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보다 진전된 모습을 보았다."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 후보도시 실사를 위해 강원도 평창을 찾아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구닐라 린드버그 조사평가위원장이 모든 실사를 마치고 전한 총평이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올림픽 유치의 열망을 느낄 수 있었으며, 시설이나 환경 역시 매우 만족스러웠다는 것이 조사평가단의 평가였습니다.

동계올림픽 유치 두 번 실패의 아픔을 거울삼아 평창은 다시 일어서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지방 도시의 한계를 딛고 올림픽 최종 후보 도시에 선정된 뒤 많은 노력을 통해 정말로 올림픽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평가받을 만합니다.

이번 실사 일정 내내 평창이 언제든 올림픽을 치러낼 수 있는 자신감을 심고, 실사단에게 강한 인상을 역시 심어준 것은 "더 노력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인식을 갖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실사 기간, 평창을 찾아 언급한 것처럼 "강원도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 나서면 할 수 있다"는 말을 잘 실천하기만 한다면 '2018 평창'의 꿈이 현실로 실현될 가능성은 아주 높아 보입니다. 적어도 실사단에서 보인 장면들 하나하나만 놓고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물론 구제역 파동 사실을 덮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것 자체는 조금 아쉬운 대목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 19일 오후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리조트 컨벤션센터에서 평창유치위원회의 기자회견이 열려 조양호 유치위원장(가운데)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특히 최근 올림픽, 월드컵 같은 국제 대회 유치 사례들을 통해 막판까지 알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전쟁' 때문에 뒤집어진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이 실사 내내 "방심하기엔 이르다", "절대 안심할 수 없다"라고 누차 강조를 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 겁니다. 독일 뮌헨, 프랑스 안시 등을 꺾을 만한 확실한 '킬링 컨텐츠' 그리고 '보이지 않는 숨은 힘'이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실사까지 벌였던 모든 노력이 또다시 헛수고로 돌아갈 공산이 큽니다.

강력한 경쟁 상대인 독일 뮌헨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토머스 바흐 IOC 수석부위원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스포츠 외교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중심을 잡고 일을 한다면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쏠리기 마련인데요. 현재 독일 뮌헨이 바흐 부위원장의 영향력을 충분히 잘 살리고 있다는 점은 평창 입장에서는 그다지 달갑게 여겨지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물론 한국도 이건희 IOC 위원이 나름대로 입지를 높여가고 있는 IOC 위원 가운데 한 명이고, 조양호 유치위원장이 전 세계 스포츠 인사 영향력에서 7위까지 오르는 성과도 있었지만 스포츠 외교 면에서 과거 김운용 IOC 부위원장만큼 막강한 영향을 행사할 만한 확실한 인적 자원은 없다는 약점이 있기는 합니다. 이는 '확실한 물밑 작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여러 가지로 부족하다는 것이며, 때문에 막판 판도가 치열한 접전으로 전개될 때 불리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최근 국제 대회 유치전을 보면 몇몇 사람 그리고 금전(돈)적인 부분으로 의외의 도시 또는 국가가 유치권을 따낸 경우가 많았습니다.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전이 벌어졌던 2007년, 최하위로 평가받던 러시아 소치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앞세워 막판 대역전을 펼친 것, 그리고 2022년 월드컵 유치전에서 가장 낮은 평가를 받았던 카타르가 왕가(家)를 내세워 역시 막판 대반전으로 유치권을 따냈던 것이 대표적입니다. 아무리 중간 평가 단계인 실사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해도 투표가 벌어지는 총회에서 거물급 인사 한 명만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면 큰 대회를 유치할 가능성이 높아져 하나의 정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게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이 때문에 올림픽, 월드컵이 돈에 물들여졌다,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몇몇 사람 때문에 바뀌어서 되겠느냐는 비판을 받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이 '정석'은 유치를 희망하는 도시, 국가에서 '하나의 힘'으로 여기며 거의 총동원하다시피 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특히 평창 유치위원회, 그리고 정부가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추고 있다 해도 만약 남북한 문제 같은 결정적인 중대 사안이 생겼을 때 이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보이지 않는 숨은 전쟁'에서 상대 경쟁 도시들의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꼬투리를 잡을 공산은 큽니다. 2022년 월드컵 유치전이 벌어질 당시, 연평도 포격전에 대한 안보 불안 문제를 제대로 커버하지 못해 결국 유치에 실패했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을 만큼 완벽한 체계를 갖추면서 이를 커버할 만한 확실한 인적 자원 관리, 운영, 그리고 이를 통한 '숨은 전쟁 승리 전략'까지 완전하게 갖추고 있어야 유치 꿈을 계속 살려나갈 수 있습니다.

▲ 20일 오후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에서 강원도민들이 2018 동계올림픽 공식 후보도시의 현지실사를 마치고 출국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조사평가단에게 유치를 염원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대규모 환송행사를 벌였다 ⓒ연합뉴스
스포츠 외교 면에서 조금은 부족한 면이 많은 게 사실이라 할지라도 답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동계스포츠 스타 또는 선수들을 활용하는 방안입니다. 최근 유치위원회에서 '히든 카드'로 '피겨 여왕' 김연아를 언급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현역 최고 피겨 스케이터이자 유럽이나 북중미 쪽에도 큰 매력을 선사한 바 있는 김연아가 유치전에서 활약을 보여준다면 독일의 막강한 인적 자원 벽을 넘어뜨릴 가능성은 높습니다. 또 지난해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낸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들이나 전이경, 채지훈 등 역대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 그리고 최근 국제봅슬레이연맹 부회장으로 선임된 '한국 썰매의 자존심' 강광배 등도 충분히 활용할 만한 인적 자원입니다.

'선수 중심'의 대회를 추구하는 IOC의 기본 원칙에도 맞을 뿐 아니라 최근 떠오르는 동계스포츠 강국의 위용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도 선수 또는 선수 출신 체육인을 활용한 유치전은 충분히 실현해 볼 만한 전략입니다. 그밖에도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브랜드를 가진 기업들을 잘 활용하고, 정부 차원에서도 '세 번 실패는 없다'며 다각도로 전력 투구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결심만 있다면 스포츠 인적 자원의 부족함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입니다. 체육계를 비롯해서 이와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 그리고 기업, 단체 등 모든 이들이 갖고 있는 의지를 실행에 옮기는 자세가 그만큼 절실하다는 것입니다.

세 번이나 도전을 하니 IOC 위원들에게 충분히 인식도 시켰고, 올림픽 유치는 떼어 놓은 당상 아니냐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전 사례들도 봤듯이 올림픽, 월드컵 등 큰 규모의 대회 유치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과거에도 올림픽 유치에 도전했다 실패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으며 평창도 유치일까지 5개월 남은 가운데 잠깐 삐끗한다면 또 미끄러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일단 중간 평가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듯 보입니다만, 정말로 안심하기는 이르고 어떻게 보면 이제부터 시작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한국, 그리고 강원도 평창만의 장점을 충분히 인식시키고, '보이지 않는 전쟁'에서 이길 만한 확실한 전략을 제대로 보여줬을 때 평창 동계올림픽의 꿈은 이뤄질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번 전쟁이 그동안 동계올림픽 2회, 월드컵 1회 유치 실패의 아픔을 겪었던 한국 스포츠 외교에 전환점이 될 공산이 큽니다. 향후 미래를 위해서라도 확실하고 탄탄하고 체계적인 '숨은 전쟁 대비'가 필요할 때입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