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새벽(한국시각) 열린 2011 카타르 아시안컵 조별 예선 첫 경기 바레인전에서 조광래호는 승리를 거두고도 마냥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후반 39분, 중앙 수비수 곽태휘가 패널티 박스 안에서 범한 파울이 퇴장 판정으로 이어지면서 중요한 수비 자원을 한 명 잃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상대 선수와 경합하는 과정에서 몸으로 밀었기에 파울을 줄 수는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전에 바레인 선수들이 범한 파울에 비해서는 그래도 '양반 수준'이었기에 기껏해야 경고를 받는 정도에 그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오만 주심 압둘라 알 힐라리는 고의적으로 파울을 범했다고 보며 가차 없이 레드카드를 꺼내들었고, 당사자 곽태휘와 이 상황을 본 조광래 축구대표팀 감독은 아주 황당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이 판정 하나로 한국은 후반 교체 투입한 손흥민을 다시 빼고 중앙 수비수 조용형을 집어넣으며 수비를 강화하는 전략으로 남은 시간을 버텼습니다. 경기를 이겼지만 뭔가 찜찜한 느낌을 지우지 못했던 심판의 황당한 판정이었습니다.

▲ 바레인전에서 퇴장 명령을 받은 곽태휘(왼쪽)와 경고를 받은 이정수(가운데)
이날 힐라리 주심은 원활하지 못한 경기 운영으로 빈축을 샀습니다. 바레인 선수가 발바닥을 보이면서까지 심한 태클로 파울을 범했을 때는 구두 경고를 주는 수준에 그친 반면 한국 선수들이 가벼운 몸싸움으로 바레인 선수들을 제압할 때는 계속 휘슬을 불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선수들의 맥을 끊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TV 화면을 통해 경기를 지켜보며 해설한 차범근 해설위원조차도 '심판이 너무 자주 흐름을 끊는다. 휘슬을 자주 분다'는 말을 했을 만큼 경기 운영은 그렇게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심한 파울을 바레인 선수들이 더 많이 범했음에도 단 한 선수에게만 경고를 준 것에 비해 한국 선수에게는 이정수, 곽태휘에게 가차 없이 옐로카드와 레드카드를 한 장씩 꺼내들어 황당한 상황을 보여줬습니다. 이전부터 문제가 됐던 중동 심판의 이해할 수 없는 판정이 아시안컵 첫 경기부터 도마에 오른 것입니다.

사실 이 경기에 중동 심판이 배정된 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불공정했습니다. 통상 동아시아, 중동 팀이 대결을 펼친다면 태국이나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나 호주 심판을 기용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지만 이 경기에 대회 주최측은 바레인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오만 출신 주,부심을 기용했습니다. AFC(아시아축구연맹)가 '경기를 벌이는 해당 국가 또는 클럽에 속한 심판이 아니면 누구든 볼 수 있다'는 원칙을 적용해 '제3국'의 주심을 선임해 배치했기 때문입니다. 공정한 경기를 위해 경기를 펼치는 팀과 심판의 국적이 어느 정도 고려돼야 했던 것을 감안하면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건 사실이었습니다. 다행히 적재적소에 골이 터지면서 이기기는 했지만 토너먼트 경기에서 이런 주, 부심 배치가 이뤄진다면 정말로 다시 생각해봐야 할 정도로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많았습니다.

중동 심판의 '이해하기 힘든 판정'은 이미 얼마 전에도 한 번 겪어본 적이 있습니다. 바로 아시안게임 3-4위전 이란과의 경기 때였습니다. 당시 한국은 이라크 주심의 황당한 판정으로 이란 선수 11명과 주, 부심 3명을 더해 14명과 싸우다시피 하며 악전고투를 겪었습니다. 다행히 박주영, 지동원의 연속 2골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드라마틱한 승리를 맛봤지만 중동 심판의 '보이지 않는 편파 판정'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습니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를 많이 봐오기도 했는데 문제는 AFC 자체적으로 이러한 문제에 대해 깊이 인식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심판 문제에 대해 몇몇 나라가 꾸준하게 이의를 제기했지만 AFC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듯 이렇다 할 변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대륙에 비해 워낙 땅덩어리가 넓어 어느 정도 권역별로 심판을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출 수 있는데다 국제 심판 자원도 풍부해서 어떻게 보면 월드컵에 버금가는 심판을 양성할 수 있을 텐데도 아직까지는 심판 질 향상에 대해 그렇게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대회 초반부터 중동 특유의 침대축구가 심판 문제와 더불어 또 한 번 도마에 오른 분위기입니다. 실제로 일본은 요르단과의 경기에서 0-1로 뒤지는 과정에서 요르단의 침대 축구 때문에 자주 맥이 끊기면서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또 중동에서는 나름대로 강팀인 사우디 아라비아조차 한 수 아래인 시리아의 침대 축구에 발목이 잡히면서 대회 첫 이변의 희생양이 됐습니다. 별다른 심한 몸싸움이 없었음에도 연기하듯 고통을 호소하며 시간을 끄는 침대축구는 결과적으로 승리한 팀에게는 좋을 수 있겠지만 진 팀뿐 아니라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답답함만 더욱 자극한 꼴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대회 초반부터 침대축구는 위력을 발휘하며 '씁쓸한 이변'을 또 만들어냈습니다.

이번 아시안컵을 통해 AFC는 아시안컵의 위상 뿐 아니라 아시아 축구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것으로 기대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에 걸맞게 박지성, 혼다 케이스케, 팀 케이힐 등 유럽 빅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대거 출전하며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되는 측면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중동 축구의 전통적인 고질병이 계속 해서 나타나 수준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갖지 않는 게 좋을 듯 보입니다. 아시안컵의 권위가 추락할 뿐 아니라 중동 그리고 아시아 축구 전체의 발전도 따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 텐데도 개선의 여지가 드러나지 않는 것은 여러모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오일 달러'를 앞세워 양적인 발전에만 집착하는 것보다 큰 대륙에 걸맞게 월드 클래스 수준의 경기력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 만들어야 할 텐데 벌써 대회 초반부터 고질병이 도진 듯합니다. 의외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흥행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데 이런 장면이 더 많이 나타난다면 카타르 아시안컵 대회 자체 나아가 2022년 월드컵에 대한 기대치도 확 줄어들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당당하지도, 공정하지도 못한 방법으로 승리를 챙겨 챔피언 팀을 배출시키는 것보다 정정당당한 명승부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아시아 축구의 발전 가능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걸 AFC나 중동 팀들이 조금이라도 인식하고 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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