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OCN <미스터 기간제> 후속 <달리는 조사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용수가 돌아왔다!'라고 하면 어떨까? <적도의 남자>, <화이트 크리스마스>, <아이언맨>, <베이비시터> 등 TV 드라마로 구현할 수 있는 최고의 '미장센'을 실험해냈던 김용수 PD. 하지만 그의 미적인 실험정신은 시청률과 쉬이 화해하지 못한 채 장편 드라마에서 중편 드라마로 그리고 단막극으로 입지가 좁아지더니, 소속된 KBS의 퇴사와 함께 포털에서 그의 약력도 사라졌다. 그런 그가 불현듯 OCN 장르물 <달리는 조사관>으로 돌아왔다. 무엇보다 시대와 화합하지 못한 '장인'이 사라지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이 먼저 든다.

용수의 맛은 여전하다

OCN 새 수목 오리지널 <달리는 조사관>

김용수 연출을 정의하자면 여러 가지 수식이 필요하겠지만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우선할 수 있는 건 '영상 미학'이다. TV라는 화면의 본성, '보여주는 것'에 그 무엇보다 충실하다. 보여주는 것을 통해 '소통'하고자 하는 연출, 역시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국가인권증진위원회를 배경으로 한 위원회 조사관들의 활약을 그린 드라마 <달리는 조사관>. 이 위원회를 이끄는 위원장 안경숙(오미희 분)은 일반적으로 드라마 속 '위원장'이 보여주는 권위적인 모습과 달리,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로 위원회 조사관들을 품어준다.

2화, 인권증진위원회 과장인 김현석(장현성 분)이 현재 조사 중인 사건에 자신의 형이 고위직으로 있는 회사가 관여되어 있자 위원장을 찾아와 조사에서 빠져야겠다는 결심을 알린다.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오해를 우려한 김 과장의 '고민'에 위원장은 그저 단 한 마디, '하던 대로 하시라'며 그의 노파심을 접어두게 한다. 씬은 짧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 이후, 위원장은 위원장실의 창문을 연다. 여느 사무실과 다른 창호지문으로 된 문이 줄지어 비껴 열리고, 하늘을 바라보는 위원장의 모습은 '운신의 폭은 좁지만 그래도 정도의 길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희망'을 엿보게 해준다.

이런 식이다. 언제나 그랬듯, 김용수 연출의 드라마는 이번에도 ‘짧은 대사 긴 여운’의 화면을 통해 드라마를 풀어낸다. 등장인물은 화면 옆으로 비껴서고, 그 나머지 화면을 채운 공간을 통해 그의 고뇌가 드리워진다. 막막한 하늘 아래 비껴 서있는 한윤서(이요원 분)의 모습에서 수사권은 없는 일개 인권증진위원회(이하 인권위) 조사관의 고뇌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주인공 한윤서, 그리고 본의 아니게 인권위로 좌천된 배홍태(최귀화 분)가 드리운 공간, 그들의 걸음걸이 하나하나가 그대로 그들을 표현해낸다.

노랑과 연두로 화사하게 칠해진 ㄷ자형의 피해자가 살던 연립, 그 화사한 공간 안에서 노조 간부였던 피해자 강윤오는 고립되고 감금되었으며, 죽음에 이르렀다. 화사한 세상과 그 세상의 배신으로 인해 어두운 공간 속에 갇힌 피해자의 절박함의 대비는 그렇게 색감을 통해 더욱더 대비되어 보여지는 식이다. 그렇게 드라마 속 공간 어느 한 곳 허투루 그리지 않고, 그 자체로 드라마 속 이야기의 일부분이 된다.

거기에 <달리는 조사관>만의 감각적인 데코레이션이 더해진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대화를 여기에 의존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듯, 끊임없이 이어지는 '카톡'과 '문자'의 대화들이 자막으로 화면을 채우며 극의 일부분이 된다.

