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발열조끼 성금 모금 방송은 연말 예산안 날치기 때 발열조끼 관련 예산이 통과되지 않았으니 이를 KBS가 마련해주자는 취지로 김인규 사장이 아이디어를 제공해 추진된 것으로 전해졌다.

▲ 15일 KBS 1TV에서 방송된 국군장병 발열조끼 성금 모금방송.
KBS 1TV는 지난 15일 오후 2시 55분부터 4시 5분까지 <대한민국 국군 우리가 응원합니다>에서 국군 장병들이 입는 발열 조끼를 위한 성금 모금을 진행했다.

KBS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국군장병의 사기를 진작하고,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유도하기 위해서"라고 밝혔으며, 오는 21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발열조끼 성금모금 2차 특별생방송을 내보낼 계획이다.

19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공정방송추진위원회 주간보고서에 따르면, 김인규 KBS 사장은 17일 교양국 업무보고 자리에서 자신이 직접 아이디어를 냈으며 길환영 KBS 콘텐츠본부장에게 (모금 방송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KBS본부는 "방송법에 규정된 '방송편성의 독립'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위"라며 "물론 사장이 아이디어만 제공했고, 제작 여부는 해당 본부가 '알아서' 결정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KBS내에 사장이 제안한 아이디어를 무시해버릴 간부가 몇 명이나 될까?"라고 지적했다.

KBS본부는 "사장을 비판한 사내 게시판 댓글조차 살벌한 징계로 화답하는 현 KBS 분위기에서 사장의 말 한마디는 거부할 수 없는 사실상의 '교시'가 아닌가"라며 "70년대 '배달의 기수'를 연상하게 하는 계도성 모금방송"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마땅히 정부 예산으로 해야 하는 일을 왜 공영방송사가 앞장서 서민들의 호주머니 돈을 털어서 대신하려고 하는가? 방위성금 모금방송은 공영방송사가 할 짓이 아니다"라며 "김인규 사장이 입버릇처럼 칭찬하는 일본 공영방송 NHK가 '자위대'를 위해 모금방송을 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KBS본부는 "관제방송으로 오해받기 딱 좋은 프로그램을 사장이 앞장서서 지시하는 방송사, 바로 KBS의 현주소"라고 덧붙였다.

한 교양국 관계자는 <미디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업무보고 자리에서 김인규 사장이 '연말 예산안 날치기 때 발열조끼 예산이 통과가 안 됐고, 이를 KBS가 마련해주자는 좋은 취지'라고 설명했다고 하더라"며 "제작인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갑자기 성금모금방송을 하라고 하니, 내부 PD들 분위기도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발열조끼 성금 모금 방송에 대해 한상덕 KBS 홍보국장은 "얼마전에 연평도 포격사태도 있었는데, 국가기간방송으로서 국방에 대해 전국민적으로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한 국장은 "(교양국 업무보고에서 김인규 사장이) 당초 20억이 목표였는데,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원들도 ARS에 동참하고, 함께 힘을 모으자'는 이야기를 했다"며 "직접 아이디어까지 냈는지는 모르겠다"고 밝혔다.

'세금으로 방한용품이 지급되는데 왜 공영방송이 성금까지 모금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런 소수의 목소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10만 건 넘게 ARS가 접수됐다는 것은 한파 속에서 많은 국민들이 (발열조끼 성금 모금에) 공감을 하신 것"이라고 답변했다.

한 국장은 '방송편성 독립'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과 관련해서는 "사장이 아이디어 정도는 제공할 수 있지 않느냐. 편성시간대를 직접 지시한다거나 '프로그램을 넣어라, 빼라'고 한 게 아니다"라며 "예를 들어 구제역 아이템이 있다면, 국민 불안 해소하기 위해 보도본부 차원에서 좌담회를 하라고 하든가, 특집 프로를 만들라고 하는 정도는 사장으로서 할 수 있는 행위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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