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인 가족의 5남매는 어린 시절 잠시 머물렀던 고택에서 저마다 안 좋은 기억을 가지게 되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이들은 결국 다시 그 고택, 힐 하우스의 유령으로 돌아온다. 바로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힐 하우스의 유령>의 내용이다. 오래된 집, 그곳에서 있었던 어떤 사건으로 말미암아 고통 받지만 그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 <힐 하우스의 유령>는 오래된 그리고 기묘한 분위기의 집을 배경으로 한 '호러' 장르의 대표 작가 셜리 잭슨의 대표작이다. 심지어 미스터리 스릴러, 공포환상 문학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딴 상이 제정됐을 정도다. 그런 셜리 잭슨의 또 다른 '고택'을 배경으로 한 작품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가 이번에는 영화로 찾아왔다.

마녀가 되어버린 언니

셜리 잭슨의 또 다른 대표작 <제비뽑기>. 한 마을에서 77년 전통을 이어온 제비뽑기, 그런데 이 제비뽑기는 다름 아닌 마을 주민 중 한 사람을 뽑아 마을 아이들이 정성스레 쌓아올렸던 돌로 쳐 죽이는 것. ' 우리 모두의 삶에 보편적인 몰인간성과 무의미한 폭력성이 있다는 것을 불쾌하게 각색해서 보여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의도는 이런 서사를 통해 드러난다.

영화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스틸 이미지

이제 또 다른 마을이 있다.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고택에 고립된 채 살아가는 자매, 메리캣(테이사 파미가 분)과 콘스탄스(알렉산드라 다드다리오 분). 몇 년 전 그 고택에서 살인 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으로 자매의 부모가 독살당했다. 삼촌은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하반신을 못 쓰고, 정신적 충격으로 그날의 시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살인용의자가 된 건 바로 큰딸 콘스탄스. 결국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언니 콘스탄스를 마녀 취급을 하고, 이들 자매에게 극도의 적대감을 표시한다.

언니 콘스탄스는 그때 이후로 '광장 공포증'을 겪어 집밖에 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태, 그래서 동생 메리캣이 일주일에 한번 장을 보러 마을에 간다. 그녀가 등장하면 홍해 바다 갈라지듯 피해서는 마을 사람들, 그것도 모자라 욕을 하는 아이들, 물건은 팔지만 벌레 보듯 하는 가게 주인과 손님들, 그리고 커피를 마시러 들어간 카페에서 만난 언니의 옛 연인은 대놓고 그녀와 언니를 조롱하고, 그곳 노인들 역시 대놓고 혐오감을 드러낸다. 그러던 마을 사람들의 악의는 결국 블랙우드 저택에서 일어난 화재 현장에서 불붙으며 광란의 카니발을 벌인다.

영화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스틸 이미지

콘스탄스와 메리캣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흡사 중세시대 마녀사냥을 떠올리게 한다. 중세시대 누가 마녀가 되었을까? 마녀사냥에서 죽어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여자, 그중에서도 ‘보호받지 못한’ 여자들이다. 가난한 과부, 병든 소녀 그리고 버림받은 여인들이다. 사회로부터, 그리고 그 사회의 중심이 된 남자들로부터 외면 받은 그들은 그리고 그들의 처지는 '마녀'라는 이름 아래 잔혹한 살해의 수단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블랙우드 가문의 비극에서 살아남은, 심지어 살해 용의자가 된 콘스탄스와 메리캣은 마을 사람들의 더할 나위없는 먹잇감이 된다.

이 가난한 마을 사람들과 달리, 아마도 중세시대부터 부를 누려왔던 블랙우드 가문에 대한 계급적 적대감을 두 자매에 대한 '마타도어'로 치환시킨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 비극의 ‘실체’가 중요하지 않다. 77년 된 <제비뽑기> 속 마을의 전통 그 유래가 중요하지 않듯, 마치 까마귀들이 병든 동료가 발견되자마자 쪼아죽이듯 그렇게 쪼아대는 그 '악의적 관습'이 마을을 사로잡는다. 심지어 한때 언니와 사랑해서 야반도주를 하려다 아버지로 인해 실행에 옮기지 못한 소방대원조차 '진실'대신 동생 메리캣에 대한 극도의 혐오로 자신의 상처를 대신한다.

보호받지 못한 자매

영화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스틸 이미지

그리고 그 맞은편에 마법적 주술에 의존해서 자신을 지키려 안간 힘을 쓰는 메리캣과, 블랙우드 성에 갇혀 박제된 인형처럼 살아가는 언니 콘스탄스가 있다. 그런데 그런 아슬아슬한 이들 자매의 보호막이 사촌이라며 찾아온 찰스(세바스챤 스탠 분)를 통해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스테이시 패슨 감독이 2013 베를린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바 있는 <커피 한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풀어냈던 동성의 관계는, 영화 속 언니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메리캣과 그런 메리캣에게 '사랑해'라며 보상해주는 언니의 관계를 통해 긴장감 있게 전환된다. 그리고 이 미묘한 자매애는 사촌이라며 등장하는 '남자' 찰스을 통해 이방인에 대한 긴장감 이상의 성적 긴장감을 낳으며 블랙우드가 파국의 또 새로운 단초가 된다.

남자 아니, 남성으로 인한 자매의 위기, 그리고 그건 그동안 본인들조차 드러내지 않았던 '비밀'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왜 콘스탄스가 사랑하는 이와 떠나려다가 떠나지 못했는지, 부모님이 살해당한 그날 밤 블랙우드가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니 그 이전에 블랙우드가의 비극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찰스'의 등장은 그의 얄팍한 잔꾀가 도발한 잔잔했던 자매의 일상을 궤멸시키는 것을 넘어, 위기의 순간 그를 아빠라고 부르며 절규하는 자매를 통해 봉인되었던 진실을 드러내기에 이른다.

영화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스틸 이미지

그 봉인된 진실에는 마을 사람들조차 부럽다 못해 질시하고 저주했던 '부'의 상징 블랙우드 가가 무색하게, '가족' 내에서 보호받지 못한 아이들, 여성이 있다. 보호받지 못한 아이들의 상처는 결국 가문의 비극을 낳고, 다시 세상의 보호마저 닫힌 그녀들은 안식처인지 감옥인지 모를 '블랙우드'로 침잠한다.

영화는 아름다움이 '호러'가 되는, 색채감 넘치는 미장센을 통해 블랙우드가의 비극을 상징해 낸다. 주술에 자신을 맡긴 기괴한 소녀와 인형처럼 박제되었던 언니의 끈끈한 사랑 속에 숨겨진 블랙우드 가문의 비밀을 미스터리의 한 축으로 하며, 거기에 이 자매들을 마녀사냥으로 몰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무조건적인 증오의 카니발을 끼얹으며 보호받지 못한 소녀들의 비극은 절정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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