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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DC의 광기어린 조력자, 사회부조리극의 주인공으로 거듭나다[미디어비평] 톺아보기
meditator | 승인 2019.10.05 14:53

[미디어스] 조커는 언제나 강렬했다. 광대의 입모양 그대로 찢어진 입, 하얗게 분장한 얼굴, 그리고 광기 어린 웃음. 1940년 배트맨의 첫 호가 발간된 이래, 악당 조커는 언제나 배트맨을 위협하는 절대 악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위기에 빠진 고담시의 평화와 안정을 찾기 위해 나선 배트맨. 하지만 조커는 바로 그 배트맨이 목적으로 하는 '평화와 안정'을 흐트러뜨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범죄자였다. 마치 ‘배트맨 너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너는 나를 완성시켜(you complete me)' <다크 나이트> 속 대사처럼, 정의의 사도 배트맨이 존재하기 위해 그와 반대 속성을 가진 조커가 끊임없이 '도발'되었다. 1989년 팀 버튼의 <배트맨>에서도, 주인공보다도 더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2008년 작 <다크 나이트>에서도, 조커는 마치 땅에서 솟아오르듯 불쑥 등장하여 배트맨이란 존재를 '히어로'로 완성시켜 주었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바로 이 광기와 악행의 범죄자 조커에게 '역사'를 만들어주었다. 애초 조커란 캐릭터는 빅토르 위고 소설 원작의 무성영화 <웃는 남자>를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혁명과 전쟁, 폭동, 왕정복고 등 19세기 격변의 프랑스 역사를 살아냈던 <레미제라블>의 저자 빅토르 위고. 그는 귀족의 피를 물려받았지만 납치되어 기형적인 얼굴이 되어 정체성을 상실한 '웃는 남자'를 통해 ‘도덕적’인 결핍에 시달리는 귀족 사회와 ‘경제적 신체적’ 결핍으로 고통받는 민중의 삶을 대비시킨다. 그렇게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모순을 자신의 찢어진 얼굴을 통해 고스란히 담아냈던 <웃는 남자>는 이제 현대 미국의 뉴욕이 모티브가 된 고담시의 '아서 플렉'을 통해 오늘에 되살아난다. (이하 영화 <조커>의 스포일러 포함)

아서 플렉, 비등점을 향해 차곡차곡 

영화 <조커> 스틸 이미지

<배트맨> 시리즈 속 '조커'의 등장은 언제나 요란했다.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보이는가 싶으면, 어느새 이 기괴한 어릿광대는 각종 기발한 장치와 트릭을 통해 고담시를 뒤집고 배트맨의 허를 찌르곤 했다. 

그러나 아직 조커가 되지 못한 <조커> 속 아서 플렉의 등장은 처연하다. 일용직 품팔이와도 같은 어릿광대 아서 플렉. 정신병원에서 나온 그가 살아가기 위해 선택한 일이지만 그마저도 동네 아이들의 조롱거리로, 동료의 협잡으로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 

우울증 환자로 지금 먹고 있는 7가지 약으로도 구제할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듯한 그의 마음과 아랑곳없이, 그가 '모셔야 할' 어머니는 그를 '해피'라 부른다. 어머니 곁에서 모자가 함께 머레이쇼를 보며 자신의 꿈인 코미디언이 되는 순간을 상상할 때가 유일한 낙인 아서. 하지만 순간순간 튀어나오곤 하는, 스스로 멈출 수 없는 웃음은 그의 꿈조차 세간의 조롱거리로 만들어 버린다. 

비루한 삶, 책임져야 할 부양가족 그리고 오로지 망상 속에서만 가능할 것 같은 꿈. 폭발을 향해 나아가는 초침처럼 그의 삶은 차곡차곡 '비등점'을 향해 끓어오른다. 그리고 그 폭발의 계기는 우연히 동료에 의해 쥐어진 총, 그리고 언제나처럼 멈출 수 없는 웃음에 대한 폭력적 조롱이 빚어낸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그저 참을 수 없어 총을 사용한 '범법자'였다. 

