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정서를 배신한 젠틀맨 되기로 곤욕을 치른 남자의 자격이 마치 그 잘못을 씻으려는 듯 귀농을 택했다. 말이 귀농이지 아직은 전라도 고창에 마련한 시골집을 찾아 밥이나 해먹고 오는 정도밖에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겨울에 땅 파고 씨를 뿌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남자의 자격이 지금까지 무엇을 특별히 해서 호응을 받은 것이 아닌 것처럼 한 것 없이도 귀농 겨울이야기는 마침 내린 수북한 백설기 같은 눈만큼이나 따뜻한 내용을 전해주었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남자의 자격은 운이 참 좋다. 사실 OO되기, 남자의 자격이 택한 101가지의 무엇이 돼보는 것은 식상해진 포맷이다. 이미 무한도전에서 닳도록 해온 것이라 어지간히 잘하지 않고는 시청자 호응을 기대하기 어려운 탓이다. 주말에만 국한해서 볼 때 이 OO되기, OO해보기의 아류는 더 있다. 아바타를 버린 뜨거운 형제들이 그렇고, 오늘을 즐겨라도 크게는 같은 범주로 가고 있다. 그리고 SBS 영웅호걸이 그런 식이다. 그러나 그중에서 누구도 빛을 보고 있지 못하다.

그런 속에서 남자의 자격 101가지 도전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는 데는 많은 요인이 작용하고 있겠지만 지난해 KBS 연예대상의 주인공 이경규의 힘이 무엇보다 클 것이다. 그렇지만 이경규가 항상 잘하는 것은 아니고, 그의 선택 역시도 늘 옳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가 지난주 젠틀맨되기를 뒤집지 못하고 그대로 수행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어떤 순간에는 단지 PD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소극적인 출연자의 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고창집에 가서 정한 배낭여행에 대한 결론 역시도 그럴 수 있다. 배낭여행은 일반인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연예인에게는 더욱 낯선 여행 형식이다. 그렇다고 완벽한 배낭여행도 아닌 것이 어차피 제작진이 따라다닌다면 그것은 배낭여행의 형식만 빌려 올 뿐인 것이다. 그래도 요즘 예능의 핵심 코드인 진정성을 살리기 위한 최선의 인내를 발휘하겠지만 그렇다면 그들이 정한 유럽은 올바른 선택은 아닐 수 있다.

그 중에서 유일하게 김국진만 인도를 거론했다. 선진국 유럽과 달리 모든 환경이 열악한 곳 인도. 그리고 갠지스강과 바라나시. 이 두 곳을 비교할 때 아마도 대부분은 유럽을 택할 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여행 가이드 방송을 통해서 유럽이건, 인도건 아주 생소한 곳은 없다. 그래도 남자의 자격이 가진 3D 콘셉트를 생각한다면 좀 넉넉한 유럽여행보다는 혹독한 환경의 인도를 가고 싶어 하는 김국진의 소수 의견이 더 낫다고 보인다.

물론 배낭여행은 어디를 가더라도 고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금까지 남자의 자격이 해온 것들 중에서 시청자 반응이 좋았던 것들에는 모두 시쳇말로 개고생이 전제된 것들이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기왕에 하는 고생 좀 더 하더라도 인도행이 더 건질 것이 많지 않을까 싶다. 과거 미국과 유럽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대세인 시대도 이미 지났고, 남자의 자격이 더 과감한 도전을 하기 위해서는 인도를 선택하기를 바란다.

인도하면 떠오르는 바라나시만 해도 청년이 보는 것과 중년이 보는 것은 또 다를 것이다. 30대의 윤형빈과 50대의 이경규 그리고 김태원과 김국진의 시각도 참 궁금하다. 2010년은 남자의 자격이 의외의 성공을 거둔 한 해이며, 그것은 노장 이경규를 다시금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는 데 최고의 수훈갑이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조금은 편히 가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을 것이며, 해외 여행하면 유럽부터 떠올리던 세대인 것도 인정하지만 프로그램을 진정 위한다면 소수 의견 김국진의 시각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난주 젠틀맨되기로 배가 불렀다는 힐난을 들었다. 그리고 장기 불황 속 해외여행에 대한 그리 좋지 않은 시각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유럽행을 결정하게 된다면 역시나 같은 비난을 접할 가능성이 높다. 그것보다는 제대로 고생하고 그것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남자의 자격이 주어온 감동을 줄 수 있는 인도행을 적극 권유하고 싶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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