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경기와 100경기. 2000년대 한국 축구를 책임진 두 선수가 기록한 A매치 출전 기록입니다. 꾸준함이 없다면 해내기 힘든 이 기록들을 두 선수는 가뿐하게 해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3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출전해 중요한 순간마다 값어치 있는 활약을 펼치며 한국 축구의 위상을 밝히는 데 큰 역할을 해냈습니다. 한국 축구의 유럽 무대 진출에 교두보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든든함이 느껴졌던 두 선수, 박지성과 이영표는 그렇게 한국 축구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아가며 꾸준하게 성장하고 발전해 왔습니다.

그들이 어느덧 세월이 흘러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는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비록 그들이 바랐던 '아시아 정상 제패 후 은퇴'라는 꿈을 이루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에 준하는 결과로 환한 미소를 머금으며 멋지게 마무리했습니다. 이들의 공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기는 하지만 이들은 "점점 성장하는 후배들에 큰 기대를 건다"라는 말을 남기면서 밝은 미래를 예측하고 기대했습니다. 이들의 말처럼 한국 축구는 다양한 가능성과 희망을 남기며 꾸준하게 성장할 수 있는 힘을 보여주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이는 박지성과 이영표 두 선수가 뿌린 씨앗 덕분일지도 모릅니다. FIFA(국제축구연맹) 역시 아시안컵 10대 뉴스 가운데 하나로 두 선수의 대표팀 은퇴를 선정해 큰 관심을 갖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이들은 한국 축구의 진짜 아이콘이요, 영웅이었습니다.

▲ 아시안컵 3-4위전이 끝난 뒤 후배들로부터 헹가래를 받고 있는 이영표-박지성 (사진:대한축구협회)
박지성과 이영표 덕분에 한국 축구 10년은 행복했습니다. 이전에 어느 선배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것을 훌륭하게 해내면서 축구팬들을 즐겁게 하고, 한국 축구 발전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강력한 'H-H 라인' 황선홍-홍명보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줬던 '태극 듀오' 박지성과 이영표가 함께 했던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며, 대표팀과 클럽 축구를 통틀어 가장 행복하고 흐뭇했던 그 순간들을 회상해 봅니다.


1) 2002년 한일월드컵 포르투갈전

두 선수 가운데 먼저 A매치에 데뷔한 선수는 1999년 코리아컵 멕시코전에 출장했던 이영표였습니다. 박지성은 이듬해 4월, 라오스와의 아시안컵 예선이 첫 데뷔전이었지요. 하지만 둘은 중요한 순간마다 함께 호흡을 맞췄습니다. 2000년에 열린 시드니 올림픽, 레바논 아시안컵이 바로 첫 무대였습니다. 비록 원하는 결과를 내지 못하고 한동안 침체기에 빠질 뻔 했던 한국 축구였지만 두 선수는 상당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남기며 주목받았습니다. 그리고 거스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고, 힘겨운 경쟁에서 이긴 끝에 나란히 2002년 한일월드컵 최종엔트리에 발탁돼 활약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은 두 선수의 '스타 탄생'을 제대로 알린 무대였습니다. 박지성은 7경기 전 경기를 뛰며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빼어난 멀티플레이 능력으로 선전을 펼쳤고, 이영표는 부상을 딛고 3차전 포르투갈전서부터 측면을 지배하며 맹활약했습니다. 특히 둘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나며 존재감을 각인시킨 경기는 바로 사상 첫 월드컵 16강을 확정지은 경기였던 포르투갈전이었습니다.