영화 <조커> 스틸 이미지

하지만, 그 범죄는 뜻밖에도 그의 툭 튀어나온 뼈 일그러진 몸속에 숨겨두었던 '욕망'을 꺼내 든다. 불안을 달래려는 듯 끊임없이 피워대는 담배, 참으려 하면 숨이 막힐 정도로 다그치는 웃음, 그리고 순간순간 그를 몽롱하게 찾아드는 망상. 그럼에도 그는 '멀쩡한' 척하며 살아가려 했다. 비극적인 순간순간이 이어져 그를 잠식해 갔지만 그래도 어머니를 모시며 살아가려 했던 아서. 그의 내부에 있던 범죄적 욕망의 뇌관을 건드린 건 뜻밖에도 '어머니'이다. 

매일매일 고담시 최고의 부호 토머스 웨인에게 보내던 어머니의 편지는 그가 신체적, 정신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붙잡으려 했던 가정, 그 출생의 비밀을 폭로하는 계기가 된다. 아서가 짊어지려 했던 그 비극적 운명은 그의 말처럼 코미디 같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마는 가난한 집안의 입양아가 겪어낸 폭력의 결과물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사실이 '정상적인 척 살아내려 했던 삶'의 뇌관을 폭파해버린다. 두 발의 총성과 함께 날아간 그의 꿈도. 대신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견뎌왔던 그 모든 관계로부터 자유롭게 '조커'로 거듭난다. 

고담시, 아서 그리고 조커 

<조커>는 가장 밑바닥 삶을 버텨가던 아서가 고담시의 '사회적 문제'와 맞물리며 '안티 히어로'로서 거듭나게 되는 지점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영화 <조커> 스틸 이미지

아서가 자신의 아버지라고 착각했던, 그래서 잠시 꿈에 부풀었던 토머스 웨인은 아서는 물론 고담시의 경제적 상황에 못 견디며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을 그가 가진 부만큼의 자신감으로 멸시한다. 토머스를 아버지라 부른 아서의 해프닝은 그의 어머니의 '망상'에서 비롯되었지만, 아서 개인의 비참한 도발은 뜻밖에도 고담시 사회적 봉기의 도화선이 된다. 

그토록 꿈이었던 머레이 쇼에 출연한 날, 정성스레 광대 분장을 하고 그 자리에 나간 아서는 자신의 정신적 대부를 단호히 거부한다. 그리고 그 시간 아서로부터 촉발된 거리의 광대들 중 한 명이 고담시의 대부 토머스를 '삭제'한다. 

그렇게 서로 다른 이에 의해 벌어진 참사로 조커가 된 아서와 토머스의 아들 브루스는 맺어진다. 바로 '너는 나를 완성시켜'라는 조커의 대사가 성립되는 순간이다. 개인의 원한과 질곡이 궁극에서 사회적 관계와 갈등으로 순치되는 순간, 바로 그 절정에서 아서는 두 팔 벌려 자신의 '조커'됨을 받아들이고, 이미 미치광이 아서에 몰두했던 관객들은 그 수많은 조커들 사이에서 '조커'로서 스스로 세례를 내리는 아서에게 묘한 공감과 감동을 느끼게 된다. 아마도 이것은 고담시가 가진 부조리와 갈등이 자아내는 '비극적 카타르시스'이기 때문이리라. 

또한 사회적 정체성에 자신을 어떻게든 꿰어맞추고자 애쓰며 살아가는 개인들만이 가진 고뇌의 비등점을, 조커가 된 아서가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사회적인 지점, 그렇게 아서와 고담시의 기층 민중들은 아버지를 밟고 자신의 세상을 연다. 그저 DC 코믹스의 광기어린 조력자였던 조커가 사회부조리극의 주인공으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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