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버라이어티, 집단 MC나 출연진들이 넘쳐나는 지금 대한한국의 예능 프로그램들 중에서 남자의 자격이 다른 경쟁자들과의 차별점을 내세울 수 있는 지점은 매우 명확합니다. 바로 나이. 혹은 연륜이라는 따라하고 싶어도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세월이 만들어준 선물이죠. 현존하는 어떤 프로그램보다도 높은 평균 연령대를 자랑하기에 보다 넓은 층의 감성을 감싸 안을 수 있고,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냥 할일 없이 나이만 먹은 것이 아니거든요. 매주 주제는 바뀌고 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남자의 자격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접근하든 간에 이른바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편하게 수더분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저력을 기본적으로 장착하고 있어요.

그렇기에 다른 프로그램들에서는 쉽게 접하거나 시도하기 어려운 주제들도 남자의 자격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다가설 수 있습니다. 인생의 무게를 논하거나, 점점 약해지는 몸을 바라보며 회환과 걱정에 휩싸이거나, 눈만 뜨면 변하는 새로운 현상들에 어지러워하거나, 작은 일상의 변화에도 새로운 삶의 활력을 발견하거나 하는 것들이 그것이죠. 실상 남자의 자격에서 다루는 주제들은 대부분 이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어떤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을 실행하여 성취감을 공유하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정보들을 공유하거나 하기보단 그냥 별것 아닌 것만 같은 일상에 새로운 시각과 접근법을 제공하는 것이죠.

그 중에서도 가장 어울리고 마음을 울리는 부분은 바로 이번 주 내용처럼 그들이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지혜를 좀 더 어린 친구들과 가감 없이 나누는 순간입니다. 마치 지난번 강연에서 수많은 어록들로 시청자들의 감동과 깨달음을 주었던 것처럼 고등학생들의 소소한 고민거리들을 마주하며 마음을 나누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많은 생각거리들을 전달해주거든요. 그 누구도 허투로 폄하할 수 없는, 최선을 다해 살아온 이 아저씨들의 삶의 깊이는 버라이어티에서 줄 수 있는 최고치의 가르침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전달합니다.

그것은 이경규, 김국진, 김태원 세 사람 OB의 캐릭터. 그들이 걸어온 길이 만들어준 신뢰와 역량이 주는 따스함, 그리고 공감의 힘입니다. 50줄의 나이에도 여전히 최고의 자리를 놓지 않는 노장 이경규의 열정과 역량. 좌절과 극복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이제 상승의 길을 걷고 있는 한 시대의 거인, 김국진의 따뜻한 인간미. 그리고 정작 자신은 그 뜻을 몰랐지만 촌철살인이란 말이 아깝지 않은 김태원의 핵심을 찌르는 친절한 눈높이와 다양함을 포용하는 넉넉함이 가득 담긴 형들의 고민 상담은 어린 학생들에게는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좋은 등대처럼, 나이든 어른에게는 그 때 그 당시의 추억을 되새김질해 줄 수 있게 해주는 즐거운 시간 여행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작진들이 짐짓 할매도사라고 애칭을 붙인 김태원이 꾸민 시간들과 그가 남긴 어록이 무척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그 스스로가 걸어온 길이 가시밭길이었고, 자신이 여러 차례 고백했던 것처럼 온갖 수모와 편견, 컴플랙스가 지배했던 삶이었기에 오히려 그 모든 것들을 거친 후에 편안하고 가깝게 어린 동생들을 품을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요? 논리적이고 이론에 가득한 딱딱한 충고가 아니라 차라리 경험과 마음으로 다가가는 이 국민할매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확실히 호소하는 힘이 있습니다. 고민해결을 위해선 무릎팍도사보단 할매도사를 찾으라는, 그가 운영하는 고민상담 프로그램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거든요.

지성보다는 인성, 인성보다는 감성. 가장 낮은 단계의 것으로 고민하지 말아라. 너가 가진 목소리는 특이한 것이 아니라 독특한 것이다. 촌스러운 너 이름을 빛나게 하는 것은 너 자신이다. 비밀이 많은 남자로 너를 만들어라. 여자가 널 알고 싶게 만들어라. 컴플랙스는 신이 준 선물이다. 각각을 떼어놓고만 생각하면 요즘 예능 프로그램에서 흔하게 풀어놓는 명언들의 조합일 뿐입니다. 하지만 김태원은 이런 주옥같은 말을 어린 청춘들의 눈을 마주보고, 어디서 읽거나 간접 경험으로 들은 것이 아닌 자신의 삶을 통해 깨달은 것들임을 납득시키며 마음으로 전달합니다. 이런 차분하지만 깊이 있는 다가섬을 마무리하는 말이 ‘사랑함’이라는, 어린 친구들을 마음으로 품는 것이 느껴지는 따스한 어른의 사랑고백이었기에 더더욱 감동적이었구요.

어른이 없는 세상입니다. 권위와 신뢰가 실종된, 모두가 앞으로 나아갈 길이 어디인지를 궁금해 하고 애타게 찾고 있지만 우리에겐 누구 하나 의지할 만한 원로가, 어른이 무척이나 아쉽고 부족한 것이 사실이죠. 그리고 이런 답답하고 한숨 나오는 현실 속에서 우린 딴따라, 고작 웃고 즐기기 위해 보는 얄팍한 TV 프로그램에서 진짜 우리에게 필요한 어른들을 만납니다. 마주보고 조용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어른, 조심스럽지만 확실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해주는 어른, 그러면서 공부하란 말을 할 줄은 몰랐다며 자신도 늙어버렸다고 씁쓸하지만 따스한 웃음을 지어줄 수 있는 어른. 남자의 자격이 갈수록 힘을 얻는 이유.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지지자들을 얻어가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이 친절한 아저씨들이 무척이나 좋아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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