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경기가 펼쳐졌을 때 약자가 강자를 이기면 꽤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 모읍니다. 유럽 축구에서 3부 리그 팀이 1부 리그 팀을 제압했을 때, 또는 하위권에 처져있는 팀이 1-2위권에 올라있는 팀을 잡으면 '이변'이라 하면서 크게 열광하곤 합니다. 특히 하반기에 접어들어 순위 싸움이 치열할 때 상위권 팀을 잡기라도 한다면 '고춧가루 부대'로 명성을 얻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여세를 몰아 하반기에 엄청난 힘을 발휘하며 중요한 순간마다 판도 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줄 때도 있습니다.
K-리그에서는 대전 시티즌과 대구 FC가 그런 모습을 자주 보여 왔습니다. 이렇다 할 스타 플레이어도 없고, 순위는 매번 하위권을 맴돌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이들은 상위권 팀들에 고춧가루를 뿌리며 '이변의 주인공'으로 자주 주목받아 왔습니다. 공교롭게 두 팀은 시민구단으로서 K-리그에서 어느 정도 상징적인 팀들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요. 늘 주인공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팀들이 내실 있는 시즌 운영으로 올 시즌에 과연 주인공급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두 팀은 어느 해보다 더 비장한 각오로 시즌을 맞이할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2년 뒤, K-리그 승강제가 도입될 경우 구단 존폐 문제까지도 생각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시기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대구 FC의 경우, 성적 부진으로 인한 관심 저하로 시즌 운영 책정 대구시 예산 전액을 한때 삭감당하는 수모를 맛봤습니다. 다행히 구단, 축구계의 노력으로 지켜내기는 했지만 만약 잇단 성적 부진으로 별다른 이익을 얻어내지 못한다면 팀 운영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킬 만한 '큰 사건'이었습니다. 당연히 선수들은 좌절감보다는 '더 잘 해야겠다'는 의식을 가져야 하는 입장이 됐고, 그 때문에 어느 때보다도 의미 있는 한 시즌을 보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두 팀의 전력이 처진다고 해서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1990년대 중반 3승 5무 22패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반짝하고 사라졌던 전북 버팔로처럼 '승점 자판기'의 면모를 보이며 호락호락하게 무너진 경우가 없었던 것은 이들의 '숨은 자랑거리'이기도 합니다. 갈 길 바쁜 상위권 팀들을 잡을 때마다 이들은 숨겨진 저력을 제대로 드러냈고, 후반기에 오히려 힘을 발휘하면서 다양한 성과들을 내기도 했습니다. 이는 두 팀 모두 충분히 저력이 있고, 상위권으로 오를 만한 잠재력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저력을 얼마나 잘 끌어내고 유지해내느냐가 관건인데 일단 어느 정도 준비는 탄탄하게 잘 한 것으로 보입니다.
2년 전, 광주 상무가 시즌 중반까지 단독 1위를 질주했을 때 K-리그 전체가 큰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상무 구단의 특수한 문제 때문에 후반기에 완전히 처지면서 추락하는 쓴맛을 봤지만 전력이 처진다면서 크게 주목받지 못한 팀들도 똘똘 뭉치면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며 주목받았습니다. 스타는 없어도 팀으로 하는 축구 경기에서 패기와 팀워크로 선전을 다짐하는 두 시민 구단, 대전 시티즌과 대구 FC가 올 시즌에 힘을 발휘하면서 의미 있는 비상을 할 수 있을지, 우승후보 싸움만큼이나 흥미롭게 지켜볼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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