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타의 순진남 최재환의 소름 끼치는 사이코패스의 변신이 꺼져가는 싸인을 살렸다. 싸인은 영화 살인의 추억 아니 아직도 미해결사건으로 공소시효를 넘겨버린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떠오르게 하는 여성 연쇄살인사건을 두 번째로 다뤘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몇 개의 사건이 전개되겠지만 싸인은 실제 사건을 절묘하게 픽션화시키는 데는 일단 성공하고 있다. 그리고 그 두 번째 사건은 이 드라마가 여름에 방영됐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제대로 각 세운 스릴러를 완성했다.
2010년 꽃샘추위는 파스타라는 드라마로 따뜻하게 견딜 수 있었다. 파스타가 흥행면에서 대박을 기록한 것은 아니지만 그 잔잔한 여운이 아주 오래 지속됐다. 그리고 모든 잘된 드라마가 그렇듯이 파스타도 역시 솜씨 좋은 조연의 존재감을 때때로 주연의 질량을 위협할 정도였다. 그런 조연 중에는 파스타를 통해서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널리 알린 배우가 있었다. 바로 최재환. 구수한 남도 사투리에 작고 친근감 물씬 풍기는 표정으로 버럭 쉐프 이선균과 좋은 대비를 이뤄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런 최재환이 싸인에서도 역시나 순진하고 유약한 성격으로 등장했다. 그렇지만 어쩐지 그 등장에 복선이 얽혀 있었다. 연쇄살인의 결정적 증거인 차량 엠블렘이 그의 트럭 앞에 버젓이 달려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형사 정겨운은 최재환을 의심하면서도 워낙 순진한 얼굴에 너무도 자연스러운 너스레에 그만 의심을 풀어버리고 만다. 정확히 두 번, 그러니까 김아중이 납치되기 전에 연쇄살인의 진범 최재환을 잡을 기회를 놓쳤다.
그렇게 다시 등장하고서 다시금 최재환에 대한 의심을 갖게 됐다. 박신양에게 연쇄살인 진범에 대한 결정적 증거를 건네주고, 범인이 왼손잡이라는 정황증거까지 제공하고도 부검팀에 합류하지 못하고 남부분원으로 돌아가게 된 김아중은 기다리고 있던 최재환의 차를 별 의심 없이 올라타게 된다. 그러는 짧은 시간에 국과수는 부검을 통해, 형사 정겨운은 방화사건 추적을 통해서 진범에 대한 윤곽을 좁혀가게 된다. 결국 김아중이 타고 간 차가 범인의 차라는 것이 밝혀지는 과정이 대단히 빠르면서도 사건의 구성에 부실함 없이 탄탄했다.
“사람이 죽는 것은 못돼서가 아니라 재수가 없어서야”라는 말도 그렇지만 김아중이 가까스로 묶인 손을 풀어 최재환의 머리를 돌로 내리치고 도망칠 때 그 모습을 보면서 변하는 표정에서 사이코패스란 이런 것이라는 모범을 보였다. 최재환은 그 작은 얼굴에 천사와 악마를 모두 갖고 있는 배우였다.
범인은 왼손잡이라고 했는데 창고에서 김아중을 쫓을 때 최재환은 오른손에 쇠파이프를 들어 벽을 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왼손잡이가 살인을 위한 중요한 도구를 평소 쓰지 않는 손에 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 옥에 티는 아마도 두 팀으로 나뉘어 촬영되는 시스템으로 인한 오류였을 것이다. 최재환 신을 담당한 촬영팀에서 앞서 수사팀의 대본을 꼼꼼히 보지 않은데서 비롯됐을 거라 짐작할 수 있다. 좀 더 치밀한 연출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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