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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과는 다른 결말 ‘60일, 지정생존자’가 남긴 의미[미디어비평] 톺아보기
meditator | 승인 2019.08.21 14:25

[미디어스] <60일, 지정생존자>가 종영했다. 1회 3.4%에서 시작하여 16회 6.2%, 동시간대 지상파, 케이블 시청률 1위를 수성,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마무리를 했다. 특히 최근 부진했던 tvN 드라마의 주중 성적으로 치면 발군이다. 더구나 ‘모 아니면 도’라 할 수 있는 외국 드라마의 번안 실정에서 <60일, 지정생존자>는 성공적인 각색의 한 사례로 기억될만하다. 과연 <60일, 지정생존자>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60일, 대통령 권한대행 

tvN 월화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무엇보다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이야기의 ‘변주’를 들 수 있다. 미국 헌법은 대통령 유고 시 지정생존자가 대통령직을 승계하여 남은 대통령의 임기를 수행하도록 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각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행사가 있을 경우, 유사 시에 대비하여 각료 중 한 사람을 '지정생존자'가 될 수 있도록 안전시설에서 대비하도록 한다. 바로 이런 미국 특유의 정치적 위기관리 해법을 모티브로 하여 넷플릭스의 <지정생존자>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미드 <지정생존자>는 태평양을 건너 우리나라로 와, 대통령 유고 시 승계자는 '권한대행'이 된다. 그리고 다음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60일 이내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하도록 하는 설정으로 <60일, 지정생존자>가 탄생되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60일, 대통령 권한대행이다. 

즉, 미드 <지정생존자> 속 대통령이 된 톰 커크먼은 선출되지 않은 대통령으로서, 그에게 맡겨진 국가원수로서의 '정치적 권위'를 어떻게 달성해가는가라는, 미국적 정치제도 속 딜레마를 안게 된 최하위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의 정치적 성장서사이다. 반면 <60일, 지정생존자>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박무진(지진희 분)은 환경학자로서 자신의 학문적 소신에 따라 대통령에게 사표를 내던질 만큼, 정치인이나 각료라기보다는 학자, 혹은 한주승 비서실장의 말처럼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학문적 주장이 정치적으로 관철되지 않자 정치를 '이반'했던 자연인 박무진이, 국회의사당 테러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각료들의 '유고'로 인해 대통령 권한대행의 자리에 떠밀려 앉게 되면서 <60일, 지정생존자>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드라마에서 자주 비춰진 그의 신발처럼, 대통령에 의해 억지로 신겨졌던 구두를 자유롭게 벗어던졌던 그가 다시 그 맞지 않는 구두를 꾸역꾸역 신어야 하는 거북함, 불편함으로 시작된 이야기. 하지만 어색함과 낯섦도 잠시, 대통령이 부재한 분단 국가에 휘몰아치는 위기의 상황들에 권한대행 박무진을 던져넣고 만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유고'된 양진만 대통령과 그의 정부이다. 민주적 정부를 표방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민주적인 원칙과 의지는 '정치적' 과정에서 뜻을 펴보지도 못한 채 점점 떨어지는 지지율 속에서 소신은커녕 위태로운 처지에 빠지게 된 양진만 정부. 그런 상황에서 발생한 테러는 안 그래도 취약했던 정부와 정권 자체를 흔드는 야당, 군부 세력들의 난립으로 이어진다.

서울시장은 이 틈을 타서 자신의 선거운동을 노골적으로 하기 위해 귀화한 북한 동포들을 이용하여 사회적 분열을 획책하고, 군은 평화정책을 추진했던 양진만 정부의 정책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국회의사당 테러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오영석(이준혁 분)은 대중의 영웅이 되어 청와대를 향한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언론은 사건에 따라 안 그래도 취약한 권한대행의 청와대를 흔들고, 테러와의 공모 여부로 박무진은 점점 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박무진이 청와대 참모들을 믿을 수 없는 만큼, 청와대 참모들 역시 학자 나부랭이였던 박무진의 '권한대행' 능력을 신뢰할 수 없어 한다. 

또 한 사람의 영웅 대통령? 

tvN 월화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드라마는 좋은 사람, 그리고 좋은 정치를 지향했던 양진만 정부의 무기력함으로 시작하여, 테러라는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본의 아니게 권한대행이 된 박무진을 통해 '좋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이야기인 듯 연다. 실패한 영웅의 세계에 나타난 또 한 사람의 '영웅서사’인가? 권력의 정점에 선 대통령제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은 언제나 우리 사회에서 메시아와 같은 희망의 기대주였었다. 그리고 <60일, 지정생존자>도 다시 그 익숙한 화법으로 시청자들에게 또 한 사람의 '좋은 메시아'의 도래를 선도하는가 싶었다. 

하지만 한국적인 정치적 조건, 제도에서 잉태된 <60일, 지정생존자>는 원작과는 다른 결론에 도달하며, 구태의연한 정치 영웅의 이야기가 아닌, 2019년에 우리가 다시 생각해 볼 정치의 ‘의미’를 묻는다. 

