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공인된 법칙을 뒤집는 획기적인 기술이 나타난다. 우리나라 디지털 텔레비전(DTV) 전송기술 표준을 정할 때 유럽방식을 주장하는 이들이 '주파수 하나로 전국 방송을 할 수 있다(SFN 방식)'고 했다. 그러자 미국식을 선호하는 쪽에서는 그런 황당한 기술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곧 유럽식을 주장하는 이들의 유쾌한 반란은 상식이 되었다. '직교주파수다중분할(OFDM)'이란 새로운 변조기술이 개발되었기 때문이었다. 국내 DMB 방송이 채택한 이 기술은 주파수(채널) 하나로 모든 방송구역에서 깨끗한 방송을 볼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달리 개발한 새로운 기술도 없이 공학적 상식에 반하여 전파 시스템을 운용하는 것은 방송전파 운용 체계를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한다. 수원 광교산 KBS 디지털 텔레비전 간이중계소(DTVR)가 지난달부터 일으키는 전파간섭과 관련자들의 변명을 두고 하는 말이다.

수원 광교산 KBS DTVR 송출 이후

수원에 거주하는 한 시청자가 국내 안테나 제조 회사 홈페이지에 관련 글을 올렸다. 이 시청자는 얼마 전까지 SBS 남산 송신소 신호로 방송을 잘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해당 채널에서 ‘KBS-2TV'가 나와서 난감하다며 해당지역에서 EBS와 SBS가 빠진 검색 채널 목록을 알려왔다. 이 일이 있은 후 전파 간섭으로 피해를 본 EBS와 SBS가 방통위와 KBS에 시정을 요구하고 미디어스가 두 번에 걸쳐 이를 보도하자 KBS가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미디어스에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다소 황당한 사태가 전개됐다.

미디어스 취재 보도를 종합해보면 KBS는 지난달 10일부터 수원에 있는 광교산 디지털 텔레비전 간이중계소에서 64번 채널로 ‘KBS-1TV 경인방송’을, 68번 채널은 ‘KBS-2TV’를 송출 출력 1KW로 각각 전파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텔레비전 간이중계소는 남산이나 관악산에 있는 송신소에서 발사하는 전파가 지형적인 문제로 방해를 받는 난시청 지역에 소출력 송신기를 설치해서 난시청을 해소하는 시설이다. 이때 송신소와 중계소가 인접 지역이면 서로 다른 주파수(채널)를 사용하여 동일 주파수 전파 간섭을 피해야 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 그런데 방통위와 KBS는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이런 원칙을 지키지 않아 부분적으로 EBS와 SBS를 먹통 방송으로 만들었다.

방통위가 KBS에 할당한 채널이 하필 EBS와 SBS 남산 송신소가 사용하는 방송채널과 같은 것이 문제였다. 남산 송신소 EBS 64번 채널은 광교산 ‘KBS-1TV 경인방송’과 충돌하고, 남산 SBS 68번 채널은 ‘KBS-2TV'가 방해한다. 남산과 광교산은 겨우 22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방송 수신이 유효한 전계강도 지역(동일 방송구역)에서 같은 채널로 전파를 발사하면 ‘동일채널간섭’이 일어나고 두 방송이 모두 수신되지 않는 블랭킷 에어리어(blanket area)가 나타나며 그 외 지역에서는 두 방송신호 중 높은 출력 신호만 수신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지역에서 KBS 방송신호가 EBS나 SBS 신호보다 세기 때문에 EBS, SBS는 사라지고 KBS만 볼 수 있다. 미디어스가 “KBS 경인방송이 EBS 신호 밀어내”라고 표현한 것은 이런 현상을 말한다.

문제가 불거지자 전파 간섭으로 난시청지역은 없다던 방통위가 서둘러 대책을 내 놓았다. KBS 간이중계소의 준공 기한을 2월 말로 연기하고 관련 방송사 등이 합동으로 전파 간섭을 조사하며 결과에 따라 전파 혼신 예방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한다는 것이다. 대책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효는 조금도 없는 미봉책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체경로 수신론, 해답일까?

