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국내 바이오주의 선두주자로 떠올랐던 신라젠 주가가 폭락하고 있다. '꿈의 항암제'로 불렸던 '펙사벡'이 임상시험 중단 권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예고된 사태였단 분석이 제기되는 가운데 신라젠이 '사기업체'의 자금으로 펙사벡의 권리를 가진 제네렉스를 인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015년 12월까지 신라젠의 대주주였던 밸류인베스트코리아(이하 밸류)는 9000억 규모의 사기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2일 신라젠은 투자판단 관련 주요 경영사항을 공시했다. 신라젠은 펙사벡의 간암 대상 임상 3상시험 관련 무용성 평가 결과에서 미국 DMC로부터 임상시험 중단을 권고 받았다고 밝혔다. 신라젠은 DMC에서 권고받은 사항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보고할 예정이다.

임상 중단 권고 소식에 신라젠의 주가는 가격제한폭까지 떨어졌다. 2일 신라젠은 29.97% 하락한 3만1200원, 5일에는 29.97% 하락한 2만1850원에 거래를 마쳤다. 6일 오전에도 주가는 급락 중이다. 향후 임상이 불투명해짐에 따라 신라젠 주가는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초 신라젠에 대한 우려의 시선은 곳곳에서 제기돼 왔다. 지난 2013년 미국 의학전문지 피어스바이오텍은 "한국의 CRO 신라젠은 제네렉스와 트랜스젠이 펙사벡의 간암 2상시험이 실패한 몇달 후 1억5000만달러라는 고가에 인수했다"고 보도했다. 신라젠은 펙사벡 백신을 보유한 제네렉스를 고가에 인수할 당시 사기업체 '밸류인베스트코리아'의 자금을 썼다.

미디어스가 확보한 검찰 수사자료에는 밸류가 신라젠에 수백억을 투자한 정황이 적시돼 있다. 밸류는 신라젠 투자 명목으로 2013년 3월부터 2014년 9월 22일까지 약 548억원 가량을 투자자들로부터 유치했고, 이 가운데 약 432억원을 신라젠으로 송금했다. 밸류는 2015년 12월까지 신라젠의 대주주였다.

밸류가 신라젠에 투입한 자금은 신라젠이 한때 시총 2위까지 뛰어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8년 5월 진행된 밸류 사기 혐의 재판에서 밸류 영업팀장이었던 이 모 씨는 "(신라젠은) 이철 의장(밸류 대표)하고 저랑 2012년 여름에 가서 알게 된 부산의 작은 회사였다"며 "기술력이 있었지만 시중 창투사는 아무도 먼저 투자를 하려고 하지 않았을 때 밸류가 투자를 해줌으로써 창투사 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회사가 커가는데 많은 자금이 필요할 때 밸류에서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지난 2016년 12월 12일 열린 재판에 참석한 이용한 전 신라젠 대표는 "밸류가 투자할 당시 투자금이 미국의 제네렉스 인수하는데 도움이 됐느냐"는 질문에 "당연히 도움이 됐고 없었다 그러면 인수를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답변했다. 이 전 대표는 제네렉스 인수가 없었을 경우 "지금의 신라젠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전 대표는 밸류가 신라젠의 운영이나 경영판단에 관여한 적은 없다면서도 "이철 대표가 옆에서 조언을 해줌으로 인해서 조금 더 저의 생각의 폭을 넓게 해줬다"고 증언했다. 이 전 대표는 "자금 사정이라든지, 비즈니스를 넓혀가는 방법이라든지 그런 데서 정식적으로 서류를 주고받은 것은 아니지만 저한테는 포괄적으로 도움을 줬던 것 같다"고 진술했다.

밸류 이철 대표는 지난 2015년 11월 사기·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2015년 2월 금융감독원, 2015년 6월 밸류 전직 직원들이 잇따라 밸류를 검찰에 고발했다. 밸류가 사기업체로 드러나면서 밸류가 대주주로 있는 신라젠이 대주주적격성 심사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지적이 제기됐다. 그러자 밸류는 2015년 12월 신라젠 지분 매각에 나섰다.

현재 신라젠 대표인 문은상 대표가 신라젠의 최대주주가 된 시기가 이때다. 2014년 3월 4일 신라젠은 두 차례에 걸쳐 350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했다. 신라젠은 1년만인 3월 4일 BW를 조기상환했는데, 이 가운데 문 대표 몫은 164억원에 달한다. 문 대표는 2015년 12월 21일 신주인수권을 행사해 신라젠 주식 457만주를 주당 3500원에 취득하고, 12월 31일 최대주주에 등극했다. 밸류가 사기혐의를 받아 신라젠 지분 매각에 나선 시기와 일치한다.

문은상 대표는 보호 예수 기간이 끝난 직후인 지난 2017년 말부터 지난해 1월까지 자신이 보유한 주식 가운데 의무보유기간이 끝난 주식을 매각했다. 문 대표는 총 156만2844주를 1주당 약 8만5000원에 매각해 총 1325억원을 취득했다. 문 대표는 수익금을 세금, 개인부채상환 등에 사용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신라젠 대주주였던 밸류는 사기행각이 발각돼 법의 심판을 받았다. 밸류 이철 대표는 지난 6월 사기·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 받았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부사장 범모씨는 징역 6년, 범행을 공모한 정모씨, 신모씨는 징역 4년, 이모씨 등 3명은 징역 3년, 박모씨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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