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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가든 길라임2.0, 최고의 기억상실[블로그와]하재근의 TV이야기
하재근 | 승인 2011.01.10 09:51

<시크릿가든>이 기억상실 소재로 위력시위를 감행했다. 너무 흔해빠져서 이름만 들어도 짜증나는 기억상실조차도 <시크릿가든>이 하면 다르다는 위력시위 말이다.

정말 기억상실이다. 기억상실! 얼마나 진부하고 맥 빠지는 단어인가. 한국 드라마에서 기억상실이란 불륜, 출생의 비밀, 삼각관계 등과 동급이다. 그만큼 '개나 소나' 써먹고 또 써먹는 수법이다. 어느 드라마에서 기억상실 설정이 나왔다고 하면 '아 또?'하는 말부터 튀어나온다.

<시크릿가든>은 이번 주에 해도 너무 했다. 기억상실뿐만이 아니라 혼수상태까지 있었다.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혼수상태로 누웠다가 또 갑자기 깨어나는 것 또한 우리 드라마의 단골 메뉴다. 그야말로 진부의 끝을 달린 막장 설정이었다.

하지만 재밌었다. 이게 놀라운 점이다. 특히 일요일에 방영된 <시크릿가든> 18회는 한 회 안에서 사람을 울리고 웃기는 신기를 발휘했다. 18회를 보면서 너무나 뻔한 멜로 설정에 울컥하는 나를 보고 놀랐고, 기억상실 이후에 오히려 더 재밌어지는 것에 또 놀랐다.

   
   

울리고 웃기고, 이건 너무 하잖아

개인적으로 신파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17회의 눈물과잉은 조금 부대꼈다. 하지만 18회에서 김주원의 몸으로 깨어난 길라임이 '똘추가 주원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릴 때는 함께 슬퍼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이렇게 너무나 뻔한 설정에서조차 아픔의 정서를 끌어내는 것이 <시크릿가든>의 매력이다. 계급차이에 바탕한 사랑이야기는 수많은 멜로물의 단골 설정이지만 모두 아프지는 않다. 그런 점에서 <시크릿가든>은 희귀한 케이스다.

<시크릿가든>의 또 다른 미덕은 유쾌하고 달달하다는 데 있다. 18회는 후반부에 이것을 보여줬다. 여기엔 기억상실이 아주 효과적으로 쓰였다. 이렇게 필요할 때 적재적소에 사용되는 것이라면 불륜이든, 출생의 비밀이든 누가 뭐라나? 다른 작품들은 맥 빠지는 표현으로 진부한 설정을 단순반복만 한다면 <시크릿가든>은 거기에 숨을 불어넣는다.

   
   
18회에서 기억상실은 신파로 지나치게 축축해지던 길라임과 김주원의 이야기를 포맷한 효과를 낳았다. 사랑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됐다. 그리고 <시크릿가든>은 자기 자신을 비틀었다.

김주원은 또다시 추리닝 자랑을 하고, 이벤트 자랑을 하고, 자기 집으로 오라는 타령을 하고, 오만하게 길라임을 무시한다. 김주원의 어머니는 또다시 길라임을 붙잡고 앉아 막장 신파 설정을 반복한다. 그런데 길라임은 초반의 길라임이 아니다. 김주원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게 된 길라임 2.0이다. 그리하여 모든 상황은 버전업된다.

오만방자한 김주원이 당당해진 길라임에게 끌려가는 것은 <시크릿가든> 초반 이상으로 유쾌했다. 추리닝 자랑도 초반보다 웃겼다. 길라임이 더 이상 김주원 어머니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아들을 달라'고 할 때는 통쾌했다. 길라임이 자기 입으로 '내 액션에는 라벤다향이 있거든'할 때는 <개그콘서트>보다 크게 터졌다.

기억상실로 관계가 포맷되었기 때문에 <시크릿가든> 초반의 달달한 사랑이야기가 반복될 수 있었는데, 그 강도가 더욱 강해졌다. 기억을 상실하고 나이까지 퇴행한 김주원이 또다시 길라임에게 빠져든다는 것으로 로맨스 판타지가 강화됐기 때문이다.

21살이 돼도 길라임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김주원 프로토타입과 김주원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게 된 길라임 2.0. 말로만 듣던 영원한 사랑, 운명 같은 사랑 아닌가. 이건 누구나 꿈꾸는 사랑의 로망이다. 기억상실로 인해 로맨스의 달달함이 극에 달했다.

아픔, 유쾌함, 달달함. <시크릿가든>의 매력 3종 세트가 십성공력으로 시전된 18회였다. 기억상실이 이렇게 신선하고 재밌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지금 네티즌은 행여 <시크릿가든>이 세드엔딩, 혹은 허무결말일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18회 정도의 재미라면 그런 게 문제가 아니다. 세드엔딩이건 해피엔딩이건 엔딩자체가 있어선 아니 된다. 모처럼 연장방영되는 '꼴'을 보고 싶은 드라마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하재근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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