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적인 드라마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싸인>만의 장르 탐험은 연일 화제입니다. 시청률이 '마프'에 밀려 아쉬움을 주지만 드라마 특유의 탄탄한 재미를 가진 <싸인>은 역시 특별한 드라마였습니다. 바보 같았던 진범의 악마의 미소는 겨울 밤 가장 섬뜩하게 다가온 공포였습니다.

긴장감 배가시킨 '싸인의 추억' 흥미롭다

연쇄 살인마의 은신처를 발견하고 추가 희생자의 유골까지 찾아 낸 윤지훈과 고다경. 최이한 형사와의 오해가 만든 격투까지 있었지만 그들의 올바른 신념이 만든 성과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산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만 죽은 사람은 진실만 이야기한다'

는 말처럼 그들은 죽은 이가 마지막으로 산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었던 이야기를 듣고, 범인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한 노력 때문에 연쇄 살인을 멈출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국과수 원장 이명한처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의를 숨겼다면 연쇄 살인마는 더욱 진화해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냈을 테니 말이지요.

동일한 사건에서 판이한 결과를 도출해 낸 윤지훈과 이명한은 극단적인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희대의 연쇄 살인마를 찾는 일에 팀장이 된 윤지훈과 위기에 몰린 이명한의 대비되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통쾌함까지 전해주었습니다. 악인을 누른 정의의 승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유쾌할 수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이번 희생자와 같은 10대의 나이에 의문의 죽음을 겪어야 했던 고다경은 그 어떤 때보다 이 사건에 집중했습니다. 억울하게 죽어야만 했던 동생과 초동 수사 미비로 범인을 찾아내지 못했던 과거. 그런 과거의 아픔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녀는 의사로서 보장된 삶을 버리고 어려운 법의학자가 되고자 했습니다.

현장 요원으로 동생의 원을 풀어내려는 고다경의 꿈은 선배의 일그러진 모습에 무너졌고, 정의를 위해서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는 윤지훈의 올곧은 모습에 법의관이 되었습니다. 그녀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가진 존재가 필요했습니다. 그런 존재가 윤지훈이라는 사실은 그녀에게 희망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렵게 법의관이 되어 윤지훈이 있는 남부분소로 내려온 고다경은 희망만을 바라봤지만 현실은 그녀가 원하는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더욱 시니컬해진 윤지훈으로 인해 법의학자로서의 길이 쉽지 않음을 깨닫고 있는 상황에서 그녀가 맞이한 사건은 그들을 새롭게 하나의 팀으로 만들어주는 특별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서울 본원에 입성해 일곱 구의 사체를 부검하며 범인으로 잡힌 농장주의 흔적을 찾던 윤지훈은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하게 됩니다. 범인은 왼손잡이라는 사실이지요. 이는 고다경이 자신에게 찾아와 말한 것과 정확하게 일치했습니다.

인정할 수 없었던 존재가 던진 결정적인 한 마디로 인해 사건은 급속하게 진실에 다가가게 됩니다. 망가진 희생자의 휴대폰을 복원해 범인을 확인했지만 당혹스러운 것은 그 범인의 차에 고다경이 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이 쫓아내듯 내보낸 고다경이 범인의 차를 타고 남부분소로 향했다는 사실에 윤지훈은 힘겹기만 합니다.

모든 자료들은 연쇄 방화범으로 인식되던 안수현으로 좁혀졌습니다. 어린 아들의 만행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던 아버지의 노력에 혼선을 빚었던 검찰은 국과수가 밝혀낸 진범을 찾는데 총력을 다 합니다.

연쇄살인범이 옆에서 운전하고 있는 어리바리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고다경의 공포와 흉기로 내려치는 범인 안수현의 웃음은 경악스럽기까지 했습니다. 폐허에서 깨어나 안수현을 피해 도망치는 고다경과 연쇄 살인범으로 돌아와 먹잇감을 쫓듯 그녀를 뒤쫓는 안수현의 모습은 긴장감을 배가시켰습니다.

범인의 윤곽은 이미 5회에서 드러났었습니다. 아쉬운 전개로 인해 범인이 누구일까에 대한 추측은 쉽게 범인을 찾을 수 있게 했지요. 다만 반전을 이끄는 방식과 과정이 어떨까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고 그 과정을 풀어가는 형식은 흥미로웠습니다.

좁은 차 안에서 범인임을 알게 되고 이런 상황을 인지한 범인의 웃음은 스릴러 영화에서 하이라이트가 되는 부분이지요. 순진한 얼굴을 하고 일곱 명의 여자를 연쇄 살인한 안수현의 모습은 <싸인>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영화를 통해 다져진 감독의 역량이 드라마에 그대로 전달되며 효과적인 이야기 전개를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싸인>이 내세울 수 있는 장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매회 끊어지고 이어져야 하는 드라마의 형식에서 허점을 보이기는 하지만 말이지요.

<싸인>은 스스로 첫 회부터 CSI는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고다경을 통해 CSI를 좋아하고 흥미를 느껴 직업을 선택했지만 CSI 같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는 대사가 있었습니다. 이는 연출자가 <싸인>을 보는 시청자들에게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드라마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힌트이기도 했습니다.

'악과 선'이라는 고전적인 관계를 큰 줄기로 삼고 다양한 미해결 실제 사건을 극화해서 흥미를 유도하는 방식은 여전히 유효하고 성공을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었습니다. 현실에서는 해결하지 못했던 안타까움을 대리만족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제작진의 의도는 현재까지는 매혹적으로 다가옵니다.

부분적인 연출의 문제와 아쉬운 전개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한국 드라마의 다양성을 위해 혁혁한 공헌을 하고 있는 <싸인>은 특별한 존재임은 분명합니다. 돌아온 박신양의 열연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박신양의 당연한 기대와 달리, 과연 김아중이 연기력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는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인정받은 연기였지만 과연 박신양과의 연기 대결에서 그가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는 <싸인>의 성공을 이끄는 중요한 요소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지요.

거지 컷이라고 불리는 헤어스타일과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김아중의 연기는 합격점을 줘도 좋을 듯합니다. 여자 배우로서의 아름다움을 포기하고 현장을 누비는 법의학자로 완벽하게 변신해 좌충우돌하는 그녀의 모습은 김아중의 재발견이라는 말을 해도 좋을 정도로 흥미롭습니다.

많은 이들에게는 망가진 김태희의 연기력이 돋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완성형을 향해 노력하는 연기자 김아중은 더욱 돋보였습니다. 추위도 날려 보낼 정도로 열연하고 있는 김아중의 모습은 너무 오랜 시간 연기를 쉬었던 한풀이처럼 드라마를 빛내고 있었습니다.

<싸인>의 다음 사건은 어떤 것이 될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사건들을 통해 드러나는 사회적 정의라는 화두는 매회 시청자들에게 던져지는 질문입니다.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목표를 이룰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정의라는 이명한의 발언과 정의는 그런 식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윤지훈의 대립은 우리 사회를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드는 주제입니다. 여러분들의 정의는 어떤 모습인가요?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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