그리고 그런 화면의 긴장감을 더해주는 건, 이미 <적도의 남자>에서 김용수 연출과 함께했던 박성진 음악감독의 OST이다. 자칫 미장센 위주의 극이 처질 수 있는 드라마를 때론 '아라비안나이트'의 OST 같은 이국적인 음색으로, 혹은 앞서 <손 the guest>에서 등장한 바 있던 '국악 버전'의 OST로 긴장감을 끌어올려 <달리는 조사관>의 분위기를 한껏 살려내며 극의 어엿한 주인공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달리라는데 아직 ‘슬로우 스타터’

OCN 새 수목 오리지널 <달리는 조사관>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여전한 장인정신이 듬뿍 담긴 '김용수 연출' 미장센의 묘미가 서사의 전개와 적절하게 맞물리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미지수다. 시공북스를 통해 출간된 송시우 작가의 장르 문학인 동명의 소설 <달리는 조사관>을 원작으로 한 작품인 만큼, 서사적 재미는 이미 보장된 상황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달리는 조사관'이라지만 '미장센'의 마력만큼 '기동성 있는 서사'의 매력을 제대로 살려냈다 보이지 않는다.

첫 회 시장의 성추행 사건으로 문을 연 드라마.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건 소지혜가 직접 인권위를 찾아와 고발한 성추행 사건이다. 노조 동료 이은율이 그녀의 연인이자 동료였던 강윤오의 장례식 과정에서 그녀를 성추행했다는 고발로 시작된 사건. 성추행 당했다는 소지혜와 결백을 주장하는 이은율의 진실게임으로 시작된 사건은 배홍태와 한윤서의 조사 과정을 통해 뜻밖의 '진실'을 드러내 보인다.

차기 노조 지부장으로 유력시되었던 강윤오가 재미로 올렸던 웹툰 게임. 하지만 그 자신을 조롱하는 웹툰에 그룹 회장이 '대노'하고 이에 사측은 그를 한직에 발령함은 물론, 그와 가족을 협박하며 퇴사를 종용한다. 그래도 그가 버티자 손해배상 청구 등 갖은 방법으로 그를 괴롭힌다. 결국 강윤오는 그런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고, 그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강윤오가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에서 한통속이었던 경찰을 믿을 수 없었던 동료와 연인 이은율과 소지혜는 자신들의 성추행 사건을 '조작'하여 인권위를 찾게 된 것.

OCN 새 수목 오리지널 <달리는 조사관>

성추행의 진실을 찾아가던 사건은 그 과정에서 한 사람의 말살된 인권을 발견하게 되고, 거짓 증언과 진실 사이에서, 그리고 공개와 비공개라는 회의 형식 사이에서 고민하던 인권위 사람들은 '보호받아야 할' 인권의 차원에서 소지혜와 이은율이 알리고자 한 진실의 장을 열어준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극적인 사건.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달리는 조사관>은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이야기를 풀어낸다. 미장센은 화려하고 서사는 흥미진진하지만, 어쩐지 그 모든 것들이 옥상옥인 양 서로 긴장감 있게 풀어내지지 않는 듯하다. 김용수 연출의 장르와 달려야 할 장르의 충돌인지, 아직은 연출의 진가가 출발이 늦은 건지 조금은 더 지켜보아야 할 지점이다.

화면은 충분히 이야기를 전하고 있지만, 그 화면 속의 인물들이 무르익지 않는다. <베이비시터>, <화이트 크리스마스>, <아이언맨> 등에서 지적된 바 있는 '영상 미학'은 충분조건이지만, 배우들이 연기 합이나 구성에서는 매우 ‘너그러운’ 연출이 이번에도 드라마의 발목을 잡지 않을까 노파심이 든다. 부디 서사와 미장센의 호흡을 제대로 맞춰 장르물의 새 장을 열 수 있기를, 그래서 김용수 연출을 오래오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기대로 희망을 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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