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조커>를 더 재밌게 보는 방법 한 가지를 제안한다. 카메라가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을 몇 번 벗어나는지 세어보자. 영화의 세계관 확장을 기대하게 만드는 유명한 씬 하나를 제외하면 <조커>에서 카메라는 아서가 겪을 수 없는 시간과 장소를 비추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건은 아서가 인지할 수 있는 범위에서만 발생한다. 물론 시위대의 폭동처럼 아서가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서 벌어나는 사건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TV를 통해 아서에게 친절하게 전달된다. 이 영화는 철저히 아서의 1인칭 경험담이다. 아서는 모든 사건의 주인공이며 관찰자다.

영화 '조커'

‘외로운 늑대(자생적 테러리스트)에 대한 면죄부를 부여한다’, ‘인셀(여성혐오를 가진 비자발적 독신주의자)의 모방범죄를 부추긴다’는 <조커>를 둘러싼 우려와 비난도 집요하게 아서를 쫓는 카메라의 시점. 그리고 현실성을 더하는 연출력과 배우들의 명연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잔혹하며 반사회적인 클라이막스에서 통쾌함을 느꼈다. ‘한국은 총기사용이 금지되서 다행이다’는 식의 걱정을 친구와 주고받으면서 극장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훌륭한 영화인지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감정을 흔드는 영화라는 평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해는 말자. 외로운 늑대, 인셀이 테러를 저지르는데 감정적 동의를 하자는 말은 절대 아니다. 불우한 상황에 처했다고, 혹은 그런 상황이라고 착각한다고 해서 모두가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는다. 게다가 이 영화는 조커가 아니라 아서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생각한다. 아서가 조커로 타락하는 계기를 차단할 수 있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떻게 조커가 탄생했는가’가 아니라 ‘왜 아서는 조커가 됐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아동학대를 방관하는 어머니에게서 어린 아서를 분리할 수 있었다. 우리는 더 많은 예산을 정신보건분야에 더 많은 세금을 투자해 전문적인 상담사를 연결하고 약물치료를 연장할 수 있었다. 우리는 아서가 일자리를 잃었을 때 부당한 고용주에 함께 맞서고,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서 재기의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 성공하든 아니든. 우리는 아서가 지하철에서 취객들에게 폭행을 당하지 않도록 공무원을 더 고용해 쾌적하고 안전한 대중교통 시설을 운영할 수 있었다.

언급된 한 가지의 조치만이라도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조커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조치를 취해야할 공동체는 반대로 나아갔다. 미디어는 사회안전망에서 탈락한 이들을 보듬고 위안을 건네기보다 TV쇼의 웃음거리로 삼으며 조롱하기 바빴다. 시장선거에 출마해 사회를 바꿔보겠다는 후보자는 시위대에게 불평불만을 던질 시간에 일이나 하라며 몰아세웠다. 물론 그런 상황을 방치하는 지옥 같은 장소가 고담이라는 도시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다행히 ‘아직까지만’ 고담이 아니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 <코디미의 왕>이 관련 영화로 많이 언급된다. 캐릭터와 스토리를 고려하면 <조커>는 두 영화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다만 나는 같이 보면 좋을 영화로 한편을 더 추가하고 싶다.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다.

아서와 다니엘의 꿈은 다르지 않다. 사회가 제공하는 최소한의 안전망들. 다니엘에게는 실업부조가 될 것이고, 아서에게는 상담과 복용양 처방 정도. 그리고 그것을 활용해서 이웃들에게 도움이 되고 사랑받는 아주 소박한 꿈. 하지만 사회는 이들을 무례하게 대하고 무관심으로 방치한다. 참다못한 다니엘은 분노를 터트린다. 물론 그의 분노는 동사무소 벽에 스프레이로 이름을 쓰는 수준이지만. 차이점은 다니엘은 죽어서 이웃들의 영웅이 됐고, 아서는 살아남아 고담의 악당이 됐다는 것이다.

호아킨 피닉스가 각본을 받았을 때 첫 제목은 <Joker: An Origin>이었다고 한다. ‘The Origin’이 아니라 ‘An Origin’. 결국 제목은 <Joker>로 결정됐다. 만약 내게 영화의 부제를 짓는 기회가 돌아온다면 이렇게 쓰고 싶다. ‘나, 아서 플렉(I, Arthur fl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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