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Mnet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듀스 X 101>을 둘러싼 투표 조작 의혹이 절정에 이르렀다. 지난 1일과 2일, 경찰이 <프로듀스 X>에 참가한 몇몇 기획사를 대상으로 압수 수색을 벌였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이전 <프로듀스> 시리즈들과 Mnet의 또 다른 아이돌 오디션 방송 <아이돌 학교>도 수사 선상에 있다고 한다.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니 조작 여부에 관한 판단은 유보하려 한다. 묻고 싶은 건 그 아래 깔린 토양이다.

<프로듀스> 시리즈에는 전통적으로 세 가지 차원의 경쟁이 있다. 하나는 방송 촬영장에서 펼쳐지는 출연자들 사이 경쟁이고, 하나는 각각의 출연자를 ‘Pick’하는 팬덤 사이 경쟁이고, 나머지 하나는 출연자들을 방송에 노출해주는 제작진과 팬덤 사이 경쟁이다.

당연하게도 출연자는 방송에 분량이 많이 나올수록 시청자들의 표를 얻기 쉽다. 어떤 역할과 모습으로 방송에 나오느냐, 즉 ‘악마의 편집’이냐 ‘천사의 편집’이냐에 따라 출연자의 이미지도 달라진다. 각각의 팬덤은 이렇게 도출된 방송 분량을 바탕으로 대중 시청자를 상대로 표를 얻기 위한 홍보 활동을 한다. 팬덤이 제작진의 편집권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더 많은 분량을 달라, 왜 이렇게 분량이 적은가, 누구는 많이 주고 누구는 왜 적은가. 팬덤들은 인터액션을 위해 마련된 각종 댓글 창에서 제작진을 상대로 파워게임을 벌인다. <프로듀스> 시리즈에는 시청자들이 “준영아”라고 안준영 PD의 이름을 직접 호명하는 독특한 관습이 있는데, 이 한 마디에 시청자들의 인정투쟁이 집약돼있다.

프듀 전 시즌으로 뻗친 조작 의혹…수사 확대 (CG) [연합뉴스TV 제공]

이 방송은 매 시즌 출연자들 분량 배분에 차등이 크다는 반응이 많았다. <프로듀스 X>와 함께 투표 조작 의혹에 오른 <프로듀스 48>의 예를 들자면, 특정 일본인 연습생들은 경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거나, 투표 순위에서 상위권에 올랐지만 방송에서는 분량이 아주 적었다. 반면 특정 한국 기획사 소속 연습생들은 분량을 많이 받는다는 논란이 있었다. 이는 앞서 말한 세 방향의 역동과 맞물려, 역동을 심화했고, 음모론에 이른 의혹마저 나타났다. 댓글 창에선 “준영아”가 빗발쳤으며, 각 팬덤은 투표자를 유치하기 위해 고액의 경품을 거는 금권 선거를 불사했다.

백여 명의 연습생이 데뷔라는 달콤하고 절박한 목표를 두고 경쟁한다. 그러나 절반 이상이 카메라에 잘 잡히지도 않는다. 소수의 연습생들이 중요한 분량을 가져가고 다수는 오디션 방송의 규모를 채워주는 엑스트라로 활동하고 퇴장한다. 그럼에도 데뷔를 향한 희망을 걸고 과중한 스케줄을 예외 없이 소화한다. 프로듀스 시리즈는 연습생들의 피땀과 그들의 데뷔에 열정을 건 시청자들의 돈과 시간을 삼키며 존속해 온 방송이다. 그렇게 열의를 쏟아부어도 보답받을 수 없는 상황이 생기는 데서 비극이 시작된다. 이제는 분량 차등의 결과로 도출되는 투표수마저 공정성 논란에 올랐다. 이건 방송이 그 자신을 떠받치는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준 상황이다. 방송의 대전제를 이루는 슬로건 ‘국민 프로듀서의 선택’은 찢어졌다.

