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주중 예능의 최대 이슈는 아마도 놀러와의 세시봉이었을 것이다. 물량으로 따진다면 강심장의 대단위 이슈 폭격이 크겠지만 잔잔하지만 길게 가는 추억과 감동의 한방은 세시봉 친구들에서 더 큰 무게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로도 놀러와는 다양한 구성으로 시청자들에게 신선하고 흥미로운 스타 조합을 통해서 7년 장수 프로의 내공을 과시했다. 심지어 김영옥, 나문희, 김수미의 조합까지 이끌어낼 정도로 놀러와의 구성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시리즈 2주차까지 진행된 배우열전은 어쩐지 전만 못하다. 여전히 경쟁 프로에 대한 우세는 지키고 있다지만 방송 후 반응은 좋다도 아니고 나쁘다도 아니다. 사실 지난 주 나쁜 아저씨에 이어 이번 주 바쁜 아저씨로 테마를 잡은 언어적 재치는 일단 호감을 갖게 한다. 그보다는 연기대상이 외면한 드라마의 또 다른 중추 조연들을 집중 조명한다는 점에서 놀러와의 연예계를 바라보는 진지한 면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내용에 있었다. 모두에 세시봉 이야기를 꺼낸 것도 그런 문제를 비교하기 위해서다. 세시봉 때에는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네 남자의 우정과 함께 무엇보다 중요한 그 때의 노래들이 공감과 감동을 끌어냈다. 그런데 배우열전에는 배우가 없다. 배우열전이라는 말로 기대되는 것은 출연자들의 예능감 겨루기가 아니라, 부부 사이의 에피소드가 아니라 연기에 관한 것들일 것이다.

물론 노래와 달리 연기는 콘서트 형식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조연 배우들을 데려다가 그들이 어떻게 주연을 뛰어넘는 존재감을 갖게 됐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주고자 하는 노력이 보이지 않았다. 나쁜 아저씨에 이어 바쁜 아저씨까지 매 순간 재미는 있었지만 배우열전이라는 테마에 녹이기에는 토크의 내용이 주로 신변잡기 위주로 흘렀다.

이번 주 출연한 정보석이 ‘어렵게 만든 이미지가 예능을 통해 깨지는 것’이 저어됐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자이언트로 대단한 카리스마를 쌓은 배우가 방귀 얘기나 하고 있는 것은 어색한 부분이 있었다. 물론 크게는 그런 사소한 일상 이야기들을 통해서 배우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알게 되고, 그로 인해 호감을 갖게 되는 효과를 간과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배우열전을 시청할 때의 기대감은 그런 방귀가 아니라 연기 혹은 배우로서의 삶에 대한 속깊은 대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니까 놀러와 배우열전에는 여전한 웃음이 있지만 세시봉 같은 공감은 없었다. 오고가는 이야기들이 딱히 정보석, 조재현, 이한위가 아니어도 상관없는 것들이다. 예능이야 한 시간 즐기면 그만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정말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승승장구에 출연한 이경규는 “예능의 마지막은 다큐일 것”이라는 말을 했다. 30년 예능인의 한마디를 단순하게 해석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웃고 즐기면 그만이라는 말과는 상충될 것이다.

다시 말해 요즘 예능의 고민은 바로 다큐의 농도라는 것이다. 물론 단비의 실패는 예능의 다큐화에 대한 위험성도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다. 그런 반면 1박2일 외국인 노동자 특집의 눈물폭탄은 호평일색이다. 이를 두고 되는 집은 뭘 해도 된다고 단순화시킬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는 분명 예능의 자세를 잃지 않으면서 다큐의 감동을 얹는 그들만의 고민과 기술이 있을 것이다. 놀러와 역시 그런 부분에서 이미 세시봉을 통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열전에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배우열전이 드러내지 않는 의미도 있다. 방송사마다 성대하게 열리는 연기대상은 말 그대로 연기대상이 아닌 판촉시장으로 의미가 퇴색했다. 그런 속에서 비록 트로피도 수상 소감도 없지만 놀러와가 조명하는 조연배우들은 어쩐지 연기라는 것, 드라마라는 것에 대해서 말을 할 수 있는 또 다른 시상식 같은 행간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놀러와의 시선이 깊고 따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큰 그림은 참 잘 그렸는데 구체적으로 오브제의 선택에 있어서 실패한 느낌을 준다.

그렇게 내용의 아쉬움은 있었지만 예능만 놓고 본다면 아주 사소하게 겜보이(거짓말탐지기)를 통해서 포복절도의 한순간을 터뜨린 것은 아주 출중한 연출이었다. 조재현이 과거 아내와의 에피소드를 말하면서 오랜만에 다시 꺼낸 겜보이의 첫 번째 테스트에서 반응을 보이지 않자, 유재석과 김원희가 실망하는 눈치였다. 그때 제작진 말을 들은 김나영이 일어나 뒤편의 수납장에 가더니 우르르하고 여러 개의 겜보이를 꺼낼 때의 그 반전은 대단히 유쾌한 웃음을 주었고, 그런 기대 때문인지 겜보이는 다시 예능감(?)을 회복해 조재현에게 따끔한 전기충격을 그리고 시청자에게는 큰 웃음 한방을 선사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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