박지성, 이영표는 그라운드 곳곳을 누비며 상대 공격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날카로운 공격을 펼치는 데 제 몫을 다 했습니다. 이들의 몸을 날리는 플레이는 상대의 퇴장을 잇달아 유도시키는 계기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후반 25분, 이영표가 왼쪽 측면에서 올린 크로스를 박지성이 재치 있게 볼 컨트롤을 한 뒤 논스톱으로 슈팅을 해 결승 선제골로 연결시키는 명장면을 만들어냅니다. 이 골 하나로 한국은 월드컵 16강에 올랐고, 골을 넣은 박지성과 어시스트를 한 이영표는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척 하면 딱 들어맞는' 태극 듀오의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이후에도 이들은 토너먼트 전 경기 풀타임을 소화하며 한국 축구의 신화 창조에 가장 큰 공을 세웠습니다. 당시 어린 나이, 일천한 경험이라는 약점 속에서도 당당히 맞서고 덤비며 한국 축구의 힘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준 이들이었습니다. 이런 이들에게 히딩크 감독은 한국 감독 퇴임 후 자리한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 감독직을 가면서 "함께 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며 유럽 진출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는 한국 축구가 유럽 무대에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2) 2004-05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4강전

이영표는 데뷔 첫 해부터 꾸준한 활약으로 붙박이 측면 수비 자원으로 자리매김하며 선전했습니다. 반면 박지성은 다소 어려운 첫 시즌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박지성 역시 성실함, 꾸준함을 바탕으로 점차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두 시즌 만에 역시 주전 자리를 꿰차는 데 성공했습니다. '태극 듀오'의 명성이 서서히 자리잡아가며 네덜란드 무대를 휩쓸던 시점에서 둘은 또 하나의 큰 무대에서 '큰 일'을 저지르고 맙니다. 바로 2004-05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AC 밀란 2차전 홈경기가 그 경기였습니다.

모처럼 챔피언스리그에서 승승장구를 거듭하며 4강까지 오른 에인트호벤, 그리고 박지성과 이영표는 1차전 AC 밀란과의 원정 경기에서 0-2로 패해 2차전에서 어느 정도 부담을 안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에인트호벤은 초반부터 AC 밀란을 거세게 몰아붙였고, 그 선봉장 역할을 박지성과 이영표가 훌륭하게 소화해냈습니다. 박지성은 전반 9분 만에 벼락같은 골로 에인트호벤 홈팬들을 열광시켰고, 후반 20분에는 이영표가 당대 최고의 윙백 카푸를 제치고 날카롭게 올린 크로스로 코쿠의 두 번째 골을 어시스트하며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로 몰고 갔습니다.

안타깝게도 후반 42분, 1골을 내주면서 에인트호벤은 원정 다득점 원칙으로 17년 만의 결승 진출이 좌절되는 순간을 맞이했습니다만, 그래도 박지성과 이영표 덕분에 에인트호벤은 한편의 드라마를 쓰며 그해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유럽 축구계는 일제히 박지성과 이영표에 더욱 주목했고, 그 덕분인지 둘은 나란히 다음 시즌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로 이적해 각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토트넘 홋스퍼라는 '큰 팀'으로 자리를 옮기는 데 성공했습니다. 히딩크 감독과의 작별이 아쉬웠지만 박지성과 이영표의 4강전 맹활약은 한국 축구 나아가 아시아 축구의 강한 자부심을 갖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3) 2005-06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맞대결

그렇게 둘이 나란히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해 입지를 다져 나가며 한국인 1-2호 프리미어리거에 걸맞은 활약을 펼쳐 나갔습니다. 그리고 2006년 4월 17일, 둘은 제대로 된 맞대결을 펼치며 경기를 지켜보는 한국 축구팬들을 흥분하게 했습니다. 어느 팀을 응원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을 무렵이던 전반 36분, 이영표가 잠시 주춤한 사이를 틈타 볼을 빼앗은 박지성이 전방에 있던 웨인 루니에게 패스했고, 루니는 이를 골로 연결시키며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맨유 선수들은 골을 넣었다는 기쁨에 젖어있었지만 박지성은 이영표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손을 잠시 맞잡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사진은 한동안 상당한 화제를 불러 일으켰고, 진한 감동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그라운드에서 두 선수의 희비는 분명히 엇갈렸습니다. 하지만 두 선수의 우정이 여러 가지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묘한 여운을 남긴 그런 흐뭇한 순간이었습니다. 덩달아 축구 종가에서 서로 다른 유니폼을 입고 뛰는 한국인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 남아공월드컵 조별예선 2차전 아르헨티나전 전반전이 끝난 뒤 이야기를 나누는 이영표-박지성. 든든한 두 맏형 덕에 '허정무호' 축구대표팀은 월드컵 16강에 오를 수 있었다. 어떤 상황이든지 경기 중에 늘 이렇게 진지하고 당당했던 두 선수의 모습이 벌써부터 그립다. (사진-김지한)

