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방송통신위원회의 페이스북 과징금 처분은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과 관련해 “이용자 권익을 고려하지 않은 판결”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으로 인해 명확한 이용자 피해가 발생했지만 법원이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최경진 가천대 교수는 “행정법원이 이용자 관점을 무시한 채 법 해석을 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페이스북 판결로 본 바람직한 이용자보호제도 마련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 발제자로 참여한 최경진 가천대 법과대학 교수는 “법원은 국내 이용자 권리와 편익을 보호하는 관점에서 판결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전문가들 역시 ‘이용자 관점에서의 판결’을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2015년 페이스북은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가 KT 캐시서버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접속경로를 임의로 변경했다. KT가 페이스북에 ‘망 접속료를 지불하라’고 요구하자 페이스북이 접속경로를 변경한 것이다. 우회 접속으로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이용자들은 수일간 인터넷 접속에 어려움을 겪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3월 “국내 이용자들의 이익을 침해했다”며 페이스북에 과징금 3억9600만 원을 부과했다. 페이스북은 이에 불복하고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페이스북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으로 이용자 피해가 발생한 건 맞지만, 위법의 요소는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또 법원은 한국보다 인터넷 속도가 현저하게 느린 미국 등 해외 사례를 근거로 “이용자 이익 침해가 현저하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최경진 교수는 “페이스북의 접속경로는 이용자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면서 “페이스북이 인터넷 품질을 저해한 것을 넘어 이용자 편익을 저해했다. 법원도 이용자 관점에서 법조문을 해석해야 한다. 행정법원은 이용자 관점을 무시한 채 법 해석을 했다”고 지적했다.

최경진 교수는 “입법·사법·행정부가 국내외 이용자를 보호하는 집행력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국회는 외국 사업자에 대한 국내법 적용 근거를 확대해야 한다. 향후 정보통신망법에 역외적용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경진 교수는 “행정부는 이용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항에 대해 합리적인 기준을 설정하는 등 행정적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경진 교수는 주요 대안으로 ▲국제공조체계 강화 ▲역외적용 규정 집행력 강화 ▲국내외 사업자 규제 합리화 ▲자율규제 촉진 ▲상호주의 확대 검토 등을 제시했다.

▲최경진 가천대 교수 (사진=미디어스)

신민수 한양대 교수는 “이번 행정법원 판결의 가장 큰 문제는 이용자 보호에서 공백이 발생했다는 점”이라면서 “레거시 미디어에서 이용자는 수동적이었다. 하지만 페이스북·OTT 이용자는 능동적이다. 만약 (이번 페이스북 접속경로 변경 사건처럼) CP가 이용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사전에 고지를 해야 했다”고 밝혔다.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전문위원은 법원이 한국의 인터넷 특성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종관 전문위원은 “법원은 (한국보다 느린) 유럽, 미국 등 국가의 인터넷 속도를 기준으로 ‘이익 침해가 현저하지 않다’고 판결했다”면서 “한국 인터넷 속도를 고려했을 때 미국·유럽 기준은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 사건 당시 국내 인터넷 지연시간은 평균 75ms 수준이었다. 법원은 미국 인터넷 지연시간이 100ms를 넘어간다는 것을 근거로 ‘국제 기준을 봤을 때 인터넷이 느린 수준이 아니었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2017년 한국정보화진흥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인터넷 지연시간은 LTE 기준 36.35ms 수준이다. 페이스북 접속경로 변경 당시 인터넷 속도가 미국보다 빨랐던 건 맞지만, 한국 평균 기준으로는 명백한 이용자 권리 침해가 발생한 것이다. 이종관 전문위원은 “(판결에는) 개별 국가의 속성이나 특성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왼쪽부터 신민수 교수, 이종관 전문위원, 방효창 위원장 (사진=미디어스)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은 법원 판결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안정상 위원은 “(법원 판결은) 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 이용자는 접속 속도가 느려지는 것 자체를 피해로 생각한다”면서 “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공공의 이익 때문이다. (이번 판결은) 개인의 이익을 무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은 CP에게 인터넷 접속지연 책임을 묻는 건 과도하다고 주장했다. 박성호 사무총장은 “100% 완전무결 서비스는 없다. 서비스에는 흠결 있을 수 있다”면서 “(CP가) 조금 잘못했다고 형벌을 받는다면 사회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성호 사무총장은 “네트워크 접속경로는 복잡하다. (페이스북이 접속경로를 변경할 때 한국 이용자에게 피해가 가리라고)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방효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보통신위원장은 “페이스북이 접속경로 변경을 할 때 이용자 피해를 몰랐다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라면서 “페이스북은 접속경로를 변경할 때 이용자 피해를 예측했다. 또 페이스북이 접속경로를 바꿔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에 책임 역시 페이스북이 져야 한다”고 반박했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토론회 축사에서 “이용자 피해를 책임질 주체가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했다”면서 “방통위는 즉각 항소했다. 행정처분의 정당성을 충분히 소명할 예정이다. 또 이용자 이익을 침해하는 위법 행위에 대해서는 국내외 사업자를 구분하지 않고 동등하게 규제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페이스북 판결로 본 바람직한 이용자보호제도 마련을 위한 정책토론회 (사진=미디어스)

이번 <페이스북 판결로 본 바람직한 이용자보호제도 마련을 위한 정책토론회>는 변재일, 김성태, 박선숙, 김경진 의원 주최로 열렸다. 최경진 가천대 교수가 발제를, 이성엽 고려대 교수가 좌장을 맡았다. 토론자로는 신민수 한양대 교수·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전문위원·윤상필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대외협력실장·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방효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보통신위원장·안정상 더불어민주당 수석전문위원·김남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경쟁정책과장·반상권 방송통신위원회 이용자정책총괄과장 등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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