EBS가 전파 간섭을 조사했더니 측정 지역 10개 중 7개 지역에서 EBS와 SBS의 방송신호가 아예 잡히지 않았다 한다. 당연한 일이다. 동일채널 간섭은 조사할 필요도 없는 교과서적 이론이다. 방통위가 전파 간섭조사를 만 번을 한다고 해도 물리를 바꿀 수 없다. 방통위와 KBS도 이런 사실에 달리 반박할 논리가 없는 듯 이 번 일은 전파간섭 현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란 투다. 전파간섭으로 수신 장애가 발생하더라도 다른 전파 경로로 EBS와 SBS를 수신할 수 있으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취지의 해명을 미디어스에 했다고 한다. 이들이 작명하지는 않았으나 ‘대체경로 수신론’으로 불러볼만 하다. 이것도 곧 해결책이 못되는 기망임이 나타난다.

‘남산에서 송출하는 EBS, SBS 방송을 보던 시청자가 광교산 KBS 중계소의 전파 간섭으로 이들 방송을 볼 수 없게 되었다면 대신 관악산에서 송출하는 EBS, SBS 전파를 수신하면 된다’는 것이 ‘대체경로 수신론’이다. 물론 EBS와 SBS는 관악산 송신소에서도 남산 송신소와 같은 방송을 서로 다른 채널(EBS 18번, SBS 16번)로 송출하여 서울과 경기도 난시청지역을 해소한다. 하지만 경기도 수원, 성남, 용인, 분당 등 관악산 전파가 자연적, 인위적 장애로 도달하지 못하는 지역에서는 남산 송신소 전파만 받아서 시청한다. 이런 지역이 한두 곳이 아니란 것은 이미 조사하여 알려진 사실이다. 이 지역에 남산 전파를 대신할 어떤 대체 방송신호는 없다. 있다면 유료방송에 가입하는 길이 유일하다.

한편 ‘전파혼신 예방 가이드’를 제정하겠다고 하는 것도 핵심을 비켜가기는 마찬가지다. 전파 혼신 예방 의무는 이미 전파법과 그 시행령에 자세히 정하고 있는데 구속력도 미약한 가이드라인은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사문서에 불과하다.

이렇듯 어느 것 하나 합리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대책을 방통위가 들고 나온 사정은 알만하다. 시간과 비용 면에서 이미 전파를 발사하고 있는 송신기 주파수 변경이 거의 불가능한 KBS의 사정을 고려해야 하고 피해야 할 채널을 잘못 할당한 행정책임을 모면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얕은 대책에 방통위가 반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방송 중인 방송사 간 전파간섭 측정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간섭 예상지역에 관련된 방송사는 송신기를 끄거나 켜기를 반복해야 한다. 남산, 관악산 뿐 아니라 다른 시도 지역에 있는 송신기도 경우에 따라 같은 절차가 필요하다. 일정시간 방송 중단도 감수해야 한다. 결국 이런 어려움을 고려한 간략한 조사를 통해 ‘미미한 전파간섭으로 인한 소수 난시청 가구 확인’으로 결정 날 개연성이 높다. 따라서 2월 말 방통위의 결정을 예상하면 KBS에는 이미 허가한 채널은 그대로 두고 출력을 좀 줄이는 조건으로 준공검사를 완료하고 대신 EBS와 SBS에게 KBS에 준하는 출력의 광교산 간이중계소를 허가할 테니 수용하고 더는 문제 삼지 말라는 제안이 나올 성 싶다.

문제의 본질은

동일채널 간섭으로 인한 시청자의 방송수신 방해는 시청자가 어느 송신 시설에서 오는 전파를 수신하느냐 하는 선택으로 해결할 사안이 아니다. 전파간섭을 일으킬 것이 예상되는 지역에 타 방송 채널을 재사용하도록 허가한 잘못에서 나타나는 주파수 정책 부재와 배임이 본질이다. EBS와 SBS 입장에서는 허가 받은 주파수 권한을 침해 받은 권리의 회복 문제이며 시청자는 무료 지상파 방송 수신권을 박탈당해 침해 받은 권리회복에 관한 문제다. 더구나 규제기관 방통위와 공영방송 KBS는 무료지상파 방송의 직접수신 확대와 수신환경 개선이라는 대의를 KBS에 국한해 적용한 문제다.