문제의 저변은 방송 제작의 구조적 환경이다. 방송사 Mnet은 국내 굴지의 엔터 회사 CJ E&M의 계열사다. CJ는 문화산업 각 방면에 진출해있고, <프로듀스> 시리즈를 통해 음악 방송은 물론 음악 세일즈와 매니지먼트 부문까지 수직 계열화한다는 비판을 샀다. <프로듀스>와 <아이돌 학교>에서 선발된 아이돌 그룹은 CJ 계열 매니지먼트 회사 스윙 엔터테인먼트와 오프더레코드에서 활동한다. 또한 유력 아이돌 기획사들이 방송에 연습생을 제공하여 기획사들은 자사 연습생의 팬덤과 인지도를 불리고 Mnet은 유망한 연습생 자원을 확보한다. 이런 상황에서 혹시 방송사가 원하는 멤버를 구성하기 위해, 또한 특정 기획사들과의 유착 관계를 통해 시청자 선호에 개입하는 건 아닐까 의혹을 품는 이들이 생기는 건 필연이다.

어쩌면 현재의 의혹은 지면을 뚫고 솟아오른 왜곡된 구조의 밑변이다. 시청자들의 투표가 조작되는 사태와 분량이 편집돼더라도 최종 결정은 시청자가 하는 상황은 물론 차원이 다르고 둘은 함께 취급되어선 안 된다. 하지만 만약 수사 결과 투표 조작이 없었다고 밝혀지더라도 원칙 없는 분량 차등이 횡행한다면 그런 방송이 공정하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제작진은 방송의 동반자로서 함께 가야 할 시청자, 저마다의 꿈을 품고 방송에 참가한 연습생들을 편집을 통해 소외한 전력이 있다. 이번 논란 역시 그렇게 퇴적된 불신의 연장선에서 불거진 것이다. 일례로 <프로듀스> 시리즈의 분량 차등은 방송에 한하지 않는다. 방송에서 많은 분량을 받았던 기획사 연습생들이 그룹으로 데뷔한 후에도 많은 분량을 얻는 경우, 방송에서 분량이 없는 연습생들이 있는 것처럼 데뷔 그룹의 일원이 되었음에도 분량을 얻지 못하는 멤버들이 있다. 아이즈원의 야부키 나코는 <프로듀스 48> 방송 기간 동안 경연에서 선전하고 큰 팬덤을 얻어 높은 순위로 데뷔했음에도 아이즈원의 일부 팬들마저 의구심을 표할 만큼 거의 모든 활동 방면에서 존재가 옅어진 상태다.

경찰, '방송 조작 의혹' 프듀X 제작진 사무실 압수수색 [연합뉴스 자료사진]

나아가서 <프로듀스> 시리즈는 산업 생태계의 불균형을 불러왔고 그 불균형 위에서 번영해왔다. 방송의 흥행을 등에 업고 데뷔한 프로듀스 그룹은 아이돌 시장의 파이를 넓히는 역할도 했겠지만 여타 아이돌 그룹들이 나눠 가질 파이를 잠식하기도 했다. 중소 기획사들은 연습생을 키워 방송에 납품하는 하청 기업이 되며 독자적으로 아이돌 그룹을 론칭할 기반이 허약해졌다. 투표 조작 의혹을 계기로, 이 방송의 뿌리를 끌어올려 다 함께 돌아볼 필요가 있다.

Mnet은 지난 십년 간 방송가를 지배한 오디션 방송의 트렌드를 연 선구자이며, 포맷과 내용을 교체해 오디션 방송의 계보를 연장하여 자사의 간판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최근 너나 할 것 없이 저조한 오디션 방송들의 시청률을 보면 Mnet의 제작진들은 매너리즘을 타개할 역량이 없으며 이 트렌드의 수명은 이미 지난 것 같다. 급기야 오디션 우승자를 뽑는 시청자 투표의 신뢰성이 전면적으로 의문에 부쳐졌고, Mnet은 스스로 열었던 오디션 방송의 시대에 스스로 종지부를 찍었다.

거대 연예 자본의 가요 시장 수직 계열화, 방송국과 유력 기획사들의 유착 의혹, 중소 기획사들과의 상생을 저해하는 시장 생태계 왜곡, 방송 데뷔 그룹의 분량 차등… 경찰 수사 결과와 무관하게, 이 사태에 연루된 문화산업의 바탕이 토론에 부쳐져야 한다. “CJ가 문화를 만듭니다.”라는 슬로건은 빛바랜 채 나부낌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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