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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쳐' 잘못된 신념은 정의가 아니다[미디어비평] 톺아보기
meditator | 승인 2019.08.26 15:38

[미디어스] 왓쳐가 마무리됐다. 이수연 작가의 <비밀의 숲>과 다른 한상운 작가가 집필했지만, 검찰 내부 비리를 다뤘던 <비밀의 숲>에 이어 경찰 내부 비리를 다룬 <왓쳐>로 안길호 피디는 '권력형 비리' 2부작을 완성했다. 아니, 그냥 완성이 아니라 2017년 최고의 드라마가 <비밀의 숲>이었듯 <왓쳐>는 아마도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2019년 최고의 드라마로 기억될 듯하니 이쯤이면 '명작 제조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비밀의 숲>만 한 드라마가 나올까 싶었는데 <왓쳐>는 <비밀의 숲>만 하게 시작해서 <비밀의 숲>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로 마무리되며 재밌고 좋은 드라마를 찾던 시청자들의 열렬한 찬사를 받으며 화려하게 퇴장을 했다. 무엇보다 2019년을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의 초상을 그려내며 당대성을 담보해냈다는 점에서 <왓쳐>는 장르물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OCN 토일 오리지널 ‘WATCHER(왓쳐)’

정의란 무엇인가
2011년 우리나라는 '정의' 열풍에 휩싸였었다.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가 <정의란 무엇인가> 출간과 함께 ebs에서 강의를 하며 그 어려운 철학 강의가 열렬한 국민적 이슈가 되었다. 왜 그랬을까? 이명박 대통령 시절 사람들은 경제적인 각종 악재, 그리고 그보다 더한 정치적 절망을 겪으며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포기할 수 없었던 '희망'의 끈을 잡으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9년 우리는 다시 <왓쳐>를 통해 같은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정의란 무엇인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질문을 던진 사람은 16부로 마무리된 <왓쳐>에서 최종 빌런이었던 박진우(주진모 분) 세양지방 경찰청 차장이었다. 도치광의 감찰 비리반을 유일하게 비호해주었던 사람, 그럼에도 그는 동료 경찰들의 '비리'를 캐고 다니는 도치광에게 '정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며 질문을 던진다. 같은 정의인데도 2011년의 정의와 2019년의 정의는 어쩐지 뉘앙스가 다르다. 그리고 그 '다른' 뉘앙스, 2011년에 열광했던 정의가 퇴색한 모습이야말로 <왓쳐>가 주목한 이 시대의, 변화하는 시대의 모습이다.

시작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2살이었던 김영군(서강준 분), 그의 눈앞에서 어머니가 칼에 찔려 죽었다. 세양지방 경찰청 형사였던 그의 아버지 김재명(안길강 분)은 아들인 영군의 증언이 유력하게 채택되며 어머니를 죽인 살인범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유력한 증거, 바로 후배였던 도치광(한석규 분)이 김재명이 살인범일 거라며 조작했던 피 묻은 잠바가 그런 그의 범죄를 확증시켰다.

15년 후,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그 사건에서 아버지가 범인이라 증언했던 영군은 교통계 순경이 되었다. '아무도 못 믿으니까 경찰이 적성이죠'라는 영군은 15년 그 사건에서 정말 자신이 봤다고 했던 것이 진실인지를,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인 게 맞는지를 그 진실을 찾아 경찰이 되었다.

OCN 토일 오리지널 ‘WATCHER(왓쳐)’

그리고 그런 영군의 앞에 아버지의 후배이자 그를 감옥으로 보낸 도치광이 비리 감찰팀의 팀장으로 영군을 스카우트한다. 그리고 '인간다움'을 물으며 자신의 손가락을 절단한 경찰 내 사조직 킬러를 잡기 위해 한때는 영군을 독려해 김재명을 살인죄로 기소한 검사였던 변호사 한태주(김현주 분)가 합류한다. 영군도 그렇지만 한태주도, 그리고 도치광도 15년 전 그 사건의 진범이 과연 김재명이었을까란 의심으로부터 출발한다.