인정받기 어려운 동일채널 허가와 운용이 결정된 이유가 궁금하다. KBS는 자사 간이중계소 문제를 보도한 미디어스를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법적조치 한다고 통보했다고 한다. 공학적인 문제인 만큼 사안의 검증은 매우 명쾌하고 간단하다. 검증 후 법적 조치를 해도 늦지 않다. 더욱 KBS는 방통위가 허가한 대로 이행했을 뿐인데 이 처럼 과잉 반응을 보일 이유가 없다. 전파 전문가가 즐비한 방통위도 이런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그럼에도 일을 이렇게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수원지역에서 KBS의 난시청 가구를 시급히 해소해야 할 급한 그 무슨 이유가 있었든지 아니면 주파수 재배치나 디지털 전환과 관련된 깊은 뜻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통위의 속내를 알 수 없다. 방통위가 정상적인 사고를 했으면 2013년 디지털 전환 후 회수할 채널 64번과 68번을 할당하면 안 된다. 2년 후 회수할 채널을 피해 디지털 텔레비전용으로 배정한 채널14~51번을 허가해야 했다. 아니면 비록 타당성이 결여된 기술이긴 하지만 저출력 분산중계기술(DOCR)을 이용하여 남산 송신소에서 KBS가 사용하고 있는 채널을 재사용 했어야 동일채널 간섭이 발생해도 KBS만의 문제가 되어 다른 방송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지상파 직접 수신을 높이기 위한 방통위와 KBS의 절박함을 이해한다. 수신환경 개선은 시청자 편익 증대를 위한 지상파 방송 모두와 시청자 전체의 관심사다. 그래도 이런 식의 문제 해결은 안 된다. 정치적 상상을 제외시키면 이 사태는 방송주파수 부족이 한 원인이다. 결국 많은 주파수를 사용해야(MFN) 난시청을 해소할 수 있는 미국식 디지털 텔레비전 전송방식이 초래한 불행이다. 방통위는 디지털 전환 후 방송용 채널 18개를 회수할 예정이다. 나름대로 수요 예측 결과라고 하지만 지금 수도권에서만 지상파 난시청 지역을 해소하기 위해 20여 개 채널이 부족하다. 디지털 전환 후 방통위 말처럼 채널은 충분하지 않다. 이참에 디지털 전환 후 지상파 직접 수신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해 방통위가 회수하기로 결정한 주파수 대역을 재고해야 한다.

부족한 방송 주파수, 대안은

한편 통신에서도 새로운 모바일 서비스를 위해 새 주파수가 필요한 만큼 방송용 주파수 수요를 줄일 수 있는 기술적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국내 디지털 텔레비전 전송방식을 미국식에서 유럽식으로 하이브리드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궁극에는 주파수 하나로 한 방송사의 모든 방송구역을 처리할 수 있는 유럽식(SFN)으로 옮겨가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여유 주파수를 확보할 수 있어 무료방송 직접 수신율을 높이고 통신 서비스를 위해 더 많은 주파수를 배분할 수 있다.

규제기관은 난시청 해소를 명령해야 한다. 방송사는 난시청 해소 의무를 다해야 한다. KBS가 간이중계소를 운용하는 것은 당연하고 권장한다. 하지만 타 방송 수신방해를 감수할 가치는 아니다. 전파간섭은 조사할 필요도 없는 불변하는 물리현상이고 출력을 지금보다 줄이는 것은 간섭대신 전파공백지역을 발생시켜 난시청을 일으키기는 마찬가지다. 간섭 피해 방송사에 광교산 간이 중계소를 선심 쓰듯 허가하며 무마하려는 것은 더욱 안 된다. 난시청 해소를 위한 방송사의 중계소를 설치는 권리이자 의무이지 규제기관이 베푸는 시혜일 수 없다. 디지털 전환까지 난시청을 참으라는 것도 시청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방통위와 KBS에겐 매우 안타깝지만 광교산 간이중계소 송신기는 바로 끄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 그리고 방송 주파수 재배치와 DTV 전송방식을 현실에 맞게 수정해 나가는 긴 호흡으로 방안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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