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의 사의 표명에 언론시민사회가 "이 위원장 사퇴는 문재인 정부의 미디어 개혁 실패"라는 분석을 내놨다. 이 위원장의 '경질성' 사퇴로 방통위 독립성 훼손이 확인됐다는 게 시민사회의 판단이다. 시민사회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 위원장 사표를 수리하기 전 방통위의 독립성이 보장되고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고 촉구했다.

2일 언론개혁시민연대, 매체비평우리스스로, 문화연대, 서울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언론인권센터, 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 진보네트워크센터,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희망연대노조 등 9개 언론시민사회단체는 '이효성 위원장 사퇴는 문재인 정부의 미디어 개혁 실패다'라는 제목의 공동논평을 냈다.

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7월 22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열린 '제4기 방통위 2년 성과 및 계획발표' 기자회견에서 사의를 공식 표명했다. (사진=미디어스)

앞서 지난달 22일 이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 2기의 성공을 위해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방통위설치법상 3년 임기가 보장된 합의제 기구의 장이 전례없는 사의를 표명한만큼 여러 해석을 낳고 있다.

언론시민단체들은 사실상 이 위원장이 '경질' 형태로 방통위에서 물러난 것이라고 봤다. 이들은 "방통위는 대통령 소속 중앙행정기관이지만 법적으로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다"며 "그런 방통위 수장이 사퇴한다면 이유는 무엇이어야 할까. 위원회의 독립성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거나 본인이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을 해치는 경우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에 묻지 않을 수 없다. 방통위의 독립성은 충분히 보장되고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언론시민단체는 "이 위원장의 사퇴는 곧 문재인 정부의 미디어 개혁 실패"라고 규정했다. 4기 방통위의 시대적 요구를 '독립성'과 '시민거버넌스' 확보로 꼽고 있는데 방통위가 시청자·이용자 권리 중심의 정책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고, 이제는 이 위원장의 사퇴로 독립성마저 무너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안타깝게도 4기 방통위는 '무기력'한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거기엔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 없다 할 수 없다"며 대표적 사례로 정부의 허위조작정보 대책을 꼽았다. 이들은 "'범정부 허위조작정보 근절대책' 발표의 취소 사태는 방통위의 독립성을 훼손한 그 대표적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며 "무엇보다 '표현규제'와 같이 고도의 전문성과 정치적 독립성을 요구하는 사안에 대통령과 총리가 직접 개입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했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10월 이낙연 국무총리는 "가짜뉴스는 국론을 분열시키고 민주주의를 교란한다"며 검경에 엄정 처벌을 지시하고, '가짜뉴스'를 통제하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공동대응 체계 구축을 주문했다. 이에 방통위를 중심으로 '범정부 허위조작정보 근절 대책'이 급하게 만들어져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국무회의에서 실효성 문제가 제기돼 발표가 연기됐다. 방통위가 마련한 '자율규제' 중심의 대책에 대해 정부가 실효성 문제를 제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언론, 학계, 시민사회, 야당 등에서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정책을 내놨다는 비판이 쏟아지면서 범정부 대책은 무산됐다.

언론시민단체들은 "문재인 정부의 '가짜뉴스' 대응은 한국사회에 많은 시그널을 남겼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초기 국정운영 5개년 계획으로 '인터넷상 정치적 표현을 자율규제로 단계적 전환한다"고 밝혔으나 현재 어떠한 것도 이뤄진 것은 없다"며 "해당 내용을 이야기하면 관련 부처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밖에 돌아오는 게 없다. 그렇게 만든 건 바로 문재인 정부"라고 했다.

또 이들은 "'방송과 통신의 업무 일원화'를 위한 조직개편이 필요하다는 요구에도 묵묵부답했던 정부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사의 표명 자리에서 특히 아쉬웠던 점으로 방송·통신 정책 기구의 일원화가 되지 못한 점을 꼽았다. "방송·통신 정책은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모두 규제업무"라며 "한국의 방송·통신 정책이 바로서기 위해서는 규제업무를 방통위가 관장하는 게 맞다"고 작심 비판했다.

방송·통신 정책기구의 일원화는 시민사회의 요구이기도 하다. 방송·통신 정부조직의 최우선 목표는 '공공성'이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국민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다루는 미디어 정책의 최종결정 기구는 독립적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가 돼야 한다는 시민사회 요구가 이어져 왔다.

문재인 정부의 미디어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 아래 언론시민사회는 지난 7월 23일 '미디어개혁시민네트워크'를 출범시켰다. (사진=미디어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방송·통신 규제 정책을 관장하는 방통위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독임제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출범하면서 방통위의 기능이 축소됐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당시 미래부와 방통위 간 권한 혼재와 업무 중복으로 발생하는 부작용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인수위원회의 부재로 정부조직개편은 소폭에 그쳤고 방송·통신 정책기구의 재편은 제외됐다. 이에 현재 시민사회에서는 공공성 중심의 미디어 정책 범사회적 논의기구 설치 요구를 공식화했지만 정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다.

언론시민단체들은 "이 위원장의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라는 발언은 현재 방통위의 씁쓸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같은 상황이라면 방통위의 수장이 바뀐다고 한들 시대가 요구하는 미디어 개혁을 제대로 수행할 거란 기대를 하기 어렵다"며 "문 대통령이 사표를 수리하기 전에 '방통위의 설립 취지와 독립성이 존중되고 있는지'부터 살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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