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역시 한국 엘리트의 도덕적 아킬레스건은 자식 문제에 있는 모양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관련 의혹에 딸의 입시 문제가 추가되면서 상황이 심상찮게 됐다. 거의 모든 언론이 “조로남불(조국과 내로남불의 합성어)”을 말하고 있다.

이 지면에서도 지적했듯 사모펀드나 동생의 웅동학원 소송 문제 등은 법적 문제를 제기하기 쉽지 않거나 조국 후보자 본인과의 연관성이 의문시된다는 점에서 ‘결정적 낙마사유’를 말하기 어렵다. 조국 후보자의 해명이 얼마나 성실하게 되느냐에 따라 상황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녀 문제, 특히 입시와 관련된 것이라고 하면 얘기가 다르다. 조국 교수의 딸은 외고를 다니면서 단국대 의대 교수 등이 작성한 논문에 제1저자로 등재됐고 이를 활용해 명문대 진학에 성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조국 후보자와 그 배우자는 모두 본업이 교수이다. 해당 논문의 책임저자인 단국대 의대 모 교수의 아들은 조국 후보자 딸과 동문이다. 이 교수는 조국 후보자와의 관계에 대해 “엄마들끼리는 안다”고 말하고 있다. 조국 후보자 부부와의 직접적 연관성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조국 후보자가 이 과정에서 해당 교수 등에 인턴십 등을 제공한 대가로 이득을 제공했다면 중대한 낙마사유가 될 것이다. 조국 후보자가 이 모든 과정을 알고도 적극적으로 묵인한 정황만 나와도 법무부 장관직을 수행하는 데에는 적절치 못한 인사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조국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대비해 할 수 있는 해명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 같다. 딸의 논문 작성 및 대학 진학과 관련해 불법적인 일은 없었으며, 배우자가 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고 본인은 ‘바깥일’을 하느라 이러한 정황을 잘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당은 당시 조국 후보자는 ‘유명인’조차 되지 못했고 이런 식의 입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는 등의 방어 논리로 대응할 가능성이 커보인다.

아무튼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구체적으로 어떤 해명이 나올지 지켜봐야겠지만 이 문제는 여론에도 일정 이상의 악영향을 끼칠 것 같다.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젊은 세대의 경우를 생각하면 그렇다. 또 자녀의 입시 문제를 ‘자기 일’로 고민할 수밖에 없는 학부모들의 여론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특히 이 대목은 내년 총선을 앞둔 여당 입장에선 곤혹스런 일일 것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0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종로구 한 건물로 들어서며 정책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언론이 조국 후보자의 과거 글 및 발언과 지금 드러난 문제를 비교하며 일제히 “내로남불”을 지적하는 게 바람직한 일인지는 한 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내로남불’을 문제 삼아선 안 된다는 건 아니지만 그게 문제의 핵심인 양 말하는 것은 오히려 본질을 외면하는 결과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예를 들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각자도생’이 사회 원리의 본질이라고 믿는 사람이 장관 후보자가 됐는데 이런 비슷한 의혹이 제기된 경우라면 어땠을까? ‘언행일치’라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내리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의 ‘철학’을 문제 삼았을 것이다.

지금 다수 언론의 태도는 조국 후보자가 평등과 같은 사회정의 등 하여간 ‘좋은 가치’를 말해왔다는 점에서 ‘철학’을 문제삼을 수 없으니 ‘진정성’의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것에 가깝다. 거짓말쟁이 아니냐는 거다. 보수언론은 이 틀을 확장해 ‘강남좌파’의 문제로 연결시키고 있다. 입으로 진보를 말하는 사람들은 뒤로 자기 사익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고, 그런 점에서 진보는 대개 위선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는 것이다. 특히 조선일보는 전두환, 최순실까지 인용하며 이런 공격의 선두에 서고 있다.

하지만 ‘강남좌파’가 아니라 ‘강남’에서 문제를 찾아야 한다. 조국 후보자의 딸이 거친 과정을 본 이라면 입시를 위한 전략을 기획한 흔적을 느낄 것이다. 보수야당이 ‘스카이캐슬’을 언급하는 것도 이 때문인데, 여기서 알 수 있듯 이런 식의 입시기획은 부모가 교수이거나 부유층이기 때문에 확보한 재력이나 인적 네트워크, 관련 지식이 전제돼야 한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당시 조국 후보자의 딸이 다녔던 학교에는 유학반이 있었고 여기서 자녀의 해외 유학을 준비하는 학부모들의 정보 교류가 빈번했다고 한다. 조국 후보자의 딸이 문제가 된 논문 작성에 참여하는 통로가 된 인턴십 프로그램은 해당 교수 혼자 관여했고 2008년 단 한 해에 걸쳐 진행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또 조국 후보자 딸은 2008년 공주대 생명과학과 모 교수가 진행한 인턴십에도 참가했는데 당시 모친인 정 모 교수가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보도도 있다. 서울대 출신 교수끼리의 친분이 일부 작용했다는 것이다. 조국 후보자 딸은 이를 통해 2009년 8월 발표된 논문의 발표초록에 제3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전형적인 고학력 기득권층의 학벌 대물림 프로세스다.

지금까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사람들은 꼭 자녀 문제가 아니더라도 대개 사회지도층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문제로 논란을 일으켜왔다. 고가 부동산을 다수 소유하는 일이나 공무원 직위를 이용한 관테크,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한 증여세 탈루 등은 가난한 사람들 입장에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재산증식 방법이다. ‘피플파워’를 자처하는 정권에서도 이런 일은 반복되고 있다. 조국 후보자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피플파워’가 아니라 부유한 엘리트들이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정권이라는 한계를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비판도 ‘내로남불’이 아니라 이 대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지금은 ‘20대의 상대적 박탈감’에 대한 기사조차 명문대 재학생들의 커뮤니티의 반응을 근거로 하고 있는 판이다. 고려대나 서울대의 경우 조국 후보자의 딸이 거쳐갔거나 조국 후보자 본인이 적을 두고 있는 학교라는 점에서 최소한의 납득이 가능하지만, 이화여대 온라인커뮤니티가 등장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앞서의 비판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자유한국당은 “정유라는 금메달이라도 땄다”며 언론의 이런 태도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국정농단으로 삼성을 움직여 고가의 명마까지 사주게 한 것을 이 문제와 비교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물론 앞서도 서술했듯 조국 후보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이 총체적 엉망진창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청와대가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게 어떨까 한다. 제대로 된 해명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임명 강행보다는 지명 철회나 자진사퇴 유도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 조국 후보자보다 기득권과 멀고, 조국 후보자만큼 검찰 개혁에 신념을 갖고 있는 인물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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