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조선일보가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를 변경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주 52시간제, 최저임금 인상 등과 수사기관의 기업 수사가 기업 경영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일본의 경제 보복과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노동정책이 특별한 관련이 없어 이러한 주장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오히려 일본의 경제 보복이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을 제대로 시행해 한국 경제의 체질을 바꿀 기회라는 반박이 제기된다.

조선일보, 일본 경제 보복에 뜬금없는 정부 경제정책 철회 요구

2일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 명단(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백색국가는 군사목적으로 전용할 수 있는 물품이나 기술을 일본 기업이 수출할 때 일본정부가 승인 절차 간소화 혜택을 인정하는 국가를 뜻한다. 앞서 지난달 1일 일본은 고순도불화수소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의 한국 수출 규제 강화를 발표한 바 있다. 일본이 2차례에 걸쳐 한국에 경제 제재를 가한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조치는 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경제 보복으로 볼 여지가 많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경제를 의도적으로 타격한다면 일본도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라며 강경대응에 나섰다. 정부는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피해를 입은 기업들에게 금융 지원을 하고, 부품·소재·장비 산업 육성에 투자한다는 대책을 내놨다.

▲5일자 조선일보 사설.

5일자 조선일보는 <지금 정책 대전환 말고 무슨 방법 있는가> 사설에서 정부의 일본 경제 보복 대응 방안을 전하면서 "다급한 불을 끄기 위한 긴급 처방일 것"이라며 "이 문제는 국가의 과학 기술 역량과 관계된 것으로 이렇게 국산화가 쉽게 가능하다면 기업들이 그동안 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노동정책을 '반기업 정책'으로 규정하며 "정책 기조의 전환 없이 이런 임기응변 조치로 일본의 무역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문 정부는 최저임금 급속 인상, 법인세 인상, 세계에서 가장 경직적인 주 52시간제 강행, 환경 규제 강화 등 기업 경영에 부담을 주는 정책을 속속 실행해 왔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대기업 귀족 노조는 법 위에 군림하는데 정부는 민노총 눈치만 보며 불법·폭주를 방치해왔다. 전방위로 펼쳐지는 검찰·경찰·국세청·공정위 등의 먼지떨이식 수사·조사는 기업 경영을 불확실성으로 몰아넣었다"며 "일련의 반기업 정책들이 투자 축소를 낳고, 고용 악화와 성장 둔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제 전선의 최전방 공격수가 기업인데, 기업에 총질하고 발목 잡는 자해 정책을 지속해선 일본과 제대로 붙어보기도 전에 한국 경제가 자멸하고 말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일본이 경제 전쟁까지 불사하며 한국 산업, 한국 대표 기업 죽이기에 나섰는데, 지금과 같은 반기업 정책을 지속해선 안 된다"며 "소득 주도 성장론, 규제 일변도의 정책 대신 기업 경쟁력을 키우고 시장의 활력을 살리는 경제 활성화 기조로 정책 방향을 대전환해야 한다. 마구잡이 복지나 관제 일자리 정책에 따른 재정 낭비를 전면 재검토해 부품·소재 산업 투자 등 경제 활력 전체를 되살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경제 전쟁의 승부는 미래 성장 산업에서 누가 승자가 되느냐에 달려 있다"며 "선진국들이 인공지능·빅데이터·자율차·바이오 등 4차 산업혁명 분야를 키우려고 총력전을 펼치는데 한국 정부는 이익 집단 반발만 나오면 신생 기업의 싹을 죽여버리는 포퓰리즘을 반복하고 있다. 그나마 경쟁력이 있는 우리의 반도체 산업마저 일본의 공격 앞에 풍전등화 신세가 됐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숨 넘어가는 기업에 산소호흡기 대주는 식의 땜질식 처방으론 안 된다"며 "정책 기조의 대전환을 통해 기업 사기를 북돋우고, 기업인들의 야성적 충동을 다시 불러일으켜야 한다. 대내외에 정책 대전환의 신호를 보여주기 위해 주 52시간 적용 예외를 대폭 확대하고 법인세 인하나 파업 시 대체 근로 허용 등의 조치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경제 전쟁터에선 오로지 힘과 실력이 승부를 가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본 경제 보복, 보수언론이 가로막은 한국 경제 체질 개선 기회"

하지만 조선일보의 주장처럼 일본의 경제 보복에 정부 정책 기조를 끼워넣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일본의 경제 보복은 강제 징용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배상판결이 영향을 미쳤다는 게 다수의 시각이다. 사법부의 판단에 일본이 부당하게 경제 보복을 단행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여기에 뜬금없이 정부 경제정책을 걸고 넘어지고 있다.

