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정부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 종료를 두고 미국이 '강한 우려와 실망'을 여러 차례 표출한 데 대해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이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를 사실상 초치했다.

미국이 지소미아 종료에 대한 압박과 함께 독도방어훈련까지 문제를 삼고 나서자 우리정부가 항의한 것인데, 이에 일부 보수언론은 한국 정부의 외교를 비판하고 나섰다. 정부가 한-미 동맹 간 신뢰를 훼손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지적으로, 지소미아 종료의 책임이 일본이 아닌 한국에 있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28일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해리 주한 미 대사를 불러 "미국이 실망과 우려의 메시지를 공개적·반복적으로 내는 것이 한·미 관계와 동맹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공개적 메시지 발신을 자제해 달라"고 했다. 미국이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반복적으로 비판하고, 독도방어훈련까지 '한·일 갈등 해결에 바람직하지 않다'며 비판하고 나서자 정부가 사실상 항의의 뜻을 미국 측에 밝힌 것이다.

조세영 외교부 제1차관(왼쪽)과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 (사진=연합뉴스TV)

이에 29일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일부 보수언론은 정부의 외교적 태도를 비판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 <독도 훈련에 미국 사상 첫 이의 제기, 일본 좋은 일만 벌어져>에서 "한·일 갈등에 중립적 입장을 지키던 미국은 지소미아 파기 이후 사실상 일본 편을 들며 한국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면서 "미국이 독도 훈련에 이의를 제기한 것은 외교 참사다. 일본의 '독도 분쟁화'가 성공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일본의 '독도 분쟁화' 전략이 한국 정부의 외교실패에 의해 '성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 "지소미아 파기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관계자는 어제 '지소미아 종료를 계기로 한·미 동맹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황당한 소리를 했다. 이들이 곧 반미 정서를 부추길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며 "우리 안보의 버팀목인 한·미 동맹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경제가 입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조선일보는 <기업들 "한·일 갈등 불안한데, 한·미 관계까지 나빠지니…">에서 "한·미 관계까지 이렇게 악화되면 더는 기대할 곳이 없는 것 아니냐"는 재계관계의 말을 인용, 국내기업들의 외교적 해결 기대감이 꺾였다고 분석하고, 워싱턴 특파원 보도를 통해 지소미아 종료 이후 미국이 한국에 등을 돌렸다며 "한국이 지소미아 파기로 미국을 일본 편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일본 NHK 보도를 인용해 지소미아 종료에 대한 비판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집중하기도 했다. NHK는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렸던 22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에서 '연장 4, 종료 3'의 의견을 도출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회의에서 종료로 결정이 났다고 27일 보도했다. 이에 조선일보는 "이는 NSC에서 종료를 결정하고 문 대통령이 이를 승인했다는 청와대 설명과는 다르다"고 비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조선일보에 "공개할 수는 없지만 NHK의 보도는 사실과 완전히 다르고 소설에 가깝다"고 했다.

조선일보 29일자 사설 <독도 훈련에 美 사상 첫 이의 제기, 日 좋은 일만 벌어져>. 칼럼 35면.

중앙일보는 사설 <미 대사 불러 지소미아 논평에 항의, 과연 옳은 대응인가>에서 "한·일 갈등의 전선이 한·미 갈등으로 급격히 확대되는 모양새"라며 "이례적인 항의 조치가 한·미 간의 견해 차이를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게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이어 중앙일보는 "한·미 동맹에 파열음을 일으키고 동맹간의 신뢰를 훼손함으로써 '안보 외톨이'를 자처하는 조치가 더이상 있어서는 안된다"면서 "한국이 미국의 만류를 뿌리치고 지소미아를 깼기 때문"에 독도방어훈련에까지 미국이 지적하고 나선 것이라고 한국 정부를 탓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한국 사법부의 일제 강제징용 판결에 따른 일본 정부의 화이트리스트 배제에서 비롯된 것임을 고려했을 때, 지소미아 종료에 대한 미국의 과도한 한국정부 압박은 동맹국의 자세가 아니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독도방어훈련에 대해서까지 '비생산적'이라며 한국이 자국 영토를 지키기 위해 정례적으로 실시하는 군사훈련을 비판하고 나선 것은 부당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경향신문은 29일 사설 <미국의 과도한 지소미아 압박, 동맹국 자세 아니다>에서 미국의 지소미아 종료에 대한 우려는 이해하지만 사태를 초래한 일본의 행위는 그대로 둔 채 한국정부에만 지소미아 복원을 요구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비판했다. 지소미아 종료로 인도·태평양 전략의 한 축인 한-미-일 안보협력이 틀어지고, 한국이 중국과 가까워질까 우려하는 미국의 입장은 이해하나 해결방식이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또 경향신문은 "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미국이 한국군의 독도훈련을 비판한 점"이라며 "독도는 명백한 한국의 영토이다. 아무리 동맹국이라고 해도 주권국가가 자국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정례적으로 실시하는 군사훈련에까지 간섭하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향신문은 미국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강행에도 중립적 입장을 유지하는만큼 한국 정부에 대해 지소미아 복원 등을 요구해서는 안된다며 "미국이 태도 변화를 요구할 대상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겨레는 사설 <'지소미아 번복' 압박하는 미국, 일본 편드는 건가>에서 "지소미아 종료를 불러온 일본의 부당한 경제보복 조처에는 눈감은 채 한국만 압박하는 듯한 미국의 태도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며 "사태의 근본 원인이 된 일본의 부당한 보복조처에 대해서는 여전히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독도방어훈련을 문제 삼은 미국 정부 관계자 발언에 대해 "외교 관계에서 지켜야 할 선을 건드는 과도한 발언일 뿐만 아니라 주권국가에 대한 부당한 간섭의 소지마저 없지 않다"며 "그동안 독도훈련을 문제 삼지 않다가 한-일 갈등 국면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미국이 한국은 안중에 없고 일본만 챙긴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 서울신문도 각각 사설 <'지소미아'만 때리는 미… 당당한 동맹 외교로 이해시켜야>, <지소미아 연장 압박하는 미국, 한일 동시 중재해야>에서 사태의 원인은 일본에 있음을 지적하며 사태를 방관하다 지소미아 종료 후 한국정부를 압박하는 미국 정부를 비판했다.

한편,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은 28일(현지시간) 최근 한일 갈등 상황과 관련해 "(한일)양측이 이에 관여된 데 대해 매우 실망했고 여전히 실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고위 당국자가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 이후 한일갈등 국면에서 일본에 대해서도 '실망했다'고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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