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다들 검찰 개혁을 말하는 시절이지만 솔직히 말해 공허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다들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만 상황을 해석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세태가 만들어내는 정치적 진공 상태가 우리 사회에 악영향을 끼칠까 걱정이다.

정치권의 논의는 공수처 찬반으로 모아지는 것 같다. 더불어민주당은 패스트트랙 법안 중 공수처 설치법을 우선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크게 두 가지 이유다. 바른미래당 내 옛 바른정당계를 포함한 보수정치권이 공수처 설치에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바른미래당 소속인 권은희 의원 안을 중심으로 한 논의가 가능하다는 점이 첫째다. 만일 권은희 의원 안에 근접한 내용으로 합의가 이뤄지게 되면 본회의 표결에서 공수처 설치 찬성파가 다수를 유지할 가능성이 커진다.

둘째는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 이후 ‘광장’의 목소리가 공수처 설치를 요구하는 것으로 모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자 일부는 여의도와 서초동에서 장외집회를 계속 진행하고 있는데, 검찰개혁을 위해 공수처 설치가 필요하다는 구호가 맨 앞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자유한국당은 온갖 논리를 들어 공수처 설치를 반대하고 있다. 여야 합의로 추천한다고는 하지만 공수처장은 결국 여당이 원하는 사람을 임명하게 돼 있고, 이게 공수처가 정파적인 수사를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나아가 문재인 정권이 공수처 설치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에는 정권 후반부의 레임덕을 방지하고 대통령 퇴임 이후의 안전판을 마련하기 위한 의도까지 실려 있다고 주장한다. 또 현행 법률은 검사를 검찰청에 소속된 것으로 규정하고 있어 공수처 구성원은 검사로 볼 수 없고, 그럼에도 영장청구권 등을 행사하는 것은 검사가 영장을 청구하도록 돼 있는 헌법 조항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논리도 앞세우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이런 주장은 얼마만큼 합리적일까? 공수처가 정부 여당에 가까운 인사들로 구성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윤석열 검찰총장 체제의 검찰에서 보듯 그 사실만으로 정부 여당에 유리한 수사가 진행될 거라고 단정하는 것은 섣부른 결론이다. ‘위헌’ 문제는 공수처법과 충돌하는 현행 법률 일부를 개정하면 되는 사안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달 말 본회의 상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승민 의원으로 비롯한 바른미래당 탈당파들의 움직임 등이 변수이긴 하지만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야당들이 공수처 설치에 원칙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협상 과정이 큰 무리없이 진행된다면 타결 가능성을 예상해볼 수 있다. 최근 검찰 개혁 논의에서 거의 유일하게 생산적 마무리를 기대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16일 공수처 설치법 등 논의를 위한 여야 3당 2+2+2 회동 (연합뉴스)

공수처 설치를 제외한 나머지 대목에선 우리 사회가 드러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예컨대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언론에 대한 원망으로 대체됐다는 점이 그렇다.

‘유튜브 언론인’은 KBS에 이어 JTBC를 겨냥하고 있는데, 이제는 무엇이 문제라는 것인지조차 정확히 알기 어려운 수준이 됐다. 오히려 ‘유튜브 언론인’의 주장은 저널리즘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정파적 기대의 좌절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JTBC 보도가 특별히 문제가 있었다기보다는 다르지 않았다”는 말도 이 맥락으로 해석된다. “달라야 한다”는 주장의 취지도 결국 조국 전 장관 측에 유리한 사실을 보도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KBS가 자랑하는 언론 비평 프로그램은 “지난주에 욕을 많이 먹었다”며 2주째 자사 보도를 비판하고 있다. 그럼에도 계속 욕을 먹으면 같은 방송을 한 번 더 할 것인지 궁금하다. 욕을 안 먹을 때까지 ‘언론-소비자’의 취향을 맞춰주는 게 언론 비평인가? 이 논란을 촉발시킨 ‘유튜브 언론인’의 앞서 주장까지 묶어보면 지금 저널리즘이 무엇에 굴복하고 있는지가 눈에 들어온다.

검찰개혁을 둘러싼 논란을 언론을 이용해 자기 좋을 대로 활용하고 있는 건 개혁의 대상이자 주체인 검찰도 마찬가지다. 검찰총장이 직접 한겨레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와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에 참여했던 외부위원 및 외부단원들은 21일 성명을 내고 검찰 수사를 경찰에 이첩할 것을 촉구했다. 검찰이 이 사건을 진상조사단의 과거사 조사를 흠집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최근 검찰은 ‘버닝썬’ 사건 수사 당시 청와대와 경찰이 비난을 피하기 위해 김학의 사건 재조사를 여론화했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 중이라고 한다. 같은 기준으로 본다면 검찰의 한겨레 보도 관련 수사는 검찰개혁 여론을 피하기 위해 검찰과 경찰의 대립구도 재생산에 편승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김학의 사건 재조사’를 검찰의 자정능력에 대한 의문 제기가 아닌, 검찰이 억울한 이야기로 만드려는 것 아니냐는 거다.

이런 식의 추정을 빼더라도 검찰총장의 특정 보도에 대한 언론사 고소는 비상식적이고 과도하다는 점에서 취하해야 옳다. 물론 한겨레 보도를 100점 짜리라고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건 앞서 ‘유튜브 언론인’이 문제 삼고 있는 KBS 보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저널리즘의 영역 안에서 소화돼야 할 문제이지 이런 저런 정파적 이해관계나 권력기관끼리의 대립을 재생산하는 것에 이용할 것은 아니다. 권언유착뿐만이 아니라 이런 사례 역시 언론을 망가뜨리는 요소 중 하나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의혹으로 시작된 검찰개혁 논란은 이 사실을 다시 깨닫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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