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소소한 일상을 사진에 담기 위해, 또 그 속의 평범한 이들을 돕기 위해 10여년 간의 사진기자 생활을 미련없이 그만둔 이가 있다. ‘사진작가’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러워 그저 ‘사진 찍는 사람’으로 불리길 원한다는 임종진씨(40)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 '사진 찍는 사람' 임종진씨. ⓒ곽상아
월간 ‘말’지와 한겨레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던 그는 이라크 전쟁 발발 직전 반전평화팀의 일원으로 바그다드에서 활동했고, 지난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여섯 차례 북한을 오가며 사진을 찍었다. 사진기자로서 굵직한 이슈들을 꽤 챙겼던 셈인데 갑작스럽게(?) 그만둔 이유는 뭘까.

“지난 10년간의 기자생활이 솔직히 저에겐 좀 맞지 않았어요. 기자는 촉박한 시간 속에서 재빠르게 상황을 파악해야 하잖아요. 제가 원래 느려서 그런 생활이 힘들기도 했고요.(웃음) 저는 ‘작은 일상’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이 좋아요. 내 시선이 곧 ‘정보’가 된다는 게 부담이 되기도 했고 겁도 많이 났었죠.”

대학로 이음아트 서점에서 ‘광석이형 미공개 사진전’

기자로서의 부담감을 벗어나 편하게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다는 임종진씨. 그는 그동안의 인생을 정리하는 의미로 사진전과 책을 펴내기로 했다. 지난 5일부터 2월 9일까지 대학로 복합문화공간 이음아트서점에서 열리고 있는 <임종진의 '광석이형 미공개 사진전'>도 그 중 하나다.

올해로 불혹의 나이인 40세에 접어든 그가 김광석 노래를 들어온 시간은 어느덧 17년. ‘광석이 형’과 함께 인생의 절반을 손잡고 걸어왔다. “형의 노래나 공연을 보면 우리 주변의 평범하고 소소한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와의 관계에서 겪게 되는 내재적 갈등과 감정, 이런 것들에 대해서 말이죠. 살면서 너무 힘들 때 ‘나도 그래’라고 어깨를 툭툭 쳐줄 수 있는, 그게 큰 위로가 되는 사람이에요.”

“당신이 기억하는 김광석은 어떤 사람이냐”는 물음에 임씨는 물 흐르듯이, 차분한 성격 그대로 하나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낮이나 오전 보다 밤이나 오후가 더 눅눅해지는 시간이잖아요. 낮은 ‘어설프고’, 밤은 ‘무르익고’, 새벽은 ‘젖어드는’ 거죠. 특히 밤에는 지나온 시간에 대해 후회도 많이 하게 되고 두려움도 많이 느끼죠. 그런 밤이 되기 전 시간인 ‘오후’가 주는 여유가 좋아서, 그 시간 속에서 형의 노래를 더욱 편하게 들을 수 있어서 ‘그가 그리운 오후에’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광석이 형’이라는 호칭에서 그에 대한 애정과 친분이 묻어나는 듯했다. 하지만 “가끔 연락해서 밥도 먹는 사이였냐”는 물음에 그는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답했다.

▲ 임종진씨가 찍은 김광석 미공개 사진. 가장 좋아하는 사진 가운데 하나다. ⓒ임종진
“아니에요. 말 글대로 전 그저 ‘팬’이었어요. 91~92년쯤 파랑새 극장에서 처음 보고 꽂혀버렸죠. 당시 사진을 처음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의 인간적 매력을 꼭 사진으로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형과 아주 친숙하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이 정도의 관계가 저는 딱 좋네요.”

올해는 김광석이 죽은 지 12년이 되는 해. 그는 ‘광석이 형’의 자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할까. “힘 내. 나도 너와 다르지 않아”라며 늘 엉덩이를 툭툭 쳐주던 사람이 스스로 생을 접어버린 것에 대해 일종의 ‘배신감’이 들진 않았을까.

“처음엔 실망감이 컸죠. 그래서 형이 죽은 후 그냥 음악만 들었어요. 그동안 찍었던 필름을 모두 벽장 속에 처박아놨었죠. 필름 보면 형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니까.. 하지만 이제와선 ‘이해’가 되더라고요. 지금도 자살이니 타살이니 의견이 분분한데, 제 생각엔 형이 스스로 인생을 그냥 놓은 게 맞은 것 같아요.”

‘경계와 구분’에 대한 이야기 해보고 싶다

“돈과 권력, 인종, 가난한 이들, 그리고 우리 안에 내재된 수많은 ‘경계와 구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는 그의 앞으로 인생 계획이 궁금해졌다.

“2004년도에 캄보디아에 갔었는데 한창 기자직에 대한 갈등이 컸어요. 사진기자를 계속 할 것인가, 자원봉사를 할까 뭐 이런 고민들. 결론은 ‘사진’과 ‘자원봉사’였죠. ‘사진작가’가 되려고 기자를 그만둔 건 절대 아니에요. 그저 작고 소소한 일상을 사진으로 담고 싶을 뿐이죠. ‘사진작가’라고 규정되는 게 불편해요. ‘사진계의 떠오르는 샛별’이 되고 싶은 마음도, 능력도 없고요. 그래서 사진전 장소도 전시장이 아닌 편안한 이곳(복합문화공간)을 선택했죠.”

기자직을 그만둔 것에 정말 털끝만큼의 미련도 없을까. 안정적 수입과 사회적 명예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는 “행복하냐”는 물음에 주저없이 “행복하다”며 잔잔한 웃음을 지었다.

그가 가는 길엔 사진이 언제나 함께

“정말 행복합니다. 불안정하지만 진정한 내 안의 행복을 찾고 싶었으니까요. 수입도 별로 없어서 조카들에게 장난감을 사주지 못하지만 말이죠. 딱 하나 아쉬운 건 ‘사람들’이에요. 한겨레 사진부 사람들 정말 좋았는데. 제가 취재, 편집팀 쪽과도 친했거든요. 같이 어울리는게 정말 좋았는데 이런 점은 좀 아쉬워요. 지금은 혼자니까.”

앞으로 그는 외국으로 떠나 자원봉사를 할 계획이다. ‘소명의식’이라고 여기는 사진도 물론 그와 함께 간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김광석 노래 중 하나는 바로 ‘내 사람이여’. “내가 너의 아픔을 만져줄 수 있다면 이름없는 들의 꽃이 되어도 좋겠네”라는 가사처럼 그는 타인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이름없는 들의 꽃’이 되려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