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끝내 ‘낙마’했다. 형식은 ‘자진사퇴’였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민주당의 잇단 의혹 제기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단호한 ‘정동기 반대’ 앞에 한나라당도 결국 ‘불가’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과 조중동, 한나라당이 오랜만에 한 목소리로 ‘반대’를 외친 덕분에, 그는 사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다다랐다.

▲ 12일 오전,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사퇴 의사를 밝히며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렇다면 정동기 후보자가 사퇴하는 과정에서 KBS, MBC, SBS 등 방송3사는 어떠한 역할을 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방송3사의 보도는 아무런 파급력도, 영향력도 없었다. 그 어떠한 매체보다 큰 힘, ‘전파’라는 공공재를 갖고 있음에도 방송3사의 보도는 논외였다. 민주당에서 제기한 의혹 가운데 일부만을 전한 방송 뉴스에게 ‘검증’이라는 언론의 책무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과정에서 여론을 주도한 건 방송 보도가 아닌, 조중동이었다.

방송3사가 검증의 역할을 포기한 것은 비단 정동기 후보자에 대한 보도 뿐이 아니다. 지난 12월31일 청와대가 발표한 장관급 후보자 가운데는 정동기 후보자를 제외하고도 문화체육관광부 정병국, 지식경제부 최중경, 국민권익위원장 김영란, 공정거래위원장 김동수, 금융위원장 김석동 후보자 등 수많은 이들이 있다. 그나마 정동기라는 이름이 가장 많이 방송에 노출되었을 뿐, 다른 후보자들에 대한 보도는 전무했다. 간혹 최중경과 정병국이라는 이름이 깜짝 등장했을 뿐이다. 정부의 내각을 책임질 주요한 자리임이 분명하지만, 현재 방송 보도를 통해 후보자들의 면면을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부동산 투기 의혹이 나오고 있는 최중경 후보자의 경우, 방송3사의 보도는 한결같다. ‘무관심’ 그 자체다. ‘최 후보자 부인이 개발제한구역의 밭을 사들인 뒤 되팔아 수억 원의 차익을 얻었다’는 민주당의 의혹 제기를 바탕으로 딱 한 번만 짚었을 뿐이다. 민주당이 정동기 후보자에 ‘올인’ 하느라 의혹 제기가 뜸해지자 덩달아 방송3사의 보도 역시 같이 뜸해졌다.

정병국 후보자와 관련한 방송3사의 보도도 마찬가지다. 현재 민주당, 창조한국당 등 야당들은 정 후보자와 관련해 스폰서 의혹, 땅 투기 의혹, 정치자금법 위반 의혹 등을 제기하고 있지만, 이를 주요하게 보도하거나 다루는 방송 보도는 없다.

그나마 최중경 후보자와 정병국 후보자와 관련한 의혹을 정리한 보도는 지난 12일 SBS <8뉴스>의 보도가 유일하다. SBS는 최문순 민주당 의원 등이 제기한 정병국 후보자와 관련한 의혹과 최중경 후보자와 관련한 의혹들을 함께 전했다. 야당에서 제기한 의혹들을 단순히 정리하고, 이에 대한 후보자들의 해명을 함께 전한 보도였지만 방송3사 가운데 유일하게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참으로 귀한 보도가 아닐 수 없다.

▲ 1월12일치 MBC <뉴스데스크> 화면 캡처
방송 뉴스가 정부, 권력을 향해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을 망설이고, 마땅히 해야 할 언론의 사명과 책임을 방기한 결과는 어떠할까. 참혹, 그 자체다. 최근 MBC <뉴스데스크> 보도가 대표적인 예가 될 거 같다.

지난 12일 <뉴스데스크>는 탤런트 현빈의 해병대 자원입대 소식을 전했다. 뉴스는 친절하게도 현빈이 어떠한 배경에서 해병대를 지원하게 되었는지까지 전했다. 소속사 관계자의 발언을 통해서는 ‘현빈이 어렸을 때부터 육사, 경찰대 진학이 꿈일 정도로 남성적인 성향이 뚜렷했었다’는 참으로 놀랍고도 새로운(?) 사실도 전했다.

앞서 11일에도 연예인 관련 뉴스가 <뉴스데스크>에 등장했다. 걸그룹의 킬힐 열풍을 다룬 보도였다. 걸그룹이 구두굽이 높은 ‘킬힐’을 신고 과격하게 춤을 추는 것은, 자칫하면 크게 다칠 수 있고 나아가 신체장애까지 일으킬 수 있다는 게 보도의 핵심이다.

<섹션TV 연예통신>에나 나올 법한 뉴스가 버젓이 공영방송의 메인뉴스인 <뉴스데스크>를 통해 보도되고 있는 게 지금 MBC의 현 주소다. MBC가 다른 현안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내고, 제대로 보도를 하고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반문해 본다. <뉴스데스크>, 나아가 방송 뉴스들이 구제역 파동, 홍익대 청소 노동자 사태, 한진중공업 사태 등 우리 사회가 관심 가졌어야 할 사안들에 대해 얼마만큼 관심을 기울였냐고. 그나마 ‘괜찮은’ 보도로 평가받았던 MBC뉴스, 하지만 최근 들어 ‘이제는 MBC뉴스 안 본다’ ‘MBC뉴스 중에서 일기예보만 본다’는 누리꾼들의 빈정섞인 감상평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심각한 상황은 분명 맞다.

▲ MBC, KBS, SBS 사옥 ⓒ미디어스
‘언론의 검증’ 노력 대신 현빈과 걸그룹을 택한 방송 뉴스를 향해, 시청률을 올릴 수 있는 가벼운 사안만을 쫓는 방송 뉴스를 향해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한 번 당부한다. 방송사, 그리고 방송 기자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엄청난 특권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언론이 검증 노력을 소홀히 할수록,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간다’는 뻔하디 뻔한 말을 하지는 않겠다. 다만, 지금 그들이 하고 있는 역할에 비해 그들이 누리고 있는 것들이 지나치게 과분하다는 생각이 앞설 뿐이다.

오는 17일부터 각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시작된다. 각 후보자들에 대한 의혹을 틈틈이 제기하며 기회를 엿보고 있는 민주당 등 야당으로서는 인사청문회에서 적지 않은 자료, 말들을 쏟아낼 것으로 보인다. 또 다시, ‘받아쓰기’만 하는 언론이 되지 않기를 당부한다(그나마 받아쓰기라도 할까?). 따뜻한 기자실에 앉아 정당이 쏟아내는 보도자료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닌, 그들의 정성과 노력이 깃든 ‘진짜 보도’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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