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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과 ‘광화문’의 기만적 대결구도상대 ‘기득권’ 규정으로만 자기정당성 획득... ‘대안의 실종’ 만드는 악순환 끊어야
김민하 / 저술가 | 승인 2019.10.07 08:51

[미디어스] 집회의 계절이 다시 왔다고 해야 할까? 실제 누군가는 “10월은 집회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했다고도 한다. 조국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을 두고 양쪽에서 벌이는 장외투쟁의 광경은 실로 가관이다. 언론은 헬기와 드론까지 띄워 ‘스펙터클’을 전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도, “대의정치의 실종”을 말하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이 상황은 ‘대의정치의 실종’이라기보다는 어떤 정치의 결과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광화문’과 ‘서초동’의 집회 지지 세력이 서로에게 던지는 말들을 보면 그렇다. 양쪽 모두 상대를 조직된 집단이 동원된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양쪽 모두 ‘동원’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숫자의 인원을 불러 모으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대중적 에너지가 어디서 오는지를 따져 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일전에도 지적했듯 서초동 집회의 동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으로부터 비롯된, 검찰에 대한 적개심이다. 이들의 세계관 속에서 문재인 정권은 말 그대로 정권을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수파이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적폐’들이 문재인 대통령을 포위하고 있다. 심지어 집권 세력 내부에도 이 ‘적폐’들과 내통하거나 이들에 굴복한 배신자(?)들이 많다.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자택에 대한 검찰의 ‘11시간 압수수색’은 그 증거이다. 따라서 대중은 소수파 정권을 지키기 위해 다수파와 직접 맞서 싸워야 한다. 이들의 세계관에 반론이 될 만한 주장은 언론과 검찰, 보수세력이 함께 만드는 ‘세트 플레이’의 결과물에 불과하다.

광화문 집회의 경우 시작 자체는 보수세력의 기획에 의한 것이었다. 보수 정치 세력은 문재인 정권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하나로 모아 다가오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모처럼 성과를 내보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광화문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 중에는 보수세력의 이런 의도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경우도 많았다. 언론이 인용한 발언 등을 보면 이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대목은 ‘공정성’과 관련된 것이다.

광화문 집회에서 언급되는 공정성은 크게 두 가지 층위로 구분해볼 수 있다. 첫째는 이 정권이 권력을 독점해 오로지 사익을 거두는 데 사용한 전 정권을 ‘촛불 혁명’으로 몰아내고 집권했으면서, 그들에게 들이댔던 잣대를 자기 자신에겐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의 눈에 조국 법무부 장관에게 제기되고 있는 의혹은 과거 정부 같았으면 위법 여부를 떠나 장관직 사퇴에 이르고도 남았을 정도이다. 적어도 더불어민주당이 야당이었다면 분명히 자진사퇴를 주장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조국 법무부 장관을 감싸고 있기 때문에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내로남불’의 서사이다.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역 사거리에서 열린 '제8차 검찰개혁 촛불 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태극기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두 번째 층위는 조국 법무부 장관의 가족들이 입시와 대물림을 위한 재산 형성을 위해 동원한 수단과 방법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입시와 재산 대물림은 가장 치열한 경쟁인데 조국 장관의 가족들은 애초 출발선부터 달랐다는 것이다. 정권의 핵심부에 근접한 ‘기득권’ 교수 부부가 학력과 재력의 재생산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은 거의 무궁무진한데 비해 ‘나’는 그렇지 않았다는 게 이러한 인식의 근간이다.

그런데 이런 서사에서 제기되는 ‘부당함’은 결국 상대적인 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들의 출발선이 달랐다고 하지만, 적절한 출발선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각자 자기가 서 있는 자리의 발 밑을 가리킬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경우 “출발선이 달랐다”는 문제제기의 방향은 오로지 ‘나’보다 앞에 있는 대상을 향한다. ‘나’는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 시선은 중산층적인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서초동’과 ‘광화문’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서초동 집회에 나선 사람들이 ‘명분’이란 영역에서 마지막으로 동원하는 논리가 “겨우 표창장 같은 걸 가지고 이렇게까지 할 일이냐”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발언의 배경에는 ‘논문 제1저자’ 등에서 제기된 ‘스펙 품앗이’ 등 논란은 별 거 아니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누구라도 기회가 있었으면 했을 일이고, 실제로도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대중이 직접 거리로 나오는 ‘투쟁’은 대개 비주류 의식의 발현이다. 기성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기득권에 대항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다. ‘서초동’과 ‘광화문’은 서로를 가리켜 기득권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자신의 기득권적 속성은 의도적으로 외면한다. 따라서 이것은 텅 비어있는 대중투쟁이며 양쪽의 대립은 기만적 포퓰리즘의 대결이 될 수밖에 없다. ‘서초동’과 ‘광화문’의 배후가 되고 있는 정치세력들은 각자 이런 상황의 이해득실을 계산하며 정치적 이득을 재생산하기 위한 정치에 골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지금 실종된 것은 ‘대의정치’가 아니라 기만적 대립구도에 파열을 낼 ‘대안적 정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 ‘대안적 정치’의 가능성을 가로막는 것 중 하나는 ‘서초동’이냐 ‘광화문’이냐의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대중투쟁의 ‘스펙터클’이다. 200만이니 300만이니 하는 데에만 몰두해서는 이 함정을 빠져나갈 수 없다. 그런데 언론과 기성 정치는 빠져 나가긴커녕 오히려 스스로 함정 속으로 몸을 던지는 상황을 계속해서 연출하고 있다. 이런 자해적 몸짓이 아니라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기이다.

김민하 / 저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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