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지던트>는 '다크 <대물>'이었다. <대물>의 주인공이 올곧은 신념으로 착하고 바르게 정치적으로 성장해갔다면, <프레지던트>의 주인공은 올곧은 신념으로 음울하고 정치공학적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대물>이나 <프레지던트>나 주인공들이 모두 국가의 미래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그러나 <대물>의 주인공에게는 딱히 권력의지가 없었던 데 반해, <프레지던트>의 주인공은 권력의지의 화신이었고 정치를 권력의지의 격돌이라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대물>의 주인공은 상대 후보의 비리를 폭로하지 않았고, <프레지던트>의 주인공은 할 수 있는 폭로는 다 했다. 이간질도 했다. <프레지던트>는 <대물>의 주인공처럼 광명정대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주인공의 정적으로 배치했다. 여당내 경선 상대와 야당 대통령 후보들이 모두 '착했다'. <프레지던트>는 그들을 현실정치에 어울리지 않는 순진한 사람들로 묘사했다.

이런 점에서 <프레지던트>는 <대물>보다 어두웠다. <대물>이 이상, 가치, 신념 같은 정치의 밝은 면에 초점을 맞췄다면 <프레지던트>는 권력을 잡게 되기까지의 온갖 거래, 권모술수 같은 어두운 면에 초점을 맞췄다. 현실정치에서 이 두 가지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프레지던트>는 <대물>의 하이드적 측면, 즉 '다크 <대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 공감의 힘이 약했다 -

<프레지던트>에 그려진 정치공학, 권모술수, 뒷거래, 권력의지의 세계는 이미 국민이 넌덜머리를 내던 정치의 이미지였다. 딱히 새로울 게 없었다.

게다가 그다지 치밀하거나 리얼하지도 못했다. 우리 현실에서 가장 결정적인 정치공학은 지역구도에서 나온다. 만약 <프레지던트>에 PK, TK, 전북, 전남, 강원, 충청 등을 구분해서 땅따먹기하는 내용이 나왔다면 뜨거운 논란이 일어났을 것이다. 거기에 서울 강남북의 차이까지 직접적으로 건드리면 더욱 폭발적이었을 것이다.

정치의 부패를 다룬 작품들은 많았어도 이걸 다룬 작품은 없었다. 이것은 리얼하기도 하고 새롭기도 하다. 하지만 지역구도를 심화시킨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며 엄청난 역풍이 생겨났을 것이다. 여전히 진정한 현실을 드라마에 반영하기 힘든 상황이며, 혹은 차마 드라마에 반영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현실이 추악하다는 얘기다.

이런 추악한 상황에서 <프레지던트>에 적당히 그려진 부패상이나 권모술수는 그다지 이목을 끌 수 없었다. 여당 중진의 마음을 잡는 정략이 그의 청년시절 순수했던 꿈을 상기시키는 것이라는, 그야말로 순진무구한 내용으로 나왔던 것처럼 공감하기 힘든 대목도 많았다.


반면에 <대물>은 판타지이며 동화이긴 했지만 그래도 어쨌든 우리 서민들이 국가와 정치에 대해 갖고 있던 울분을 대변해주는 면은 있었다. 최소한의 공감이 있었던 것이다. 공감의 유무에서 시청률의 희비가 갈렸다.

- <프레지던트>는 어른의 정치드라마 -

<프레지던트>의 또 다른 문제는 주인공이 죽어라고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데, 동지들은 모든 희생을 무릅쓰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드라마 전편에 걸쳐서 도무지 그 이유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이러면 대립구도에 힘이 빠진다.

<프레지던트>는 마지막 회에 이르러서야 대선 후보 토론을 통해 주인공의 정책비전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그걸 초반에 치밀하게 그렸어야 했다. 그게 대립의 축을 형성했다면 상당한 논란이 일어났을 것이다. 모든 매체가 그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을 것이고, 현실정치의 대립과 연계되면서 정당들도 뛰어들었을 것이다. 그러면 이 작품은 30대 이상 남성들의 필수 드라마가 되어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물>은 초반에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러다 주인공이 현실정치권 안으로 들어간 후에는 동화로 전락해 시청자에게 실망을 안겼다. 현실정치의 정책적 대립 얘기는 쏙 뺀 채, 국민을 위하는 진실한 정치를 하자는 도덕교과서만 반복됐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프레지던트>가 정말 현실을 연상케 하는 정책대립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한국 정치드라마의 새 역사를 연 작품이 될 수 있었다.

<프레지던트>는 시즌2를 기대하게 하면서 막을 내렸다. 이대로라면 치열한 정책대립 끝에 불신임, 탄핵까지 나올 판이다. 제작진은 한국의 <웨스트윙>을 만들겠다고 한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실현 가능할까? 한국의 민감한 정치현실이 과연 정치드라마가 도덕동화가 아닌 진짜 정책대립을 그린다고 나설 때 받아줄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구조적으로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치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정치드라마의 수준은 부패와 권모술수 정도일 것이다. 만약 그것을 뛰어넘는다면 새로운 장이 열린다. <프레지던트>가 그래주길 바라는데, 그렇게까지는 못 간다고 해도 아주 실패작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착하게 살자, 착한 정치인이 성공한다'를 반복했던 <대물>이 아동용 정치동화였다면, 선의지를 가진 정치인의 어두운 면까지 그려낸 <프레지던트>는 어른을 위한 정치드라마였다. 본격적인 정치드라마가 나올 수 없는 한국적인 상황에선 이 정도만이라도 인정해줄 만한 성과였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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