교통계 순경 영군의 눈에 우연히 띈 유괴범 손병길로부터 시작된 사건은 장기 매매 사건으로 이 사건은 다시 선일 암매장 사건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결국 경찰 내 사조직 장사회와 그들의 앞잡이 거북이를 향한다. 그리고 거기에 비리 감찰반 세 사람 도치광, 한태주, 김영군이 얽힌 15년 전 영군 어머니를 아버지 김재명이 죽였다는 사건이 있다. 각자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세 사람, 그런 그들에게, 경찰 내 사조직 장사회와 거북이를 밝히려 드는 감찰반장 도치광에게 묻는다. '정의'가 무엇이냐고.

OCN 토일 오리지널 ‘WATCHER(왓쳐)’

박진우가 묻는 의미는 그렇다. 지금 네가 '정의'를 운운하며 경찰을 털려고 다니는데 결국 그 네가 말하는 정의가 동료를 배신하는 행위이고 어쩌면 진짜 '정의'를 위해 했을 지도 모를 경찰들의 일을 방해하는 일일 수도 있다고. 그런 박진우의 질문에 도치광은 이른바 '썩소'를 날린다. 그리고 반문한다. '정의? 그리고 난 정의 그런 거 몰라요. 그저 나쁜 경찰을 잡을 뿐이에요'라고 답한다. 2011년에 마이클 샌델에 열광했던 그 '정의'는 분명 '올바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2019년에 오니 그 '정의'와 '나쁜 경찰을 잡는 옳은 일'사이의 간극이 생겼다.

경찰대를 졸업한 엘리트들의 모임, 소년 장사를 의미하는 '장사회'였을 거라던 경찰 내 사조직은 알고 보니 안되면 '장사나 해야겠다'던 자조적 의미의 사조직이었다. 경찰대 출신은 맞다. 김영군의 아버지 김재명이 자신들이 애써 붙잡아 넣어도 각종 '선'을 타고 손쉽게 혹은 가볍게 감옥문을 빠져나오는 흉악범들을 '사적'으로 손봐주기 위해 혹은 수사를 '편의적'으로 성공시키기 위해 만든 사조직이 바로 '장사회'였다.

분명 시작은 명분상으로는 법으로 해결될 수 없는, 아니 '만족'할 수 없는 '정의'였다. 하지만 그 '편의적 정의'는 칼자루를 쥐며 날개를 달자 불법과 탈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거북이'라는 킬러까지 움직이며 검경을 아우르는 '무소불위'의 커넥션으로 덩치를 불려간다. 단지 이권만이었을까, 경찰대 출신의 똘똘한 광수대 엘리트 형사가 거북이가 된 게. 장해룡이야 자기 딸을 그렇게 만든 흉악범에 대한 사적 복수로 그렇게 됐다지만 그뿐이었을까. 많은 경찰들이, 그리고 검찰들이 '정의'라는 편의적 명제 앞에 자신들을 합리화하며 야망과 이권을 누리기 위해 모여든 것이 아니었을까. 결국 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정의'는 그들이 쓰는 '조자룡의 칼'이 되었다. 그리고 그 칼에 장사회를 만든 장본인 김재명은 아내를 잃고 결국 자기 자신도 목숨을 잃고 만다. 그리고 이제 15년이 지나 실체적 진실을 찾아가는 감찰 비리반의 '수사대상'이 되고 만다. 그리고 이제 어느덧 장사회의 보스 박진우의 입에서 '정의'라 흘러나오는 시절이 되었다. 그렇게 '정의'는 퇴락되어 간 것이다. 마치 2019년 우리 시대 부도덕한 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정의'처럼.

OCN 토일 오리지널 ‘WATCHER(왓쳐)’

인간다움은 무엇인가?
한태주 변호사는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던 거북이가 던진 '인간다움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질문을 거북이를 찾는 유일한 단서로 여겼다. 그리고 동시에 누군가의 손가락을 자르며 살인을 즐기는 킬러의 정의, 그런 킬러를 운용하는, 그럼에도 '정의'를 운운하는 집단의 '인간다움'을 역설적으로 드라마는 집요하게 묻는다. 그런데 그 질문을 만든 당사자 박진우가 내린 답은 어이없다. '인간다움'이란 추상적 명제 앞에서 당황하는 피해자들, 결국 '대의명분' 앞에 그 누구도 자신할 수 없는 그 인간적 허점을 노렸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박진우의 역설적 인간다움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를 떠도는 '정의'라거나 '인간다움'이라는 추상적 명제가 가지는 허상의 배를 드러내 보인다.

