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여야 간에 벌어지는 논란을 다루다 보면 과연 여의도 정치가 우리 삶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회의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최근의 이른바 ‘사케 논란’은 이런 방식으로 정치혐오를 불러 일으켜 문제의 핵심을 다루지 못하게 하는 또 하나의 사례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언론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일 일본술을 곁들인 오찬을 했다는 의혹(?)을 ‘논란’으로 다루고 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이해찬 대표가 당시 마신 술이 ‘사케’가 아니라 ‘국내산 청주’였다며 의혹의 내용을 부정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식자재로 장사하는 일식당도 가지 말라는 것인가”라며 받아치기도 했다.

하지만 보수야당은 계속해서 ‘잽’을 날리고 있다. 자신들을 친일세력으로 규정했던 여당의 대표가 일본의 ‘2차 경제보복’이 가해진 당일 일식당에서 식사를 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비판은 이른바 ‘내로남불’의 논리를 따른 것이다. 겉으로는 반일과 항일을 말하면서 뒤로는 일본 상품을 소비하는 건 결국 애초 대의명분을 말하는 것에 ‘불순한 의도’가 실려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식이다.

이해찬 대표가 비판을 받는 상황 자체는 ‘불매운동’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대중적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있는데, 일부 보수언론을 빼고는 대다수 언론이 이를 일방적인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 일본이 우리 경제를 사실상 침략하는 상황에서 국민이 자발적으로 대항하고 있고 이것은 한국의 저력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대결구도라는 시각으로 보면 이런 해석은 당연한 듯 보인다. 하지만 현실적 차원을 따지면 ‘불매운동’의 저항관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일본 상품을 수입해 국내에 판매하는 것으로 먹고 사는 한국인 자영업자의 피해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로 규정하면 되는 것일까? “우리나라 사람의 우리나라 식자재”라는 이해찬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의 항변은 스스로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정확히 이 문제를 가리키는 걸로 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연합뉴스)

애초에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을 ‘경제침략’으로 규정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이 중국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매기는 상황을 미국이 중국을 경제적으로 침략했다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잘해야 ‘무역전쟁’이라고 하는 정도이다. 이런 점에서 일본이 한국 경제를 ‘침략’했다는 것은 정치적 수사로 볼 수 있다.

우리 정치와 언론은 일본의 경제보복이 자유무역 질서를 훼손한 것이란 논리로 비판하면서 우리 정부에 마찬가지로 소재 및 부품의 국산화 등 자유무역의 질서를 훼손하는 것으로 대응할 것을 주문한다. 이런 여론에 힘입어 대통령은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고 하고 정부는 일본 경제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대항조치를 모색하고 있다.

정부가 일본의 보복 조치에 대해 대응하는 것이나 사람들이 불매운동에 열중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말을 하기 위해 이 문제를 언급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세계관만으로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정치적 역사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양국의 갈등 상황을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보편적 메시지를 추구하는 정치로 연결시키는 구체적 행동들이 필요하다. 최근 논란은 이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내로남불’에 기댄 비판은 이런 논리적 가능성을 봉쇄한다는 점에서 고약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해찬 대표 논란에 대한 보수야당의 공세는 사실 추경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불거진 김재원 자유한국당 의원의 음주 논란에 대한 대항적 성격이 있어 보인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눈에는 눈, 술에는 술이라는 것이다.

김재원 의원의 문제는 ‘내로남불’과 같은 헐거운 것이 아니다. 99일 동안 처리되지 못한 추경예산안이 100일째에야 간신히 처리된 이유를 희화화 시켰다는 점에서 문제인 것이다. 추경예산안 처리가 지연된 것 자체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언제나 문제는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김재원 의원은 국회 예결산위원장을 맡고 있고 추경예산안 심사를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다. 김재원 의원의 음주 논란이 불거진 당일은 추경예산안을 처리하기로 한 본회의가 오후 2시에서 4시로, 또 다시 저녁 8시로 계속해서 연기되는 등 엄중한 상황이었다. 국회 예결위원장이 추경예산안 심의와 관련 협상을 성실하고 치열하게 임하는 상황이어야 했음에도 그렇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이 쏟아진 것이다.

이것을 이해찬 대표 논란과 동일선상에 놓고 비판할 수 있는 것일까? 사안의 본질이 다르다는 점에서 이는 적절치 않다. 그런 점에서 보수야당이 이 사안을 다루는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보수언론마저도 자유한국당 등의 대응을 비판한다. 조선일보도 5일 사설에서 “(청와대와 여당이) 냉정한 대책을 내놓는 데 주력했다면 이런 논란이 벌어졌겠나”라면서 “이런 정권을 견제해야 할 야당도 ‘사케 마셨으니 너도 친일파’라는 수준이니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물타기를 위한 ‘내로남불’ 주장은 이제 그만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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