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노운 - 소재는 흥미롭고 반전은 싱겁더라 ★★★

반전을 가진 영화가 "나한텐 엄청난 반전이 있거든!"이라고 떠들면 밑천을 최소 절반 이상은 드러내놓고 시작하는 꼴입니다. 모름지기 진정한 반전의 묘미는 관객들이 채 의식하기도 전에 뒤통수를 냅다 후려치는 거예요. 이를테면 작년에 개봉했던 <헬로우 고스트>처럼 말입니다. 사실 <헬로우 고스트>를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인정하기는 힘듭니다. 제 경우 러닝타임의 95%가 흘러가는 동안 좀처럼 지겨움의 늪에서 헤어나오질 못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5%가 꽤 효과적이었기에 별점을 세 개 반이나 남발하는 사태가 벌어졌었죠.

반전이란 그런 겁니다. <헬로우 고스트>처럼 반전의 유무를 모르고 봤던 영화라면 그 반전 하나 때문에 좋은 반응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반면 개봉 전부터 엄청난 반전이 있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낸 영화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후자는 완성도가 꽤 좋아도 결말이 시원찮으면 시시한 영화라는 멍에를 쓸 확률이 커지게 됩니다. 정확히 <언노운>이 그렇습니다.

네이버 메인에 걸렸던 <언노운>의 배너를 보신 적이 있나요? "전 세계 스포일러 비상. 결말 유출 금지" 척 봐도 호들갑에 과장까지 더한 문구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이틀 영화 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것만 봐도 콧방귀를 뀌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냉정하게 말해 "빈 수레가 요란하다"라는 표현의 적절한 예로 써도 모자람이 없을 겁니다. 진정 훌륭한 영화는 제 발로 나서서 관객에게 선입견을 잔뜩 심어주는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그건 영화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행동이에요. 그렇다면 굳이 이렇게 자극적인 문구를 전면에 내세우는 목적은 뭘까요?

간단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그리고 쉽게 흥미를 갖게 만들어서 가능한 많은 관객을 초기에 끌어 모으려는 전략에 다름 아닙니다. 요즘 극장의 회전율이 빠르기도 하지만, 초단기가 아니라면 승산이 없다는 계산이 깔린 것이겠죠. 결국 배급사든 홍보사든 자사 영화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시인하는 셈입니다. <언노운>은 예고편만 봐도 반전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무리를 하면서까지 그걸 적극적으로 강조할 필요는 없었어요.

미리 말하지만,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고 이까짓 건 그럴 거리도 못 됩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영화가 시작하고 5분이 흐르기도 전에 그렇게 자랑삼아 떠들던 <언노운>의 반전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물론 100% 완벽하게 맞췄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어떤 설정을 가져왔는지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겠더군요. 여기서 <언노운>의 장르를 규정할 수 있는 단어를 하나만 제시해도 누구나 맞출 수 있습니다. 심지어 본편을 보지 않고 예고편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의아할 만큼 영화가 초반부터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친절하게 흘려주기도 합니다. 그만큼 <언노운>의 반전은 대단할 것이 없다는 말이고, 반전에 집착하게 만든 홍보사의 전략은 굉장히 근시안적인 발상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홍보사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는 합니다. 좋게 말하면 엄연히 맡은 바 업무에 충실한 것일 뿐일 테니까요.

반전을 떼놓고 보자면 <언노운>은 그럭저럭 기본은 하는 영화입니다. <테이큰>으로 졸지에 뒤늦게 액션스타로 발돋움한 리암 니슨의 연기도 괜찮고, 트로이가 함락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다이앤 크루거의 미모도 여전히 빛을 발합니다. (모국어를 쓰니까 더 아름답더군요 ㅎㅎ) 캐릭터의 활용이 빈약해 도중에 버려지다시피 하는 브루노 간츠와 프랭크 란젤라의 존재감은 상당히 묵직합니다. 두 배우가 마주하던 짧은 순간이 <언노운>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일 정도에요. 두 사람, 특히 브루노 간츠의 캐릭터는 좀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간섭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만약 반전을 염두에 두고 이 영화를 보려 한다면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왜 반전만 보느냐!?"라고 관객에게 따질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홍보하는 단계에서부터 관객의 시선이 한 곳에 집중되도록 부추긴 쪽은 따로 있습니다. 고로 일찌감치 낚시감이 되지 마시라고 반전을 중점적으로 언급했습니다만, 실체까지 드러내는 건 예의가 아니겠죠. 그래서 흥미로웠던 소재가 무엇이었는지 말할 수 없습니다. 아울러 리암 니슨이 나온다고 <테이큰>의 액션을 떠올리시는 것도 피하시기 바랍니다. 그보다는 비교적 잘 짜여진 전개와 나름 심도 있는 소재가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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