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위해서 나라도 팔아먹을 레전드급 첩보원 정우성을 민폐 정우로 확정지은 아테나 9회였다. 아니 이정도면 민폐에서 그칠 일이 아니라 국폐라고 해야 할 판이다. 거기다 연출진의 무성의까지 겹쳐서 아테나는 점점 더 블록버스터급 허섭 드라마가 되고 있다. 모든 상황을 정리하자면, 이정우는 다분히 억지스러운 러브라인 만들기에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 이정우를 민폐 캐릭터로 전락시키는 러브라인이 아테나 부진의 탈출구가 되어 줄지는 의문이다.

국제 비밀조직 아테나는 김명국 박사를 납치했으나 최시원의 활약으로 핵심 부품인 SNC를 빼앗기고 말았다. 그것을 되찾기 위해 윤혜인 납치극을 꾸민다. 많은 경우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은 사랑 때문에 아주 중요한 의무를 저버리곤 한다. 아테나도 역시나 그 공식을 채용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둘 사이가 아직은 그렇게 뜨거운 상태가 아니라는 점에서 정우의 행동에 공감을 갖기는 어려운 상태였다. 뭐든 때가 무르익어야 제 맛을 내는 것이다. 뜸 들이는 시간을 아까워해서는 맛있는 밥맛은 기대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게 뜸 들일 새 없이 정우를 민폐 첩보원으로 만든 이유는 혜인이 정우를 마음으로 받아드릴 결정적인 계기를 주기 위한 목적 때문이었다.

세상의 모든 첩보물은 기본적으로 모두 픽션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반드시 뒤따라야 할 조건이 있다. 바로 개연성이다. 정우와 혜인의 본격 러브라인을 위한 혜인 납치 자작극은 그 개연성을 잘 갖추지 못했다. 첫째, 정우와 혜인은 첩보원이며 당연히 적에게 잡혔을 때의 행동수칙이 있다. 그런 정도는 이미 수많은 영화를 통해서 잘 알려진 상식에 해당하는 것이다. 더욱이 혜인은 국정원 블랙으로 대단히 강도 높은 훈련을 받은 최정예 요원이다.

그런 혜인이 그저 물에 잠시 담갔다고 바로 SNC를 갖다 바치겠다고 해버리는 것은 지나치게 쉬운 포기였다. 다른 영화 예를 들 필요도 없다. 아이리스 초반에 이병헌과 정준호가 요원으로 채용되기 위해 지독한 고문을 겪어야만 했던 것을 떠올리면 된다. 아테나 제작진은 자신들이 만들었던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정우가 레전드급 첩보원으로서 갈등을 겪을 충분한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 채 대본대로 그저 “그 여자부터 풀어줘”를 외치게 했으니 그 감정에 이입하기보다는 “뭐 저런 개념 없는 첩보원이 있나?”하고 화가 날 상황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둘째, 이후 SNC를 가져오고 NTS 본부에 와서도 자신이 놓인 상황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는다. 납치범이 “NTS에도 우리 귀가 있다”는 말 한마디 때문에 자기 조직 전부를 믿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태도를 보인다. 사랑하는 여자가 죽음의 위기에 놓여 있으니 패닉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호의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정도로 심약한 남자가 아테나라는 거대한 조직을 상대로 한 최고 요원이라니 NTS는 아무래도 예비군보다 못한 것이 아닐까 싶다.

셋째, 민폐 정우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장면이다. 마침 정우를 통해서 김명국 박사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일본에 온 김기수의 도움으로 정우는 한 공동묘지에서 SNC와 혜인을 교환하기로 한다. 그런데 거기서 정우는 복면을 뒤집어쓴 인질의 얼굴도 확인하지 않은 채 SNC를 건네준다. 그러고는 인질을 풀어달라고 요구하고, 이에 납치범들은 인질을 총으로 쏴 죽인다. 그러나 그 인질은 혜인이 아니라 김명국 박사였다.

민폐 최정예 첩보원 정우는 인질을 확인하지 않은 것도 부족해 그토록 사랑하는 여자의 체형을 늙은 남자 몸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눈썰미도 없었다. 애초에 인질의 외형만 보고도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정우는 몰랐다. 아니 몰라야 했다. 개연성 없이 치닫는 스토리 때문에 정우는 갈수록 민폐 요원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번 회에도 여전히 눈을 놀라게 하는 멋진 액션신이 있었지만 그런 화려함이 스토리의 허술함에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그러나 아무리 화려한 액션이라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드라마가 살지 못한다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매회 문제가 노출되는 설정에 무리한 스토리 전개로 인해서 아테나는 불량 드라마가 되고 있어 배우들이 아깝게 만들고 있다. 또한, 정우성의 표정에서 첩보원의 긴장감보다는 멜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참 아쉽기만 하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