이 부각되는 상황일 뿐"이라는 입장으로 맞서왔다.

이 기준에서 보자면, 물가문제야말로 '생활밀착형' 아이템으로 소화하기 매우 적절한 아이템이다. 다른 아이템에 비해 일상적 파급력이 매우 강하고 시청자들의 생활과 아이템의 밀착성도 매우 높다. 그간의 설명이 '변명'이 아니라고 한다면, 방송 뉴스들이 물가 문제와 관련해선 확실한 실력 발휘를 해야 마땅하다. 과연, 그렇게 되고 있는 것일까?

▲ 4일자, KBS와 MBC 메인뉴스는 물가 상승 관련 보도를 하며, 소비자가 아껴써야 한다는 프레임을 보였다.
어제(4일) MBC와 SBS는 물가 관련 보도를 헤드라인으로 전하고, KBS는 남하한 북한 주민들 가운데 일부가 귀순 의사를 밝혔다는 사실을 헤드라인으로 하고 바로 이어 물가 관련 소식을 전했다. 방송사에 따라 뉴스 후반부에 관련 내용을 추가로 배치한 곳도 있었다. 방송 3사 모두 물가 문제를 편성의 우선순위를 높게 책정해 배치했음은 분명했다.

하지만 보도의 내용은 이루 말할 데 없이 빈약했다. 유가를 중심으로 물가가 올랐다는 사실을 전했지만, 왜 물가가 올랐는가에 대한 분석은 심층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물가 인상 요인에 대한 분석 없이 현상만 나열하다보니 물가 인상에 대한 정부의 책임 소재를 가릴 필요성 자체가 사라진 모습이었다. 어제 물가와 관련한 방송 뉴스들의 전체적인 메시지는 '아껴 쓰는 것 외에 별 수 있겠나'로 요약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끼고 또 아껴 써라'는 방송 뉴스의 메시지는 직접적 설명을 통해 이뤄졌다. MBC 뉴스데스크는 16번째 리포트였던 '고물가 자린고비 소비 는다' 보도를 통해 "무섭게 치솟는 물가, 이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덜 쓰고 아낄 수밖에 없다."며 대놓고 소비자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현재의 상황이 무엇 때문인데, 소비자가 아껴 쓰는 것 외엔 해답이 없다는 것인지 갑갑했다.

KBS 역시 4번째 리포트 '절약하면 포상금' 보도에서 "(정부가)연료를 절약하는 개별 가구에 대해 최고 5백만 원까지 포상금을 준다는 방침"이라며 소비자의 분발을 독려했다. 서민들은 정부의 형평성 없는 전기요금 정책으로 '폭탄'을 맞고 있는 상황인데, 이를 전혀 개선하지 않는 정부가 생색내기식 포상 방안이나 내놓고 있는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은 눈곱만치도 찾아 볼 수 없는 보도였다.

조중동을 비롯한 인쇄 매체들이 물가 관련 뉴스를 주도하며, 정부의 책임론으로 문제의식을 확장해가는 동안 방송 뉴스들은 이미 구문이 된 유가 문제로 변죽을 올리는 것 이상의 리포트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방송 뉴스들은 물가 문제에 관해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 수준의 쌍팔년도식 훈계를 전달하는 것 이상의 프레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중요한 사회적 현상을 '응당, 그런 것이니. 개인들이 알아서 잘하라'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방송 뉴스의 보도 행태는 정말 형편없는 무능력함이다.

조중동 등의 보수 매체들이 종편 사업자에 선정된 이후 '강약중강약'의 흐름으로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방송 뉴스들은 잇따른 이슈들에서 별다른 '의제 장악력'을 보이지 못한 채 퇴행해가는 풍경이 역력하다. 비교적 정치적 부담이 덜한 아이템인 물가 문제에 대해서도 뚜렷한 보도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은 방송 뉴스들의 현재적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는 문제적 상황임이 분명하다.

직장인들 사이에선 이러다 제육볶음이나 닭갈비를 회처럼 '시가'로 파는 날이 곧 오지 않겠냐는 농담이 진담처럼 돌고 있다. 트위터에선 진즉에 삼겹살을 시가로 팔고 있는 식당을 보았다는 목격담이 RT되고 있다. '생활 밀착형' 아이템을 강조하는 뻔뻔함에 최소한의 염치와 부지런함이라도 있다면 이런 아이템들을 챙길 수 있을 것이다. 방송 뉴스의 수준 저하를 어디까지 지켜봐야 하는 것인지 모니터하기도 점점 난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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