그리고 <왓쳐>의 매력은 바로 이런 정의 내릴 수 없는 인간다움이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물론 궁극적으로 지은이가 추구하는 '정의의 한 계파'로의 결론을 유도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수한 정의론이 등장한다. 달려오는 열차, 철로 위에 사람, 과연 그 한 사람을 살리는 것이 맞는가, 기차에 탄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 맞는가. 무수한 딜레마의 서사가 바로 <정의란 무엇인가>였다. 그렇듯 <왓쳐>의 묘미는 바로 그런 '딜레마'를 가진 인간다움이다.

시작은 자기 딸의 손가락을 절단한 범인에 대한 사적 복수심이었으나 어느덧 괴물 거북이가 되어버린 장해룡, 사건 수사의 편의를 위해 시작한 사조직이었으나 괴물이 되어버린 조직 앞에 자신과 가족을 빼앗겨 버린 김재명, 순경 출신이라는 콤플렉스가 사조직 장사회를 통해 거침없는 야욕으로 돌변해버린 박진우, 자신이 진실이라 믿는 걸 얻기 위해 수단과 타협하곤 하는 도치광, 그리고 자신의 손가락을 자른, 아니 자신의 인간다움을 짓밟아버린 범인을 찾기 위해 결정적 순간 자기편을 배신할 수 있는 한태주까지 <왓쳐>는 명분을 그럴듯하게 내밀지만 저마다 딜레마를 가진 인간들의 전시장이었다.

OCN 토일 오리지널 ‘WATCHER(왓쳐)’

그리고 동시에 세대론이기도 하다. 시작은 '정의'로우려 했지만 어느덧 자신들의 편의적 '정의'와 야욕, 야망으로 인해 '수사' 대상이 되어버린 아버지 세대, 바로 <왓쳐>는 젊은 영군 앞에 거침없이 까발려져 버린 어느덧 아버지가 되어버린 세대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들처럼 영군이 젊은 거북이를 향해 총구를 겨눌 때 도치광과 한태주가 그 손을 잡듯이 너는 그러지 말라고, 우리처럼 편의적 정의에 물들지 말라고 경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비밀의 숲>은 검찰 내부의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정의롭지 못한 정의'를 실천했던 이창준(유재명 분)이 자신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자 스스로 목숨을 거두는 것으로, 스스로 단죄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며 한 세대를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왓쳐>는 시즌2를 염두에 둔 탓일 수도 있지만 젊은 거북이었던 형사의 병실을 찾는 거북이를 등장시키며 경찰 내 비리 조직의 여운을 남긴다. 아니 무엇보다 나쁜 형사만을 잡는다던 도치광이 감찰 비리반의 존속을 위해 자신의 과거를 염동숙 청장의 박진우 차장 살해 교사와 협상했음을 밝히면서 아직 그 '부정의'의 정의를 부르짖는 세대가 끝나지 않았음을 그리고 쉽게 끝나지지 않을 것임을 드러내며 경계심을 촉구한다.

마지막 자신의 협잡을 눈치챈 영군에게 도치광은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 자부한다. 그리고 영군에게 너는? 하고 묻는다. 그러자 영군은 그런 도치광을 지켜보겠다고 한다. 명실상부한 '왓쳐'다. 퇴락해가지만 그러지 않으려 애쓰겠다는 정의의 세대, 그 세대를 눈 부릅뜨고 지켜보겠다는 영군의 세대, 그렇게 왓쳐는 2019 정의의 경계, 세대의 경계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풀어냈다. 한상훈 작가와 안길호 피디가 만든 이 세대론의 얼개 위에 살을 붙이고 날개를 단 건 다름 아닌 명불허전 한석규를 비롯하여 김현주, 서강준 등의 배우들이었다. 드라마의 시대는 갔다지만 여전히 좋은 이야기를 통해 시대를 울리는 걸 드라마만큼 잘 해낼 수 있는 장르가 있을까라는 걸 왓쳐는 스스로 증명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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