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조국 법무부 후보자 관련 사태는 말 그대로 혼란의 도가니가 된 것 같다. 인사청문회가 사실상 무산되고, 그러자 장관 후보자가 국회에서 제기된 의혹에 대한 해명을 10시간 동안 하고, 그걸 반박한다고 야당이 또 같은 방식의 설명회를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해명회’ 다음 날 검찰은 후보자 배우자를 겨냥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그럼에도 청와대의 임명강행 의지는 매우 분명해 보인다. 7일께 조국 후보자를 임명하고 10일 국무회의에 참석시킬 예정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한쪽에선 여당이 정당정치를 붕괴시켰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선 보수야당이 아무런 전략도 없이 인사청문회를 거부하면서 이 난리가 났다고 한다. 서로의 탓을 하는 모양새다. 오늘날 ‘양비론’을 말하는 것은 ‘중죄’인 것처럼 이야기들을 하지만 이쯤되면 ‘쌍방과실’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선 양보할 수 없는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정치-언론-수사기관이 하나가 된 사상초유의 공격을 받고 있는데 해명 기회조차 가질 수 없는 상황을 납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인사청문회 국면에서 해명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한 채 후보자가 낙마하는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방어태세는 ‘배수의 진’에 가까운, 극단에 있었다는 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여당이 사상 초유의 방법을 동원하는 상황에선 자유한국당도 보고만 있기는 어렵다. 여당이 조국 후보자의 해명에 국회를 내준 것을 비판하면서 자기들도 같은 방식을 활용해 반론에 나서고, 이를 조국 후보자의 해명과 동일한 방식으로 생중계 해줄 것을 방송사에 요청하는 모순된 행태는 이런 때문이다. 하지만 애초에 자유한국당이 국회의 권리이자 의무인 국무위원 후보자에 대한 인사검증 수단인 인사청문회를 외면하지 않았다면 일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자유한국당은 인사청문회 무산에 대해서도 여당의 책임을 주장하고 있다. 조국 후보자의 무제한 해명을 위한 기자간담회를 강행한 것은 애초에 인사청문회를 진행할 의지가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자유한국당이 무리한 일정을 주장하고, 조국 후보자의 가족을 포함한 과도한 숫자의 증인을 신청하는 등 수용 불가능한 요구를 반복 주장했다는 점에서 인사청문회 무산의 책임은 보수야당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양쪽 모두가 부정하지 않는 것은 인사청문회가 정상적으로 진행됐더라도 조국 후보자 임명 강행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뤄졌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면 남는 문제는 조국 후보자 임명에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서로 어떤 모양새를 갖춰 자기 주장을 할 것이냐 정도였던 셈이다. 이 구도에서 양 측은 서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강경한 태도를 취했을 뿐이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3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조국 후보자의 거짓과 선동, 대국민 고발 언론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 이런 선택이 이후의 정치적 국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주판알을 튕겨보는 것만 남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양쪽 모두 상처 투성이 속에서도 일정 정도의 이득은 남긴 것 같다. 여당은 ‘개혁적인 법부무 장관 후보자’라는 이미지를 지켜냈다. 이것은 개혁의 비전을 제대로 내놓고 국민에 대한 설득을 시도한 결과라기보다는 기득권 세력인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 검찰 모두로부터 조국 후보자가 공격당하는 상황이 조성된 것에 따른 반사이익에 가깝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노회찬 전 의원 등의 사례를 언급하며 “못된 놈들이 뭉쳐 살해했다”고 말한 것은 이런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기득권에 맞서 개혁을 추진하는 정부’와 ‘기득권 연합’ 사이에 선명한 전선이 그어진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장외집회 과정에서 “광주일고 정권” 등의 발언을 한 것도 이런 효과를 배가시켰다. 박지원 무소속 의원 등은 이 발언 이후 특히 호남지역 유권자들 여론의 긍정적 흐름이 늘어났다고 주장한다.

자유한국당 입장에선 보수언론과 함께 조국 후보자 관련 의혹을 공세적으로 제기하면서 ‘공정성’이나 ‘기회의 평등’ 등을 요구하는 젊은 세대 일부가 정권에 대한 반감을 키우는 계기를 또 하나 만들었다는 점에서 일부 성과를 거뒀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세대의 유권자층에서 보수야당 지지세가 드라마틱하게 늘어날 것이라고 보긴 아직 어렵다. 현 정권에 반감을 가진다는 것과 자유한국당을 지지하게 되는 것은 다른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후 보수통합 등 정계개편 과정에서 반사이익을 거둘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을 조금이라도 얻게 된 것은 보수야당 입장에선 다행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 상황이 원내 중심의 정당정치를 붕괴시킨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그렇다기보다는 수단이 극단적이었을 뿐 통상적인 여의도 정치의 연장선에서 이뤄진 일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어쨌든 정당정치의 본질은 유권자를 정당의 주의 주장을 통해 어떻게 정치적으로 조직할 것이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경우는 정당정치냐 아니냐의 문제라기 보다는 ‘어떤 정당이냐’, 또는 ‘어떤 정치냐’의 문제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앞서 보았듯 여당과 보수야당은 조국 후보자가 상징하는 개혁에 대한 찬반 구도로 유권자를 조직한 게 아니다. 상대의 허물을 지적하는 것으로 자기정당성을 획득하려 들었을 뿐이다. 누군가는 ‘진영논리’를 말하지만 이런 정치를 한 마디로 말하면 ‘달면 삼키고 쓰면 뱉겠다’는 것이다. 여의도 정치의 이런 태도는 고질적이다. 이런 점에서 ’개혁’을 주장해 온 집권세력이 여러 의혹에도 불구하고 조국 후보자 임명을 꼭 강행해야겠다면 적어도 ‘개혁의제’로 국민을 설득하는 방식을 취해주기를 마지막으로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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