조선일보는 정부의 경제·노동 정책이 기업 경영을 방해하고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조선일보와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보수진영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후부터 줄곧 제기해온 비판이다. 그러면서 정부가 신생기업의 싹을 죽이는 포퓰리즘을 반복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문제라는 지적도 많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당시 경제 정책 의제로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등 3가지를 설정했다. 이른바 '세 바퀴 경제'다.

소득주도성장은 최저임금 인상 등을 통해 국민들의 소비여력 증대, 소비 진작을 통한 내수 확대 등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의도다. 공정경제는 하도급 구조를 개선하고, 재벌체제의 적폐를 바로잡겠다는 취지였고, 혁신성장은 미래먹거리를 준비하겠다는 취지다.

세 바퀴 중에서도 중심이 되는 '공정경제'가 제대로 실행되지 않은 것이 가장 크다는 지적이다. 공정경제의 핵심은 재벌 중심의 수직계열화된 구조를 재설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구조가 바로 잡혀야 소득주도성장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 8월 5일 조선일보 1면 기사.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은 이 지점을 집요하게 공략했다. 타깃은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 등이었다. 지난 2017년 8월 5일 <'김상조 특수'에 웃는 로펌들> 기사에서 김상조 당시 공정거래위원장(현 청와대 정책실장) 취임 후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조사 등을 지시하자, 기업들이 법률자문을 하러 로펌을 찾아다닌다고 보도했다.

2017년 9월 1일에는 <오죽하면 '재계 저승사자'를 "오만하다" 비판했겠나> 사설에서 다음 창업자 이재웅 벤처기업협회 부회장이 김상조 당시 위원장을 공개비판한 소식을 전했다. 조선일보는 "공정거래위원장은 재계에서 '저승사자'로 통하는 자리다. 아무리 '저승사자'라고 해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기업인의 울분이 이해가 된다"고 썼다.

2017년 11월 6일에는 <"재벌 혼내주고 왔다"는 金 공정위원장의 기업관> 사설에서 "김상조 위원장이 서울대 경제학부 특강에서 '한국 노사정 문제에서 경총이 제대로 된 역할을 못 하고 있다'고 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며 "그러나 김 위원장 말과 달리 노사정위가 파행을 겪는 것이 노동계 때문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주지의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2018년 2월 6일자 조선일보 사설.

2017년 12월 23일에는 <재계 5위 기업 회장 먼지 털기 수사 결과가 대부분 무죄> 사설에서 "검찰이 정권의 충견이 돼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르는 수사는 정권이 바뀌었어도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했고, 2018년 2월 6일에는 <이재용 사건, 피해자를 범죄자 만든 것 아닌가> 사설을 게재해 "대통령이 기업들을 겁박하고 강요한 사건을 기업의 뇌물 상납으로 바꾸기 위해 정부는 고비마다 재판에 개입했다"고 썼다.

최요한 시사평론가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공정경제"라며 "그러나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과 자유한국당 등 보수진영에서 지속적으로 방해를 해온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최 시사평론가는 "정부 입장에서도 방향은 설정했지만,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거세다보니 제대로 돌파하지 못하고 후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평론가는 일본의 경제 보복을 정부 정책 추진을 통한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평론가는 "오히려 일본 정부가 경제 보복을 하면서 문재인 정부에서 못했던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을 할 기회가 생겼다"며 "역사, 정치, 경제, 사회문화 등 복합적인 문제인데, 이번 사건이 한국 경제 체질 개선의 중대한 분수령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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