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정권에 있어 갈수록 난감한 상황이 되고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의 5촌 조카가 구속되고 배우자인 정경심 교수의 표창장 위조 의혹에 대한 공소장이 공개되면서다. 검찰의 카드가 일부나마 드러난 것이다. 검찰의 칼이 도달하는 것이 어디가 될지에 정권의 운명이 달린 모양새다.

여당은 검찰 개혁에서 성과를 내면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강행에 대한 반발 여론도 수그러들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이쯤되니 오히려 ‘출구 전략’에 관심이 쏠리는 분위기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무엇을 근거로 어느 시점에 직을 던지게 될지가 관심사가 됐다는 얘기다.

조국 법무부 장관은 17일 국회를 예방했는데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그리고 대안정치연대의 대표들과 만나는 것에만 성공했다. 이 자리에서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검찰 수사에 따라 자진사퇴를 요구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대안정치연대의 대표를 맡고 있는 유성엽 의원은 아예 대놓고 자진사퇴가 국민의 뜻이라고 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어떤 기대감을 강조하는 것보다는 경중과 선후를 가려 완급 조절 등을 잘 해야 한다는 충고에 무게를 실었다.

이해찬 대표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조국 장관의 법무부가 추진하는 일들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 것은 아닐까? 조국 법무부 장관이 가족들이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법무부는 훈령 개정을 통해 피의사실의 공개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는 방안을 추진하려 한다. 이와 관련한 당정협의가 18일 진행된다. 조국 법무부 장관 본인도 ‘검사들과의 대화’를 추진하고 있다. 누가 봐도 오얏나무 아래서 갓 끈을 고쳐 매는 격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피의사실 공표 관행에 대한 개선과 같은 것들은 검찰개혁의 주요 과제 중 하나이다. 하지만 조국 법무부 장관의 존재 때문에 쉽게 추진할 수 없는 일이 돼버렸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오히려 검찰개혁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의 존재가 정권에 다른 정치적 이득을 안기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여론조사 결과로만 봐도 그렇다. 실제 총선에서는 여론조사 결과로 드러나는 것보다 더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지역구 여론에 예민한 정치인들이 언론을 통해 흘리는 말들을 보면 그렇다. 여론의 수면 아래 형성된 흐름이 ‘수치’를 압도하는 일이 정치에서는 종종 있다.

이러니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자진사퇴 시나리오’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배우자의 범죄 혐의가 구체적으로 적시된 공소장이 공개된 상황에서 사퇴는 당장 이뤄져도 이상하지 않다. 이미 조선일보 등은 검찰이 조국 법무부 장관의 공직자윤리법 위반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5촌 조카 조모씨가 설립한 펀드운용사의 실소유주는 정경심 교수이고 펀드 투자 내용 등을 조국 법무부 장관과 공유한 단서가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조국 법무부 장관의 해명과는 달리 직접투자를 한 걸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본인이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는 시점에서 장관직 사퇴가 이뤄졌을 것이다. 본인이 직접 검찰 조사를 받게 되는 경우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물론 ‘장난’은 5촌 조카 조모씨가 혼자 친 것이고 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는 사기를 당한 피해자일 가능성도 있다. 실제 여당 주요 인사들은 이 경우를 전제로 해서 언론을 통해 자기 견해를 말하고 있다. 검찰이 개혁에 반대하느라 ‘오버’를 하고 있고 결국 재판을 통해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주장이 여론의 호응을 얻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조국 법무부 장관도 더 버틸 수 있다.

그런데 그렇다해도 직을 유지하는 게 집권세력에 정치적 부담이 되고 있고 총선이 가까워지는 상황에서 정상적(?)으로 장관직 수행을 계속하는 것은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조국 법무부 장관의 거취가 국회의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 처리 이후에 결정될 수 있다는 전망도 가능하다. 검찰개혁의 성과를 냈으니 이제 물러나도 된다는 명분이 서기 때문이다.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이지만 조국 법무부 장관이 이 시기에 직을 던지고 총선 출마를 강행할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는 사람도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17일 오전 국회를 찾아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를 예방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떤 경우든 이 사태가 총선을 준비해야 할 여당에 미친 파장은 적지 않다. 당장 ‘현역 물갈이’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게 그렇다. 총선 출마 가능성이 점쳐졌던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불출마 의사를 밝힌 것은 신호탄이다. 중앙일보는 유은혜, 김현미, 진영, 박영선 장관도 불출마를 결정한 상황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이런 상황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된다. 첫째는 사태가 이렇게 된 마당에 정치인 출신 장관들의 출마로 인한 인사청문회 정국을 추가로 감당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별다른 총선용 호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선 대규모의 ‘현역 물갈이’를 통한 이미지 쇄신이라도 보여주지 않을 수 없다는 거다.

대규모의 ‘현역 물갈이’에는 반드시 내홍이 뒤따른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받은 문자 메시지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것은 이의 일단을 보여주는 예이다. 이 메시지는 “분노 조절이 안 되는 사람” 등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자질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반발이 이 수준에서 머무른다면 다행이다. 집권 세력의 입장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총선을 경과하면서 대통령과 스스로를 차별화 하려는 세력이 실체를 갖게 되는 경우다.

박근혜 정권 몰락의 시초는 권력이 정책적 이견을 드러낸 여당 원내대표를 찍어 누르는 사태가 벌어지고 대통령 임기 종반기를 뒷받침할 정치적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진박 감별사’들이 등장한 것이었다. 이 정권이 같은 선택을 하리라 보진 않는다. 하지만 이런 상황으로부터 누구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또한 권력의 생리이다.

권력 내부의 이견이 생산적으로 소화되면 모두에게 이득인 결과가 될 것이다. 그런데 예를 들어 자타칭 비주류에 속하는 진보정당 출신인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조국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 문제를 언급하며 연일 정시 확대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정시 확대 찬반을 절대화 해서 판단할 필요는 없겠지만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이미 지금 시점에서 논의의 필요성을 부정한 바 있다.

혹시 이 광경은 개혁적 정권이 스스로 명분을 잃은 끝에 통치권력 내부의 ‘우클릭’ 압력에 무릎을 꿇고 마는 전형적 시나리오를 보여주는 게 아닌가? 우리는 이를 이명박 정권의 탄생 과정에서 이미 한 번 목도한 바 있다. 물론 보수정치는 반사이익을 볼 처지가 못 되니 정권이 바뀔 걱정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권재창출이 된다고 해도 새롭게 등장할 정권의 성격을 지금 정권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을까?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은 미국이나 무색무취의 코미디언에게 권력을 맡긴 우크라이나를 먼 산 불구경 하듯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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