4) 남아공월드컵 원정 16강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박지성과 이영표는 한국 축구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스타로 완전히 자리매김했습니다. 특히 대표팀에서 부상, 팀 사정 등을 이유로 뛰지 않을 때마다 언론에서는 '이들의 공백이 컸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다시 돌아와서는 숨통을 트이게 만들어 놓은 선수들 또한 바로 이 두 선수였습니다. 독일월드컵 원정 첫 승의 위업을 달성하며 또 하나의 큰 일을 해낸 두 선수는 다음 월드컵인 남아공월드컵 예선에서도 최종예선 무패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본선에 '진출시켰습니다'. 특히 이영표는 2008년 11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월드컵 최종예선전을 통해 A매치 100경기에 출전하며 센추리클럽 가입이라는 개인적인 쾌거도 이뤘습니다.

사실상 마지막 월드컵 본선이었던 남아공월드컵에서 박지성과 이영표는 솔선수범하는 플레이로 역시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리스와의 예선 첫 경기에서는 1-0으로 앞선 후반 7분, 박지성의 재치 있는 개인기로 쐐기골을 쏘아 올리며 3개 월드컵 대회 연속 골이라는 위업 달성과 함께 첫 승을 신고했습니다. 그리고 3차전 나이지리아전에서 두 선수 모두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끈끈한 플레이로 2-2 무승부를 이끌어내며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이라는 쾌거를 또 하나 이뤄냈습니다. 비록 아쉽게 패한 16강 우루과이전에서도 두 선수는 비가 오는 악조건 속에서도 이를 악무는 플레이로 한국 축구의 힘을 보여주며 강한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5) '유종의 미' 아시안컵, 행복한 은퇴

그리고 대표팀으로서 마지막 무대에 나선 박지성, 이영표는 '반세기 만의 아시아 정상'이라는 미션을 걸고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아쉽게도 4강 한일전에서 승부차기 접전 끝에 패하며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이들은 눈물을 흘리거나 고개를 떨구지 않았습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박지성은 부상으로 마지막 경기 3-4위전에 나서지 못했지만 이영표는 풀타임을 뛰었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장기인 '헛다리 짚기'를 선보이며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줬습니다. 휘슬이 울리고 3-2 한국의 승리로 3위를 확정지으며 '1위 같은 3위'라는 말을 듣고 기분 좋게 마무리를 했습니다. 후배, 동료 선수들은 곧바로 이영표, 박지성을 그라운드 가운데 끌고 가며 '감동의 헹가래'를 펼쳤고, 그것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이영표, 박지성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습니다. 1위는 아니어도 마지막을 승리로 장식했기에 이들은 흐뭇한 마음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며 대표 선수 생활을 마무리 짓고, 선수 생활로서도 내리막길을 내려갈 준비를 갖추게 됐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이들이 함께 하면 두려운 것은 없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만큼 든든했고, 그래서 패배라는 단어도 연상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성실함과 꾸준함으로 무장해 '투혼의 한국 축구' 이미지에 부합하는 모습으로 한국 축구의 대표 주자, 그리고 세계에서도 주목하는 선수로 떠오른 박지성과 이영표. 그렇게 세계 앞에서도 당당하고, 많은 축구팬, 아니 국민들을 흐뭇하게 했기에 이들은 아시안컵 3-4위전에 관중들이 펼친 플래카드 문구처럼 충분히 '영원히 사랑한다'라는 말을 들을 자격이 있습니다. 함께 있어 더욱 유쾌하고 든든했던 '태극 듀오' 박지성과 이영표의 활약상들을 우리는 정말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저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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