이는 뜻밖에도 그가 사표를 던지게 된 ‘그 사건’으로부터 비롯된다. 미국과의 조약 과정에서 미국 측의 압박으로 인해 불리한 처지에 놓인 상황을, 박무진은 환경학자로서 데이터를 제시하며 미국 측을 수세로 몰아넣으며 회담 자체를 유리하게 끌고 간다. 바로 그런 그의 '학자적 태도'는 북한 잠수함 출몰로 인한 군사적 충돌 상황을 다시 한번 '데이터'를 통한 접근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유도한다. 즉, 청와대 비서진조차 우리 진영의 논리에 빠져 박무진에 대한 믿음을 두지 않는 상황에서 '사실'에 근거한 설득으로 도발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박무진은 양진만 정부의 일원이었지만, 기꺼이 그 정부에 사표를 내던질 만큼 학자적 양심이 우선한 사람이었고, 대통령 권한대행의 자리를 내던질 위기에서 한주승 비서실장의 시민의 권리라는 설득으로 물러서게 되는 '개인'이었다. 그에게는 소속된 진영이 의미가 없었고, 그가 권한대행의 자리에서 내리는 결정은 양심적인 ‘민주 시민’으로서의 고뇌에서 비롯된 결정이다. 

고뇌하는 시민, 그가 잉태한 좋은 정치 

tvN 월화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드라마 속 박무진은 늘 고뇌한다. 매회 그가 대행하고 있는 60일 한정의 정부를 흔드는 사건들 속에서 그는 '시민'으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그리고 이웃으로서 최선을 길을 찾아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그리하여 차영진(손석구 분)의 말처럼 기존 정치가 해왔던 이분법적인 결정이 아닌, ‘뜻밖의 결정’을 통해 정치의 길을 새롭게 개척해 나간다. 그리고 그 길은 차별금지법이라는 정치적 승부수조차 뒤로 미루며, 아니 이벤트가 아닌 진짜 차별금지법을 실행시키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이 되려는 정치적 성장의 길로 나선다. 

하지만 그의 결심은 마지막 회 가장 큰 위기를 겪는다. 때로는 그를 멀리했지만 그럼에도 그가 가장 의지했던, 양진만 정부의 핵심이었던 한주승 비서실장이 테러의 배후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원작과 달리 <60일, 지정생존자>의 대통령 권한대행 박무진은, 자신이 괴물이 될 테니 당신은 앞서 좋은 정치를 해달라는 한주승 비서실장의 협박인지 선언인지 모를 유혹을 딛고 대통령 출마를 포기하는 것으로 그의 정치를 완성한다. 

16부의 장정 속에서 박무진의 정치는 늘 그와 다른 길을 걷는 세력들에 의해 '시험'받는다. 한반도의 위기 속에 군사적 실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군부 등 군사적 세력에 의해, 도덕적인 해결보다는 정치적 수를 우선하는 청와대 참모를 비롯한 야당과 언론들에게, 그리고 자신을 버린 국가에 대항하여 테러라는 수단을 이용해서라도 국민을 공포에 몰아넣으며 대중을 선동하여 정권을 잡으려 했던 오영석 등의 테러 집단에 의해. 무엇보다 아이러니한 것은 '민주 정치'를 실현하려 했던 양진만 정부의 실세 한주승 실장이 자신들의 정치가 외면받자 테러로 양진만 정부를 전복하고 테러 적극 가담자인 오영석을 통해 가장 극단적인 방식의 정치적 혁명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tvN 월화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결국, 이들 모두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를 위해 '수단'을 불사하고 대중을 자의적으로 도모하고 이용하고자 했다는 것. 그런 정치적 방식에 대해 박무진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그 어느 편이 아닌 민주사회 '시민'의 입장에서 정치의 새길을 터 나간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의미에서, 2019년 여전히 새롭지 않은 정치의 세상에서 매우 새로운 방식의 정치를 접하고 논하게 만든다. 그의 옮음은 이미 어느 편이라 완성되지 않은 것이었으며, 때문에 늘 그를 위태롭게 만들고 혼란스럽게 흔들었지만, 그래서 그는 쉽게 어느 편에 서는 대신 ‘원칙적’으로 할 수 있었다. 또한 어느 편이 아니었기에 야당의 대표라도, 그가 사퇴시킨 전직 참모총장이라도 기꺼이 손을 내밀 수 있는 유연한 정치적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지지율조차 야당대표보다 10%가 넘게 이긴 상황, 대통령에 출마하겠다고만 하면 대통령 자리가 굴러들어올 수 있는 상황, 이제 다시 새로운 희망을 열어줄 수 있다는 한주승 실장의 설득 아닌 설득에, 박무진은 민주주의는 ‘시행착오를 거쳐서 만들어 가는 시스템’임을 선언한다. 옳다고 믿는 자기도취의 어떤 집단에 의한 전횡이 아니라, 지금이 아니더라도 그 언젠가 도달해 나갈 실패와 실수의 과정이라는 희망을 열어준다. 

미 메릴랜드 대학교의 국제 개발과 분쟁관리 연구소에 따르면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는 88개국이다. 그리고 그중에 완전한 민주주의 체제를 이룬 국가는 불과 27개국에 불과하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31번째 '흠 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된다. 하지만 해방 후 불과 반세기, 어쩌면 우리가 여전히 과정 속의 민주주의 체제에 있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벌써 우리가 이룬 민주주의에 대해 자부심보다는 <60일, 지정생존자> 속 많은 회의주의자들처럼 우려와 좌절에 익숙하다. 

그런 상황에서 박무진이라는 한 사람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어 보낸 60일의 시련기, 그리고 그가 다시 꿈꾸는 정치는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희망을 갖게 한다. 막연한 또 한 사람의 영웅 탄생이 아니라, 드라마 마지막 그와 함께 활짝 웃었던 젊은 보좌관들처럼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함께 고민해 볼 '민주주의적 정치'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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