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성 - 속편의 악습을 뒤따른 허망함이란... ★★☆

속편의 법칙을 따라 등장인물도 많아졌고 판도 키웠지만 어느 것 하나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코미디에는 억지와 과장을 덧씌웠고, 드라마는 이 코미디와 전혀 어울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극의 감정선은 흡사 조울증에 걸린 환자마냥 혼자서 제멋대로 널뛰기를 합니다. (그나마 황정민의 등장이 웃겼고, 전편의 욕설 대결을 연상시키는 장면은 시쳇말로 안습이었습니다) 등장인물이 많아진 만큼 산만한 것도 거슬리지만 더 큰 문제는 굉장히 소모적인 캐릭터가 많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선우선이 연기한 갑순이 그러한데, 거의 뭐 거시기의 별책부록으로 만들어진 허무한 캐릭터입니다.

다소 정치적인 의미에서 <평양성>을 평가할 수도 있겠으나 이것이 극에 제대로 녹아들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예를 들어 거시기는 이를테면 국가 간의 다툼에 휘말려 비극적인 삶을 산 무력한 개인을 상징하려던 캐릭터로 보이지만, 영화에서는 철저하게 개인의 행복과 안녕만을 추구하는 가벼운 변절자로 비춰질 뿐입니다. 다시 말해 캐릭터에게 응당 부여했어야 할 진정성보다는 이 또한 코미디로 소모하는 선에 가까워 빛이 바랬습니다. 전작보다 욕설의 수위가 낮아진 점과 마지막의 전투장면으로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겠지만, 몇 번 웃지를 못했으니 그마저도 무의미했습니다.

그린 호넷 - 자, 이제 미쉘 공드리의 영화를 보여주세요 ★★☆

아니나 다를까 초반에는 이런 기대를 제법 충족시켜주더군요. 원작을 전혀 보지 못한 제게 <그린 호넷>의 뼈대는 참신하고 독특했습니다. 현실적인 발상에 기반을 둔 이야기로는 <킥애스>보다 <그린 호넷>이 한술 더 뜨거든요. 브루스 웨인이 아니라 이 영화의 브릿 리드야말로 '돈X랄'을 합니다. 언론사 소유주의 망나니 아들이 아버지의 죽음으로 정신을 차리고 정의의 사도가 되는 줄 알았는데 개뿔! 세스 로건은 "그 따위 이상적인 존재감은 개나 줘버려!"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이 영화의 그린 호넷은 그저 똘끼로 충만하고 할 일이 없어서 재미삼아 거리를 휘젓는 미친 존재에 가깝습니다.

주요 캐릭터가 컴플렉스 덩어리로 나오는 건 또 어떻고요. 하인이었다가 쫄따구로 기용된 케이토는 못하는 게 없는 만능이지만 정작 그린 호넷은 돈이 많은 것만 빼면 쥐뿔 내세울 게 없습니다. 멋지게 폼을 잡고 싶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라 괜한 객기에 대들었다가 신나게 얻어터지는 게 고작입니다. 악당인 처드노프스키는 핏덩이 같은 놈한테 한소리 들었다고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무섭게 보일까 노심초사하고... 그런 의미에서 <그린 호넷>은 일련의 히어로 무비를 작정하고 패러디하려는 세스 로건의 야심이 담긴 영화입니다. 반대로 보면 오롯이 세스 로건의 영화이기도 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그린 호넷>에서 미쉘 공드리의 존재감은 거의 느껴지질 않습니다. 이건 누가 만들었어도 이 정도의 완성도로 나올 수 있는 영화입니다. 세스 로건이 참여한 각본도 참신할지언정 극장용으로 내세울 수준이라곤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결정적으로 재미가 없어요. 그냥 티비 방송용이라면 모를까 돈을 주고 극장에서 볼 영화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재화를 투자했다면 그만한 가치를 돌려받아야 한다는 물질적인 논리가 <그린 호넷>으로는 도통 성립이 안 됩니다. 캐릭터에게 아무런 매력도, 공감대도 형성되질 않으니 극 중에서 펼쳐지는 난장판은 강 건너 불구경하는 선에서 그칠 따름입니다. 아울러 카메론 디아즈의 출연은 이런 영화에 1억 2천만 불이 들었다는 것만큼이나 비극적입니다...

조선명탐정 - 좋든 싫든 한국형 셜록 홈즈의 탄생 ★★★☆

<조선명탐정>에서의 김명민은 달랐습니다. 예의 진지함과 무게감을 내려놓은 채 촐싹거리고 방정맞은 캐릭터를 연기한 것이 적잖이 신선하더군요. 180도 달라진 면에서 어색함이 없진 않지만 전작에 비하면 한결 호감이 갔습니다. 오달수야 뭐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배우죠. <조선명탐정>에서는 김명민과 투톱을 맡았다고 해도 무방할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오달수가 있었기에 김명민의 연기도 살아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죠. 이 둘에 더해진 한지민도 예상 외로 연기를 곧잘 하더군요. 개봉 전에 왜 그렇게 노출 의상을 입었는지 영화를 보면서 이해했습니다.

김탁환의 소설 <열녀문의 비밀>을 모티브로 한 <조선명탐정>은 장,단점이 <셜록 홈즈>와 쏙 닮았습니다. 장점은 앞서 말한 김명민과 오달수의 효과적인 조합이 핵심입니다. 시종일관 유쾌하고 활기 넘치는 이들의 캐릭터와 연기가 관객의 흥미를 유발하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촬영에도 공을 들여 화면에 에너지가 가득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동시에 단점이기도 합니다. <셜록 홈즈>가 도처에 깔린 코난 도일의 팬으로부터 욕을 먹은 건 셜록 홈즈를 탐정이 아닌 싸움꾼으로 그렸기 때문입니다. 즉, 가이 리치의 영화는 추리물보다는 액션 활극에 가까웠죠. <조선명탐정> 또한 정확히 그렇습니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허무맹랑하겠지만 탐정이라는 관직을 만든 것은 영화적 상상력으로 허용 가능한 범위입니다. 하지만 코미디+액션이 추리를 보조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으면서 주객이 전도된 것은 역시 아쉽습니다. 유머를 더한 액션 활극으로 봤을 때의 연출은 나름 성공적이나 본분에 충실하지 못해 약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조선명탐정>은 주인공이 사건을 파헤칠수록 실마리가 풀리지 않고 오히려 실타래가 얽히고 있습니다. 상당부분을 빠른 호흡으로 주인공의 독백에 실어 전달하려다 보니 본질 이상으로 사건이 복잡하게 보여 추리물로는 낙제점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이 부분을 보완한다면 <조선명탐정>은 기꺼이 속편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공납비리와 천주교 탄압을 은근슬쩍 한데 엮어놓은 각본의 솜씨도 괜찮고, 무엇보다도 이 한 편으로 끝내기에는 김명민과 오달수의 조합이 아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